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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Apr 06. 2018

환영받지 못하는 진심이란 어떤 걸까

그 진심이 순수하다고 한들

전화벨이 울렸다. 등록되지 않은 번호. 그러나 택배일게 분명했다. 집에 사람이 없으니 경비실에 잘 부탁드린다고 하고선 전활 끊었다. 뒤이어 문자가 하나 날아왔다. 택배물을 경비실에 잘 맡겨놓았다는 증거로 사진을 찍어 나에게 보낸 것이다. 수취인이 제각각인 택배 더미들을 찍은 택배기사. 하기사 저 택배 하나하나 언제 찍고 갑질은 25만원 어치도 더 하는 2500원짜리 고객님한테 어느 세월에 문자 발신을 하겠냐 싶었다. 그리고..




일년에 몇 차례씩 나라는 인간이 도를 넘어 분노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중 하나의 순간은, 할머니의 노파심으로 꽉꽉 채워진 하얀색 스티로폼 박스를 경비실에서 조우하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그 택배 더미에서 우리집 호수가 휘갈겨 써진 그 씨발 하얀 럭키 박스를 본 것이다. 처음엔 잘못 봤나 싶었고, 둘째론 잘못 봤기를 바랬고, 샛째론 다른 사람이 보낸 것이길 바랬고, 넷째론 그냥 주소지 오타이길 바랬고, 다섯째로는 그냥 욕을 했다. 체념.


퇴근길. 나는 흰 상자에 대해서 까먹은 지 오래였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앞에서 누군가 데려가길 바라는 화이트 럭키 박스를 보았고. 다시 욕을 했다. 정말 무거웠다. 내용물이 가득 찬 무거운 스티로폼 박스를 들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잡을 곳도 마땅하지 않은 그런 좆같은 인체공학적 디자인. 낑낑거리고 집에 도착해 바로 해체작업을 실시했다.


봉인된 어떤 상자를 뜯는 일은 항상 새롭고 신선한 기대를 가져온다. 그렇게 욕을 하고도 발산하지 못한 분노가 도사리고 있을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일이, 어떤 면에서는 그래서 사뭇 기대가 된다. 역시 스티로폼 박스는 욕이 나온다. 지구 환경에도 좆같지 않은가. 그리고 커터칼이 팽팽한 마스킹 테이프를 뚫고 상자의 뚜껑과 본체의 사이를 정확하게 그어나가지 않을 때 생기는 소음과 욕 나오는 마찰감. 아무튼 마음에 드는 게 욕만큼도 없다.


왜 남도의 음식은 이런 냄새가 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이런 식자재만 있어야 하나.. 김치는 보내지 말라니까 왜 보내서, 재작년 받은 김치를 기어이 쓰레기로 만들고, 지구가 아프고, 그 말린 쓰레기 처먹는 돼지는 무슨 죄며, 그 돼지를 돈주고 사처먹는 나는 스트레스받고. 라고 생각하다가 몇 시간 전에는 분명히 돈이었을게 분명한, 내장이 따지지 않은 리얼 생선(망둥이같이 생김 뭔지도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음, 마트에서 흰색 롱 앞치마 입은 사내가 찌개용 조림용으로 숭덩숭덩 썰어준 그런 젠틀한 마트 생선이 아니다)을 보고 또다시 분노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김 할머니는 손자에게 빅엿을 먹이기 위한 의도로 택배를 보내지 않는다. 그녀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이며,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여나 도움이 될까 싶어 그녀의 최선이자 최고를 박스에 실어 멀리 보낸 것이 전부다. 그렇다. 그녀의 아들의 아들은 안다. 그녀가 간만에 택배를 꾸리게 된 날, 나름의 설렘으로 장을 보았을 것이며. 나름대로 준비한다고 준비했지만 박스의 빈 공간이 못내 허전해 다시 불편한 무릎을 들고 쑤시는 허리를 굽히고 펴가며 시장에 다시가 두리번거리다. 마침내 그녀와 비슷한 수준으로 살아갈 그녀의 동년배 상인에게 몇 푼을 깎았을 것이다.


젊은 사내가 욕하며 나를 정도로 무거웠던 그 박스를 들고는 기적과 같은 힘을 쥐어짜 택배에 맡겼을 것이며. 비린내가 채 가시지 않은 손으로 구겨진 지폐를 택배사에 맡겼을 것이다. 왜냐면 아들 혹은 아들의 아들 대신 택배비를 내주고 싶으니까. 그리고선 서울까지 택배가 사고 없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며, 아들 혹은 아들의 아들이 택배를 무사히 수취하기를, 그 택배를 여는 이가 즐겁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물이 그들에게 전혀 부족함 없길, 또한 잘 받았노라며 전화가 오길 아직 기다리고 있을 거란 걸.




K는 시골로 귀향한 나의 삼촌이다. K는 택시를 운전한다. 시골은 버스가 많지 않아, 생각보다 택시가 많이 발달해 있다. 그가 시골에서 택시를 운전하다 보면 겪게 되는 일이라며 나에게 해준 말이 있다. 몇 시간 전에 장에 태워다 준 할머니가 집에서 택시를 잡더니 또 장에 가자던 말을 하더랜다. 자식한테 보내는 박스에 남는 공간이 생겨서 다시 장에 가야 할 거 같다고. 그런 일이 꽤 있었고, 심지어 몇 번이고 다시 장에 가는 할매들을 손님으로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골 할매들이란 원래 그런 거라고 나에게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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