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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Oct 06. 2018

소선 대악 대선 비정(16)

나라고 어찌 힘든 순간이 없었겠는가. 버거운 순간은 없었겠는가. 지친 순간이 잠시라도 없었겠는가. 난 그저 그러한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부정 타는 듯. 가능하다면 온 영혼을 흔들어 그 순간들을 털어버리고 싶었다. 털고 털어 냄에도 어느 구석에 교묘하게 자리 잡은 그 감정을 불현듯 발견하게 되는 순간. 나는 너무도 두려웠다. 그 찰나의 시작이 어느 균열이며, 그 균열은 어느 날 나에게 갑작스레 찾아올 붕괴의 방아쇠가 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조차 사치가 되는 날이 올 거라 조심스레 예상하지만, 이 예상이 사실이 되는 날은 청구서처럼 찾아오리라 판단했다. 예외 없고도 강직한 청구서의 날을 떠올리는 것 또한 몸서리치게 싫고 두려운 일이었다. 자신이 없었다. 자연스레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들이 내 스스로의 판결로 마무리 지어져 선고되는 때였기에. 행위의 당사자이자 병든 어머니를 간호한 자식은 스스로를 혹독하게 판단했을 것이며, 그 판결을 두말없이 받아 들었을 것이다.


내가 후회할 일들의 대부분은 내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했던 모든 행위였을 것이다. 순수한 열정이 사라지고 후회의 무서움에 떨며 진행한 어설픈 의무. 그 서글프고도 유한한 의무를 나는 왜 때로는 멀리하고 싶었을까. 아마도 내가 그 극단의 상황을 전제하는 것을 넘어, 단순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내 노력의 순수와 가치를 폄하하고 훼손함과 동시에, 아마도 나도 모르게 그 날의 존재를 시인하게 된 꼴임을 내 스스로 밝히기가 싫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내게 남은 것은 용해되지 않아 침전한 앙금이었다. 갖은 수를 써보아도 녹여지거나 풀어지지 않을, 이 앙금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 것인지는 안다. 시간이라는 만능 용매제가 있으나 나는 그것을 꾸준히 거부하고 있다. 그 앙금이 결국 시간에 뒤섞여 녹아들은 미화된 합리화. 온갖 거짓으로 남은 그 합리화라는 화합물이 내 정신을 착란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앙금이야말로 진실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거짓 없는 결과물이라고 나는 믿는다. 후회로 불리는 이 앙금을 나는 꾸준히 자각하고 싶다.


어쩌면 이 앙금이. 당신이 내게 남긴 마지막 유산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것도 같다. 이후부터 나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후회하지 않기로 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단지 나는 오직 당신만이 이것을 누리지 못하게 된 역설이 너무도 안타까울 뿐이다. 


비오는 오늘, 청개구리는 당당하지 못해 숨죽여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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