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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주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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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담 Oct 29. 2018

3. 바람이 부는 만큼 행복해

바람 싸다구를 맞는데, 자꾸 웃음이 나.



우도, 제주의 미니어처.


우도에 다녀왔던 경험을 무용담처럼 말해주는 친구의 극찬으로 우린 함께 우도를 가기로 했다. (내 친구는 우도 마니아라 우도 팬클럽이 있다면 바로 가입했을 것이다.) 우리가 우도에 간 그 날은 육지에선 비가 정말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진짜 이런 날 회사를 갔다면 내 신발이 다 젖어서 찝찝한 상태로 일을 했겠지'란 마음으로 나의 멋진 퇴사 일정 초이스에 감탄을 했다. 제주는 다행히 비가 심하게 내리지 않았고 우도를 향하는 배가 조금 흔들리는 것 같긴 했지만, 우리는 안전하게 우도에 도착했다.

(겁쟁이라 약간 무서웠음.)


우도(牛島)는 소가 머리를 내민 모양(牛頭形) 또는 누워 있는 모양(臥牛形)이라 하는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우도는 소를 닮았다는 느낌보단 '제주도의 미니어처' 같은 느낌이었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제주도의 미니어처 느낌이랄까. 섬 중의 섬이라니, 정말 사랑스러워.



멋지게 붕붕이와 사진도 찰칵-



우도에 도착하니 비는 그냥 똑, 똑- 하고 한 두 방울 떨어지는 정도로 왔지만, 바람이 정말 많이 불었다. 우도에 들어오면서 주변 사람들의 많은 SNS에서 보았던 저 귀여운 전기차를 빌렸는데, 창문이 없는 것을 선택했다면 정말 후회했을 것 같다. 바람이 하도 불어서 운전이 불가했을 것이다. 왜 다들 창문있는 것을 고르라곤 이야기 안하지?


창문 있는 붕붕이를 고르세요!


바람 싸다구!


바람이 부는 만큼 행복해


제주도에 오면서 인스타그램에 내 이름을 모티브로 #제주다미 키워드로 포스팅을 하고 있었다. 육지는 비가 많이 왔기 때문에 친구들의 제주는 괜찮냐는 안부 댓글과 카톡이 많이 왔다. '제주는 비는 안 오는데 바람이 정말 많이 불어'란 답변보다는 저 멋진 사진 한 장 보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찍고 싶어도 자연의 힘이 없으면 찍을 수 없는 사진. 난 저 사진이 꽤 마음에 든다. 사진 제목은 <바람 싸다구>


정말 날을 어렵게 잡고 휴가를 손꼽아 기다리며 이 곳에 왔다면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다. 내게 주어진 황금 같은 휴가가 3일인데 우도에 무려 1/3인 하루를 투자했다면? 그렇게 도착을 했는데 날씨가 이 모양 이 꼴이었다면? 난 엄청나게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분명 아쉬워하고 속상했을 것 같다. 작정하고 무조건 인생 샷 건져야 하는 날인데 말이다. 그런데 난 이상하게 바람이 부는 만큼 행복했다. 너무 웃겼다. 불과 하루 전에 투명한 바다와 맑은 하늘을 보았는데, 정말 다이내믹한 제주 날씨를 내가 겪는다는 것이 그저 즐거웠다. 제주랑 친해진 기분이 들었달까.




다음에 다시 오지 뭐, 여백의 美


우도에서 무엇을 봤는지는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바람 때문에 정말 많이 웃었던 기억에 난다. 여행이란 게 방문했던 장소보단 에피소드로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 이런 상황에 딱 적합한 말인 것 같다. 날씨도 날씨지만, 생각보다 우도가 커서 뱃시간에 맞추느라 다 돌아보진 못했고, 우도는 이후 남자 친구와 다시 한번 방문하면서 그때서야 진정으로 우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즐길 수 있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싹 다 구경하고 가자.' 이 말은 종종 여행 중 튀어나오는 말이었는데, '이번에 보지 못한 우도는 다음에 다시 와서 보면 된다'는 아주 여유로운 생각이 날 기쁘게 했다. 다음이 있다니! 마치 여백의 미를 느끼는 기분이었다.


사실 지금 내 삶 자체가 여백이다. 내 커리어 상에 여백이 생겨났고, 한창 힘이 넘쳐 어쩔 줄 모른다는 젊은 이 시기에 여백이 생겨 버렸다. 하지만 내 인생의 이 여백이 결국은 미(美)가 되리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이 과정을 즐길 것이다.


우도 다시 오면 되는 것처럼,

그때가서 다시 일하면 되지!


#제주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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