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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Jul 04. 2016

미워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더라

아침 첫 스케줄. CT실. 적잖이 피곤했던 나는 병원 일층 편의점으로 갔다. 가장 큰 커피로 보이는 것을 집었다. 물건과 카드를 동시에 내밀었다. 계산이 끝난 카드를 받을 때까지 나는 계속 손을 내밀었다. 눈도 뜨고 싶지 않을 정도로 피곤했다. 지루한 계산이 끝났다. 계산이 끝난 가장 큰 커피의 모가지를 비틀며 편의점을 나섰다.


병원 복도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소란을 만드는 노부부가 있었다. 한눈에 봐도 할아버지는 고집이 세보였다. 그의 당당한 목소리와 높은 언성은 자신감이 넘쳤다. 넘치는 자신감만큼이나 부끄러움이라고는 없어 보였다. 나는 인상을 찌뿌렸다. 온갖 성질과 신경질을 부리는 그의 화살은 온전히 그의 마누라에게 향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래라저래라 훈장질까지 더해졌다.


아마 참을 수 없는 통증 때문에 불쑥 뛰쳐나오는 화를 다스릴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구경이 난 것도 아니고, 내 할 일이 없던 것도 아니니 CT실로 갔다. 생각보다 여유 있게 도착했고, 그 시간만큼 앉을 여유도 생겼다. 커피를 반쯤 마셨을 때 CT실 입구가 시끄러워졌다. 맙소사 그 노부부가 온 것이었다.


예상대로 여전히 할배는 최대 안정을 위한 최대 진상을 부렸다. 할매는 어쩔 줄 몰랐다. 남보기 부끄러워서, 자신에게면 상관이 없는데 남한테 까지 진상의 범위가 넓어질까, 할배를 달래려, 버둥거렸다. 할매가 다각도로 애쓰는 중에도 할배는 통증이 너무 심하니 진통제를 구해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할매는 진통제를 구하려 나갔다. 그럼 이제 다음 과녁은 간호사. 헌데 간호사는 할배가 부리는 진상을 잘 소화해냈다. 할배가 요구하는 요점을 잘 끄집어냈다. 그러면서 통증 때문에 할배가 느끼는 불안감을 의료인으로서 잘 달랬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간호사의 말은 진통제가 아니므로 할배의 진상은 멈추지 않았다. 


간호사의 고생은 이제 시작이었다. CT를 찍기까지의 과정도 있으니 말이다. 이러저런 절차는 할배에게 너무 거추장스러웠다. 할배진상의 시위는 계속해서 당겨지고 있었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CT실 곳곳에 박혔다. 간호사는 그 화살을 빼먹지 않고 전부 응대했다. 짧지만 긴 절차가 끝날 무렵. 그 할배는 돌연 간호사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 말 많은 할배가 간호사를 칭찬했으니 칭찬의 양은 굳이 여기에 다 옮겨 쓰지 않아도 될 듯하다.


나는 놀랐다.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예전에 본 영화 '*달마야 놀자'가 떠올랐다. 그 영화에서는 깨진 독에 물을 채우라는 문제가 나온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온갖 시도를 다하다 지친 주인공 일행은 깨진 독을 연못에 던져버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달마야 놀자 : 사고를 친 조직폭력배가 절에 피산하게 되고, 그들을 쫓아내고자 하는 스님들과 생기는 사건을 다룬 영화




간호사는 충분히 감정적으로 응대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할배의 꼬장꼬장함을 부드러움으로 달랬다. 그 부드러움의 결과는 할배의 칭찬이다. 간호사의 부드러움이 결국에는 아주 좋은 결과를 낳은 것이다. 간호사는 깨진 독을 막으려 하지 않았고 그 깨진 독을 채우려 한 것이다. 물론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끝까지 참을성 있게 할배를 품은 결말은 예상치도 못한 칭찬의 파도.


영화에서는 자꾸만 대형 사고를 치는 주인공 일행을 포용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스님들의 볼멘소리도 나온다. 깨진 독 문제를 낸 주지스님은 '그들이 연못에 깨진 독을 던진 것처럼, 나 역시 그들의 모든 것을 내 안에 던져버렸다'고 답한다.


설령 간호사의 기분이 상했다 할지라도 뜬금없는 칭찬에 마음이 풀렸을 것이다. 할배의 마음도 누군갈 칭찬할 정도로 누그러졌다. 그렇담 둘의 마음이 찌르르해진 이 순간. 이제 남은 CT 촬영을 망칠 일이 또 있을까? 동화 같은 결말이 있을 뿐이다. 주로 감정이 앞서는 내가 그 일을 처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싶었다. 당연히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각자 기분은 상할 대로 상했을 것이며, 원만한 일처리마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절대적으로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만,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긴 보람과 심리적 보상은 어느 것에도 견줄 수 없는 값진 경험이자 자산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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