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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Jul 24. 2016

여전히 알 수 없는 것

영동고속도로 추돌사고 블랙박스 영상이 눈에 띈다. 아무래도 찰나의 비껴감, 혹은 판단이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받는 충격도 크다. 찰나로 시작하는 사건이 지속적 고통을 낳을 수 있다는 것도 있다. 더 나아가 찰나와 지속의 간극이 너무도 넓다는 것도 느낀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무수히 일어나고 있음을 새삼 깨우친다. 그러다 보면 또 운명이라는 반 강제적 힘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가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를 이렇게 살려놓고서는 어떤 일을 보여주려는 것인지 말이다.


몇 년 전 나는 지방 소도시에 있는 학교에 등교하기 위해서 이른 아침부터 통학버스에 올라야 했다. 그 많고 많은 버스 승하차는 별다를 일이 없었다. 단 하루를 빼놓고 말이다. 그 날 영동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던 버스는 급정거를 했다. 그 큰 덩치의 버스가 과격하게 멈추어 선 것에 학생들은 놀랐다. 눈 앞에서 대형 사고가 났다. 황당하게 보일 수 있는 사고였다. 인천 방향에서 달리던 트럭이 전복되면서, 거기에 실린 자동차가 중앙분리대를 넘도록 날아갔다. 그리고 강릉 방향을 향하는 어느 차량에 화살처럼 부딪혔다.


시속 100km/h로 달리는 자동차는 1초에 30여 미터를 달린다. 그렇다면 그 1초보다 짧은 시간 동안에 두 차량이 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건 왜일까 싶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두 차량이 움직여 부딪히는 타이밍은 어찌 맞아떨어졌는지. 저 사고 피해자가 사고를 당하기 직전까지 했던 모든 행동 중 하나 혹 여럿이 늦춰지거나, 혹은 빨라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난 버스의 탁 트인 시야가 좋아서 앞자리에 앉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 버스가 부딪힌 거라면 나는 어찌 되었을까도 생각했다.


사고 현장을 지나가면서 나는 그 어지럽고 산산이 깨어진 파편들을 눈에 담았다. 강렬하게 부딪힌 두 자동차가 도로를 철거용역이 들이닥친 노점상처럼 만들었다. 난장판이 되어버린 그 도로를, 버스는 제삼자로써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천천히 지나가버렸다. 어벙벙한 정신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그 어지러진 장소를 유유히 떠나는 우리가 운명이 시험하는 다음 무대로 향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날 하루는 조금 멍했다. 그러나 여러 날이 지나고 결국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루의 연속을 보내고 나니 그런 멍한 일은 다시 기억의 뒷편으로 밀려나 버렸다. 하루를 보내며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처럼 특별치 않음이었던 건지. 아니면 일상은 특별함의 연속인지. 그게 아니면 굳이 이렇게 의미를 주지 않아도 되는,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을 연달아 보내는 것이 어쩌면 특별한 과정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시간은 멈추지 않고 일상이 되는 것 말고는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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