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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Jun 25. 2018

소선 대악 대선 비정(15)

여느 때와 같은 밤. 나는 마찬가지의 그 여느 때 속에서 장을 보러 가고 있었다. 장을 보러 가는 행위 자체도 제법 익숙해졌다니, 시간이 흐르기는 흐르는구나 싶었다. 여느 때처럼 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한 그 시간에서 나는 어디를 얼마큼 지나오게 된 것일까. 사실 너무도 보통 같았던 순간이어서,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 즉 당신과 닮은 뒷모습을 우연히 바라보게 된 것이 너무도 갑작스럽고 어지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당신이 주로 즐겨 입었던 옷과 똑같은 생김새의 뒷모습이라서 더 어지러웠을 것이다. 그 보통의 뒷모습이 당신의 뒷모습과 닮았다고 인식하는 순간에서부터 나는 갑자기 어려웠고 서러웠다. 어디에서 숨어있었는지 모르는 눈물이 몸의 사방에서 기어 나오려 몸부림쳤다. 그 익숙한 뒷모습을 붙잡고 끝없이 울수가 없어서 하염없이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 닮은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당신의 부재를 다시금 느꼈고, 그 다시금 느낀 감정이 당신을 미처 기억하지 않고 보냈던 여러 하루가 보내는 꾸짖음이며, 그 여러 하루는 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보냈었던 나날이라는 정리를 마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나는. 너무도 자연스레 당신의 빈자리를 인식하였고, 이제는 없는 당신이 그동안 했던 역할을 소화.. 아니 흉내내고 있었다.


마트에 들러서도 나는 한동안 멍해있었다. 나는 무엇을 사야 할지 잊어버렸고, 숱하게 왔던 마트의 골목을 헤매기도 했다. 절대 잊고 사는 순간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한참을 지내왔다는 것이 나는 서글퍼졌다. 최근의 나는 교회에서 당신이 하던 일을 이어받아하는 어느 집사님 옆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예배가 끝날 무렵. 그 집사님이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더라.


그 집사님은 참고로 지금 내 나이 정도 되었던 아들을 한참 먼저 보내신 분이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면서 미안하다고 하는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더라. 물론 나중에 이야기는 해주셔서 알았지만 내가 예측하고 있던 답이었다. 떠올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 그럼 그 집사님은 또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부모 마음이라는 게 그런 거구나. 그럼 당신은 또 어땟으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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