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를 끓였다. 당신이 가고 나서부터는 국을 잘 끓이지 않는다. 생각보다 국은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국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 소요되는 수고가 귀찮고도 많아서였다. 집에 상주하는 인원이 없으니 국은 더디 소비되었고 실온에 방치되는 일이 잦았다. 실내 온도가 높은 계절에는 자주 끓여야 했고, 설거지 거리를 최소로 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국이라는 선택지는 점점 흐려졌다. 집안일이 일상으로 들어온 이들에게 그것은 늘상 귀찮고 귀찮은 일이었다.
가끔은 식탁에 국을 올린다. 거창한 것은 아니고 그나마 쉬운 국으로 하는 것임에도 그러하다. 김치찌개가 주로 그렇다. 김치가 주 재료이기에 어려운 것은 없지만, 김치이기 때문에 돌이켜 생각하면 맛이 각기 달랐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이상 김치를 담그지 않았기 때문이다. 떠난 이가 세상에 뿌린 온정의 부메랑으로 우리집에는 각지에서 도착한 김치가 있다. 그 제각기의 같고도 다른 김치가 품은 양념이 찌개의 맛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바꾼다.
꾸역꾸역 한 통 한 통 김치를 소비하는 와중. 오늘은 새로운 김치통을 열었다. 사각 밀폐 김치통을 열자 비닐봉지로 먼지를 막도록 보관된 김치들. 김치는 다르지만 김치의 보관 방법은 당신을 따르고 있다. 김치는 이전에 먹었던 것과는 달라 보였다. 양념이 스며들어서 배추의 조직이 제법 맑아져 있었다. 긴 시간 양념을 품은 배추는 세상을 나와서도 붉었다. 참기름과 참치에 볶아져서도 붉었고 쌀뜨물을 부었음에도 붉었다.
김치찌개는 매웠다. 물에 풀어진 양념은 강했고 혀가 얼얼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음식쓰레기를 버리려 집에서 나왔다. 쌀쌀했다. 계절의 변곡점에서 세상은 더디 흐르는 듯하면서도 이렇게 분명하게 바뀌고 있음을 찬바람이 알려주었다. 집에 들어오자 익숙한 그 옛날의 집냄새가 났다. 흐려져가는 기억에도 그 냄새는 강했고 마음이 얼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