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씹어 먹었다

by 글짓말

그는 착각했다. 고통이란 것은 익숙해지면 덜어낼 수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 대단한 착각이었다. 고통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개념적으로도 고통은 점차로 익숙해지는 성질을 가진다고 볼 수 없다. 그게 진짜 고통이라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익숙해지지 않는 그 고통은 끔찍하도록 지속적이었다. 지속되는 고통에서 그는 그것이 익숙해지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것을 감내로 착각하면서 그는 점점 허물어졌다.


익숙해지리란 고통은 사실 익숙해질 수 없을 만큼이나 괴로웠다. 그 고통의 시간 동안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고, 어떤 희망도, 희망에 접근하는 망상조차 안을 수 없었다. 그는 고통에 시달리며, 고통에서 어떤 것을 배웠다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는 고통으로 의식이 천방지축 날뛰며 변하는 와중에도, 고통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건 허약한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라 자신했다. 고통은 고통을 낳았다. 고통을 동반한 것은 없었다.


고통이 그를 장악하는 동안, 그를 잃어가고 있음이 고통의 새로운 고통이었다. 견딜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스스로가 성장한다고 착각했던 그는 언제 끝나는지도 모르는 고통의 깊은 급류에서 허우적거렸다. 수영을 모르는 어린아이가 차갑고 깊은 물에 빠진 것처럼 당황한 본능에 휘감겼다. 급류에 휘말릴 때는 송곳 같은 두통이 찾아왔다. 사방에서 번쩍이는 송곳을 머리에 깊이 박으려 들었다. 그 송곳을 막으려 그는 손바닥을 머리에 정신없이 비볐다. 손이 채 감싸지 못한 맨머리가 드러날 때마다 통증이 파고들었다.


송곳을 피하려 좁은 방을 기어 다녔지만 막다른 곳에서 더 피할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리면 찔릴 것만 같았다. 자비도 없이 송곳이 고통을 물고 다가왔다. 그 깊은 두통에 모든 정신과 인내, 땀까지 빼앗기고 나서야 그는 그를 되찾을 수 있었다. 고통이 다시 돌아오려 숨고르기를 하는 동안, 그는 고통 없는 순간이 행복이라 여겼다. 고통은 모든 것을 쫓아내버리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새벽 5시까지 잠을 빼앗겼다. 애초에 잠이 없던 것이었으면 싶다. 빼앗긴다는 건 분노를 동반한다. 온갖 신경다발을 잡아 뽑는 두통. 그 신경다발에 입꼬리가 눈이 같이 딸려 끌려나가는지 다룰 수 없는 경련이 일었다. 여기저기 동시다발적 괴롭힘에 마음이 약해졌다.


그 틈을 타서 의존하던 약물의 금단증세가 기어올랐다. 감히 머리끝에 올라 정신을 휘두르려 들었다. 그는 정신을 차려야 했고 그것을 뺏으려는 야성과 신경전을 시작해야 했다. 정신을 차리면 고통은 더 생생해졌는데.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덕에 피부에 몽글몽글 맺히는 고름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노란 고름이 뿜는 냄새가 코를 파고 들어왔다. 짠내와 구린내가 더럽게 뒤엉킨 뜨끈한 고약함을 떨쳐버리고 싶었다. 고름이 올라오는 곳에는 거부하기 어려운 가려움증이 있었다.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순간에 신경 써야 하는 일이 생겼는데. 서로 신경을 써달라며 두통, 가려움증, 냄새, 등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아우성쳤다. 혼자서 지고 가고 싶어서 주변을 전부 뿌리쳤던 그는 늦게서야 안심을 갈망했다. 자신의 전부가 고통인 상황에서 하는 행동의 모든 파급은 나쁠 수밖에 없었음에도 원했다. 고통이 전부라 그에게 내뿜어지는 모든 것들이 고통인데, 소중한 주변을 고통을 물들일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어둑어둑하고 깜깜한 창문에 파란 어스름이 번졌다. 누울 수도 없는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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