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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주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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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담 Oct 29. 2018

1. 스물다섯, 퇴사 그리고 제주

“여행가가 꿈이야? 여행가 할 거야?”


취업이 어렵다는 시기, (물론 타 스펙보단 직무역량을 중시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지만) 명문대를 졸업하지 않았고 토익 점수가 높지 않았음에도 나는 운이 좋게 학교 졸업하기 1달 전에 이름을 들으면 다들 호감을 보이는 외국 고급 디저트 브랜드에 입사하게 되었다. 휴학을 하지 않고 칼졸업했기 때문에 대학 동기들 중에서도 가장 빠른 시기에 취업을 했던 것 같다. 대기업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회사가 그럴 테지만, 내가 입사한 회사도 큰 규모의 회사는 아니었던 터라 E-Commerce 업무 담당임에도 자사 홈페이지 관리, 검색광고와 브랜드 검색광고 등의 온라인 광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SNS 운영, CS 문의 답변 등등.. 폭넓은 업무를 수행했다. 주변 사람들이 ‘그래서 무슨 일을 하는 거야?’라고 물을 땐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온라인에서 판매하고..

종종 카카오 플친도 보내고?

그런 의미에서 친구 추가 좀 해줘ㅋ

내가 보내는 거야."


1년 반의 시간 동안 일을 하면서 새로운 온라인 제휴몰 3곳의 입점을 진행했고, SNS 채널인 '카카오 플러스친구'도 오픈했다. 정말 X1000 열심히 일해서 온라인 매출도 전년 대비 2.4배를 달성했다.


물론 일은 열심히 한다고 다 잘되지 않는 법이다. 운이 좋게도 온라인을 이제 막 키우기 시작해서 성장의 폭이 높았고, 내가 만난 두 분의 팀장님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주시는 감사한 분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복이 참 많은 복덩이였다. 게다가 (이상하게 회사에서 전문직이 아닌 이상 일반 신입들은 다 '계약직'으로 입사를 시켰는데) 그 해 입사한 신입들 중 거의 유일하게 정규직 전환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정규직 전환도 되었고, (초봉이 낮았기 때문에) 월급도 이전에 비해선 꽤 올랐고, 성과도 확실히 냈다. 많은 브랜드가 정체하고 있는 시기에 전년 대비 높은 성과를 기록하는 일은 꽤나 보람찬 일이었다. 또한, 업무의 범위도 확장해 마케팅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좋은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던 와중 퇴사 이야기를 꺼내자 회사의 어른들께선 다들 놀라셨다. 안타까우셨을 것이다.


일을 그만둔 데는 여러 가지 이유를 언급할 수 있지만 (좋게 기억하고 싶기에) 멋지게 포장해 말해보자면 지금부터 또 1년이 지나면 '주임'이 된다고 했는데, 주임이 된다면 더 열심히 할 것 같았다. 지금의 작은 월급도 기뻐하는데 조금 더 오른 월급엔 더 기쁘겠지 싶었다. 그럼 난 대리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할 거고 경력을 쌓아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을 하겠지. (그리고 우리 엄마와 아빠가 하신 것처럼) 훗날 내 아이가 하고 싶다는 공부도 마음껏 시켜줘야지. 어렸을 적부터 꿈꾼 좋은 루트였다.


하지만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하더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갖게 되는 것이 지금보다 더 많을 거고,

포기하고 싶어도 어려운 순간이 있을 텐데,

지금 놓아보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 놓을 수 없겠구나.'

 

이 참에 '포기하는 것'도 배워보자 싶었다. 지금이 아니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훗날 결혼을 하게 된다면, 또는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그땐 더 일을 포기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제일 돈을 못 버는 시기일 테니까. (그러리라 믿음ㅎ)


휴학 없이 졸업과 취업을 했기 때문에 나는 뒤늦게나마 '휴학을 한 거다'라고 생각하자고 마음 먹었고, 내겐 적지만 열심히 번 돈(+퇴직금)도 있었다. 더불어 회사는 이런 내 마음을 접게 할 정도의 매력적인 동기부여를 줄 수 없었다.


면담을 팀장님들과 5번, 이사님과 2번을 했다. 어쩌면 대체하기 쉬운 신입이었을 텐데도 그렇게 여러 차례 말려주셨다는 것은 지금까지도 감사한 일이다.




“그래, 그런데 그만두고 뭐할 건데...?”


많은 사람들이 퇴사 후 무엇을 할 지 물어보았고 그에 대한 답변으로 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듯 "여행 좀 하려고요..."라고 얼버무리곤 했다. 그 때 돌아온 말 중 기억에 남는 한마디는 "여행가가 꿈이야? 여행가 할 거야?"였다. 그 당시엔 '여행 좀 가겠다고 여행가라니' 하며 황당한 생각이 들었는데, 5개월이 지난 지금 어떻게 보면 나는 여행가 비슷한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내 퇴사 결정이 난 뒤에 아빠 직장이 제주로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제주에 (우리 소유의 집은 아니지만) 제2의 집이 생겼다. 원래부터 제주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땐 반인반수처럼 집과 제주집을 번갈아 가는 지금의 제주 덕후가 될 줄 몰랐다.


퇴사 의사를 밝히고 6주간 내가 사랑했던 브랜드를 위해 (회사를 떠나지 않을 사람처럼) 최선을 다해서 업무를 마무리했고, 바로 그다음 날 제주로 떠났다.



그렇게 #제주다미 시작.

https://www.instagram.com/dammmmiiii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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