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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May 27. 2018

26일 밤 성남공항. 미군 수송기에서 내렸던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과연 왜 때문에? 라는 궁금증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26일 성남공항에 도착한 미군 수송기에서 내린 것은 어느 대학생 환자였다. 그 환자는 대학생이었고 세상 모든 환자가 그러하듯 아주 몹쓸 병에 걸렸다. 나는 처음에 이 소식을 알았을 당시. 그의 아버지는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부모는 어렵고도 어려운 것이라는 것이었다. 자기 앞가림만 하던 어느 개인이 자식의 인생을 어느 정도 책임을 지는 존재로 변모함과 동시에, 어느 어린 인생의 책임이라는 이 거대하며 막중한 부담감을 목구멍으로 끝없이 씹어 삼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가용이 없어서 열이 펄펄 끓는 자식을 들쳐업은 채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내달리는 아비의 눈물과 미국의 군용기를 전화 한 통으로 부릴 능력이 있는 아비가 흘리는 눈물의 경중은 감히 가릴 수 없다. 그러나 타국의 군용기를 써가며 자식을 살려낸 상황을 떠올려 보았을 때. 내가 어떤 부모가 되느냐에 따라서 자식의 운명도 충분히 갈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나는 우연히도 그 아비가 살려낸 환자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강남 세브란스 재활의학과 진료대기실. 나의 환자와 나는 진료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의 유명 대형병원이 늘 그러하듯 사람은 많고 차례는 더디 줄어들었다. 나는, 나의 아픈 환자에게 시선을 던지는 이들에 맞서서 그들을 노려보고 있던 중이었다. 눈빛의 싸움이 사그라들고 그제야 대기실의 여러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기실에는 어느 신문의 기사가 스크랩, 그리고 액자화 되어 걸려있었다. 어느 환자의 부모의 도움으로 설립된 호흡재활센터를 골자로 한 기사였다. 바로 그 사람이었다. 미국에서 군용기에 실려서 들어왔던 그 대학생 환자.


그는 신문사에서 연세대 스티븐 호킹으로 칭하는 수재였다. 진정 수재였는지 아니면 좋은 부모를 아니, 능력 있는 부모를 만나서 언론에까지 등장하는 듯 보였다. 아마 그때는 내가 만사 부정적이었을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어쩌면. 나도 어쩌면 능력이 좋다면 이 환자를 살려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과 동시에 그럴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자신을 금세 파악하게 된 좌절감도 한몫했을 터. 


하여. 나는 내 능력에 따른 가족의 생사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는 점을 그때 조금 더 깨달았던 것은 아닐까 싶다. 능력 있는 부모를 만나서 언론에도 나오고, 미국에서 군용기까지 타고 날아오는 자가 물론 부럽지는 않았다. 그저. 내 상황이 그보다 못해 보였고, 나의 미래에 과연 그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는 어떻게 발을 동동 구를까 생각을 했었다. 


그 환자가 미국에서 비행기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사이, 그 환자의 부모는 절친이었던 국회 국방위원장 모 국회의원에게 의뢰를 했고. 그 결과 당시 미 국방장관의 직접적 지시로 한국에 군용기가 급파된 것도 사실이다. 당시 해외파병 등의 이슈로 인해 국내에 있었던 반미감정 해소를 위한 정치적인 표현일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보통의 삶을 사는 일반인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일.




에필로그. 몇 년 전 일어났던 대한민국 최악의 환경재해인 가습기 사태. 그 가습기로 인해 많은 피해자가 생겨났다. 엄청난 호흡기 질환을 떠안게 된 피해자와 폐렴으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미국 군용기를 탄 환자를 비교해 보자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 환자의 아버지가 그 당시 옥시 최고경영자라는 사실. 그리고 그 경영자의 이름을 딴 호흡재활센터를 생각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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