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집

무너짐에 익숙한 사람은 없다

by 글짓말

특별히 무너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던 든든한 어느 것이 무너지는 것. 그것이 사람을 힘들게 한다. 어찌할 수 없는 무자비한 좌절. 어떤 방법, 더 나아가 어떤 상상적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좌절이 닥쳐오는 것. 이것이 무너짐이다.


그래서.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은 자꾸만 일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한다. 그 일상이라는 것은 보기에 굉장히 견고하다. 고로 사람들은 그것의 붕괴에 대해 걱정하는 일이 드물다. 하지만 우리를 감싸고 있는 것 중에서. 견고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그 언제라도 가볍게 무너질 수 있다. 무너져 내림을 막을 수도 없고, 이미 무너진 것도 손댈 수 없다. 그 무너짐 앞에서 좌절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잔해로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것. 복구가 가능할지언정 원상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원상을 흉내내는 것은 그저 흉내에 지나지 않기에 더 좌절할 여지만 있다는 것에서 우리는 좌절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든 일상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하며 살아야 할까.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 도움은 되겠지만 효용이 없다. 가슴을 졸이거나 냉소적으로 일상을 꾸리는 것은 너무도 피곤하다. 예견했던대로 일이 일어났음을 기뻐해야하나? 어차피 무너질테니 쌓지도 말자는 것인가?




닳고닳은 말이지만. 또 언젠가 무너질 것을 다시 쌓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고로 우리는 일부만 냉소적으로, 가슴의 일부만 졸이며 무너짐의 대처를 체득한다. 일종의 견딤을 알아나가는 것이다. 견딤은 무너짐과는 또 다른 고통이자 가르침이다.


짧은 견딤은 견딤이라 불리지 않는다. 견딤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요구한다. 이는 무너짐에 대처하는 심화학습이다. 감내를 통해서 우리는 더 크게 자라난다. 더 이상 자랄 곳이 없으면 우리는 비로소 늙기 시작한다. 우울해진다. 감내가 필요한 지금이다. 더 늙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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