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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Jun 28. 2016

8월의 크리스마스

잔잔한 파동이 파도가 되기까지

숨은 의도를 파악하는 재미랍시고 복잡하게 꼬아놓은, 과잉이 미덕인 줄 아는 요즘 영화와는 달랐다. 대개 친절한 옛 영화는 신선한 재미가 떨어지는 법이다. 그럼에도 오래된 한국 영화에서 느끼는 그 특유의 '마룻바닥에 구두굽 흘려지는 소리', 혹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반가웠다. 한석규 특유의 시옷 발음과 함께 울리는 콧소리도 반가웠다. 지금은 스타지만 그때 당시에는 캐릭터가 확실하지 않았던 배우의 담백한 연기도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아빠 미소 지으면서 보느라 볼때기가 아프다.


눈치채기 쉬운 셔레이드(화면의 의미)는 수용자가 주인공의 마음을 쉽게 헤아리도록 하는 역할도 한다. 자잘한 행동에 담긴 진심이 뻔히 보여서 아빠 미소를 내릴 수가 없었다. 물론 요즘 세상 같으면 가타부타 말없이 떠나버린 한석규를 마냥 감싸주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오늘을 사는 주인공에게, 내일을 사는 우리가 그 욕심을 빼앗아가기엔 야박스럽기도 하다. 주인공은 그저 그 감정을 간직하고 싶었던 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감정이란 것은 억지로 움직이면 꼭 탈이 난다. 감정을 다루는 영화라면 반드시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감정을 가지고 따라갈 수 있도록 감정의 길을 잘 닦아야 한다. 수용자는 그 길을 걸으며 그 감정이 주인공의 감정임과 동시에 본인의 감정이라 깨닫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긴 감정의 농도는 진하다. 그 진한 감정이 옅어지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긴 작품을 곧 명작이라 말한다.


거창하게 그려내지 않았음에도 명작이 되었다. 우리가 공감하는 영역이 넓은 만큼, 이러한 사건들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일반적인 일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만나고 멀어지는 일은 명작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얼마나 명작을 만나고 떠나보낼지는 모르지마는 서로가 진심이라면 누가 거창하게 꾸며주지 않아도 그것은 이미 명작이다.




아! 저는 오늘부터 심은하 팬 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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