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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늘바람 Oct 02. 2019

엄살과 나

나는 엄살이 심하다_2019 가을

  나는 엄살이 심하다. 내 생각에 그렇다. 투덜도 심한 것 같다. 같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남들이 얼마나 아프거나 힘든지를 내가 느껴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아프고 힘든 정도를 느껴볼 수 있다면 뭐, 이 정도로 그 난리를 쳤단 말이야?라고 말할 것만 같다.

  몸이 아픈 것도 그렇지만 정신적인 엄살도 굉장하다. 스트레스를 잘 받고 감정 기복이 심한 데다가 기분 전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비효율적인 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다른 작가님들은 일 년에 몇 편씩이나 작품을 써내고, 동시에 강의도 나가고 공부도 많이 하고 그러는 것 같다. 어려운 주제에 대해서도 어떻게 그리 공부를 많이 했을까 감탄이 나오고, 이렇게 두꺼운 책을 어떻게 썼을까 존경스럽다. 나는 그렇게 상상력이 좋은 편도, 끈기가 있는 편도 아닌 데다가 효율이 떨어져서인지 머리를 조금 쓰면 그만큼 쉬어야 한다. 작가 의도나 주제 같은 설명을 적는데도 며칠씩 걸리기도 한다.

  정말로 나와 함께 일을 했던 모든 출판사 관계자님들, 극단 연출님과 배우님들께 죄송합니다. 기다려달라는 말 밖에 못하는 부족한 나를, 그것도 언제까지 된다는 거짓말 뿐인 나를, 또 속아주시고 믿어주시고 일거리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다른 작가님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엔 어떤 것도 정해진 방식이 없다.

  기본적으로 주제를 위한 자료 조사만큼은 후회 없이 하려고 노력한다. 인터넷 검색, 관련 서적, 영상자료, 유튜브, 팟캐스트까지 관련된 것은 다 찾는다. 그리고 같은 주제로 쓰인 책을 쌓아놓고 읽는다. 책을 다 사서 읽기에 금전적으로 부담스러우면 도서관 투어를 한다. 한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는 책이 최대 5~6권이기 때문에 여기서 5권, 저기서 5권을 빌리는 식으로 필요한 책들을 확보한다. 도서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서관은 남산도서관이다. 책이 제일 많고 밥이 제일 맛있기 때문이다.

  이 자료조사 단계에서 딴 길로 새는 일도 종종 있다. 이 책을 읽었는데 이 작가의 다른 책도 보고 싶어 졌어, 이 주제로 만든 영화에 나온 이 배우가 출연한 또 다른 영화도 보고 싶어, 라는 식으로 문화생활을 영위하며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다른 작가님들이 쓰신 글 쓰는 법에 대한 책도 많이 보아왔다. 다들 자신만의 비법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결국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 나로서는 정말로 방법론이랄 게 없다. 너무나 나만의 방법이 없어서 매번 새로운 작품을 쓸 때마다 이전에는 어떻게 썼는가를 떠올려야 한다.


  어떤 작품은 결말부터 써놓았다. 친구 셋이서 빗속에서 싸우는 장면이었다. 그냥 그 장면이 떠올랐고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두기 위해서 앞부분을 만들어나갔다. 출판사와 기획 단계에서부터 인물과 주제를 만들어두었다. 풍성한 재료가 있었다.


  또 다른 작품은 주제를 정하고 자료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플롯을 떠올렸다. 착실히 처음부터 결말까지 흘러갈 수 있었다.


  또 어떤 작품은 공부할 것이 너무 많았다.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어떻게 이 정보를 스토리 안에 담을지가 가장 난관이었다. 그 고민 자체가 플롯이 되었다.


  희곡의 경우, 독백부터 쓰기도 하고, 아무런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그저 써나가기도 한다. 소설 형태로 먼저 쓰고 희곡으로 바꾸기도 한다. 어떤 작품은 여행을 가서 쓰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매일 작업실을 출퇴근하며 조금씩 쓰기도 했다.


  그림책의 경우는 최대한 많이 실패한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방식, 저런 방식의 모든 실패를 겪고 나서 가장 어울리는 형태를 찾는다. 합판을 깎기도 하고, 한지를 뜯어 붙이기도 하고, 커피로 색칠을 하기도 하고, 동양화 종이에 수채화 물감을 쓰거나 켄트지에 동양화 물감을 써보기도 한다. 아. 멍청한 나 때문에 버려진 수많은 종이들과 재료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또 미안해진다. 저도 막 낭비하고 그러고 싶진 않았어요. 죄송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글을 쓰는 일이 정말 힘들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적어가는데 한숨이 폭폭 나온다. A4용지로 반 장 정도만 써도 녹초가 되어버린다. 한 줄 한 줄이 정말로 고통스럽다(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나는 엄살이 심하고 그러기에 내가 느끼는 감정은 좀 과장되었을 수도 있다).

  내장이 꼬이고 어깨가 돌처럼 굳어지고 눈 앞이 핑핑 돌면서 현기증이 난다. 헛구역질이 나면 신물을 조금 토하기도 한다. 그렇게 2~3장 정도를 쓰고 나면 나머지 하루는 뻗어서 쉬어야 한다. 아. 정말로 비효율적인 인간이다.

  인물에 몰두해서 마치 그 인물이 된 것처럼 괴롭고 절망적인 기분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아. 나는 객관적인 눈도, 인물과 상황을 가지고 노는 작가 고유의 즐거움도, 아무것도 누리지 못한다. 아. 억울하다, 억울해. 그런 재미에 글 쓰는 건데.

  객관적인 눈이 없는 무능력한 작가 때문에 편집자는 또 고생을 한다. 수정, 또 수정. 나는 투덜투덜. 그렇게 열 번쯤을 '못해먹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나면 책이 나온다. 아. 다른 작가들도 이렇게 힘들게 쓸까? 뭐 이렇게까지 쓸 일인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고 허탈해진다. 책 제목을 검색해보고 비판을 조목조목 적어 내려 간 리뷰를 발견하면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다. 아. 더 고생했어야 했는데. 더 깊이 생각하고 더 많이 공부했어야 했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싶다. 제 책을 봐주신 여러분, 아무리 별로여도 나름대로 토하면서 쓴 것이니 부디 너그럽게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래도 리뷰는 모두 꼼꼼히 본다. 어린 독자님들의 독후감은 항상 감동이다.


  한 아이의 독후감을 읽은 적이 있다. 나의 동화책에 나온 주인공이 스스로를 창피하고 부끄럽게 생각하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당당히 자신의 비밀을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비밀도 당당히 말하겠다고 적었다. 그 비밀은 바로 자신은 다문화 가정의 자녀이고, 부모님 중에 한 분이 일본 사람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아이의 독후감은 너무나 인상적이었고 나의 다음 동화에 등장인물이 되었다. 아. 나는 이렇게 수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겨우겨우 글을 쓰는 작가이다. 어린이 독자님들, 정말로 감사합니다.

2019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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