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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Jun 13. 2016

평생을 이용당한 삶

위국헌신의 도구



오래전 이야기다. 


그는 늙었다. 폐견을 눈앞에 둔 셰퍼드 ○○. 슬픈 예상대로 그는 폐견 판정을 받았다. 시간만 채우다 사회로 돌아가는 본인들과는 다른 결과가 못내 씁쓸했는지, 사정을 미리 알게 된 부대원들은 습관처럼 군을 욕했다. 그가 총명하지만 않았더라도 부대원들 모두 안타까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그에게 국방부 시계는 많이도 돌았고 결과는 잔인하도록 무미건조했다.


이렇다 저렇다 괜한 말들이 오갔지만, 그의 폐견 판정을 위해서는 군견훈련소에 가야 했다. 곧 전역을 앞둔 군견병 사수 L이 그곳에 다녀오느니, 앞으로 그와 함께 있을 시간이 더 긴 부사수 H가 군견훈련소에 동행하는 게 여러모로 나았다. 난 그 운행의 운전병이었다. 목적지에 다다른 나는 민간인이 사는 도시에 '도구적 생물'을 '생산'하는 곳이 있어서 놀라웠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좋지 않은 표정으로 H는 짐칸에 올랐다. H는 속상한 마음에 그만 그에게 케이지에 들어가라 고함을 내질렀다. 트럭 짐칸에 H와 그를 태우고 고속도로를 탈 수 없었다. 국도를 타고 산을 휘감은 굽은 도로를 따라 복귀해야 했다.


중간이나 왔을까. 그는 멀미를 이기지 못하고 구토를 했다. 나는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한참 시간을 끌었다. 짧게나마 끌 수 있던 그 시간은. 평생을 이용당해 고작 그런 최후를 맞게 될 군견인 그에게, 내가 인간의 의리이자 운전병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우였다. 선탑자 간부는 퇴근시간이 늦어진다고 지랄하며 전화통을 붙들었다.


그래서 좀 늦었다. 본대에 가까워져 오면서 부슬비가 내렸다. 들이치는 바람에 섞인 부슬비를 맞으며 짐칸에서 온몸을 웅크린 H와 그를 실내경으로 보면서 어떻게 달려야 하나 많이도 망설였다. 그렇게 가슴 졸이다 보니 도착해있었다. 차가 멈추어 선 곳에는 내일이면 말년휴가를 나갈 L이 서 있었다.


휴가신고를 마치고 기다렸는지, L은 보통 군인의 하나뿐인 예복으로 A급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군인은 일과를 마쳐야 휴가신고를 하는 건데, 그가 오래도 기다린 셈이다. 이미 L은 폐견 판정을 받을 것이라 미리 예상했던 눈치다. L은 굳이 차로 견사까지 데려다주지 않아도 된다고 나에게 말했다.


곧이어 L은 캐리어에서 지치고 늙은 그를 얼러서 내보냈다. 먼 길 고생했다며 H를 막사로 먼저 보낸 L은 그에게 목줄을 채우곤 그 먼 견사까지 그과 함께 걸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올라가는 말년병장의 아름답고도 무기력한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서 있었다. 부슬비로 그와 L의 뒷모습이 뿌옇게 번질수록 비에 젖어 점점 색깔이 짙어져 가는 L의 A급 전투복처럼 XXXX년의 기억은 선명했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사람과 멍멍이 사이 우정의 아름다움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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