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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Sep 20. 2016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이식?

한국의 도서 시장이 얼마나 좁은가에 대한 그 비교 기준이 세계 금융시장이었던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우리 입방아에 오르고 내리는 삼성도 세계 금융시장 규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는데, 무슨 한국 도서시장을 거기에 가져다 놓고 비교를 하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미 그 따위 기사가 나오는 마당을 죽 보자면. 한국 사람이 책에 관련해서 과연 관심들이 있으신지 궁금하다. 기사에 공감한 사람들 중에서 주기적으로 책을 건드리는 사람이 있는지 역시 궁금하다. 책을 건드리는 사람의 도서 구매는 그럼 어떠한가? '네이버 도서'를 검색하면 '네이버 정책 변화 따라잡기'라는 부제가 눈에 가장 띈다. 네이버는 참 정확한 결과를 보여준다.




아직도 네이버 도서의 인문서적 상위에 랭크된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이것이야 말로 한국사회에서 보여주기 혹은 흉내내기, 더 나아가 지적 허영심이 얼마나 만연한지 보여주는 병폐의 대표가 아닌가 싶다. 이 종이 묶음이 한국 도서시장에서 베스트셀러의 위치에 오른 것을 혹여 다른 외신이 볼까 무섭다. 물론 책을 내기까지 저자가 기울인 각고의 노력과 감당해야 했던 많은 시간과 고난에 대해서는 손가락질보다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손가락질이 향해야 하는 곳은 독자들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축약본을 통해서 내용 습득을 원하는 독자들이다. 이들은 과거 본인들이 겪어왔던 주입식 교육과 그에 따른 사고의 종착지가 어느 한계점에 다다름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로 축약본을 통한 쉬운 배움과 쉬운 소화에 익숙하다. 하지만 이것은 좀 곤란한 일이다. 물론 곁가지를 처낸 나무도 나무라 할 수 있다만. 예를 들자면 속성으로 획득한 운전면허를 들고 도로에 나와서는 교통법규를 함부로 성토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제목의 종이 묶음이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 순위에 있다는 것을 보자면, 한국에서 독서의 수단 자체가 완전히 글러먹었다는 뜻로도 해석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는 지식 승계에 대한 가장 솔직하고도 정확한 발걸음을 딛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식이란 것의 크기는 책 몇 권으로 덮을 수 있는 크기가 아니다. 이 사실은 정상인의 생각의 범주에서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더욱이 그 종이뭉치에 써진 내용 또한 볼만한데, 마치 어느 종교의 경전처럼 절대적 지식으로 정의된 듯이 쓰여졌기 때문. 지식이라는 것은 그렇게 어느 개인이 쉽사리 정의 내리는 것도 아닐뿐더러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어떻게 뒤집힐지 장담할 수 없기에 세상에 소리치기 앞서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한다. 책이란 달리 생각하는 방법을  제공해야 하지, 그렇게 생각하라고 주입해서는 안 된다.


그 종이 덩어리는 그저 입문서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입문서가 가지는 특성상. 그 내용을 수용하는 독자가 그 관념을 고착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 사람은 수고를 들여서 내용을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허나 이미 제품명에서 알 수 있듯. 그럴만한 독자층은 아닐 확률이 높다.




이곳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그러한 종이 덩이가 나와도 큰 문제는 없다. 그저 지적 대화에는 그렇게 목이 말랐으면서 네이버 메인이나 뒤적거린 놈들이 기어이 그 물건을 베스트셀러에 올림으로 "바보 여기 있소"라고 인증한 것이 문제다. 이런 바보들에게 혹 잘못된 지식이 자리 잡힐까 무섭다. 지적 대화를 위해 이 두 권의 종이들을 샀다면, 그 사람은 지적 대화를 나누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습자지 지식을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용도로 구매했을 확률이 높다.


저자가 '책 두 권으로 지식의 대화를 할 수 있다' 조롱하는 사회라는 게 너무 안타깝다. 종이 두 뭉치로 지적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너무 많다는 것도 안타깝다. 독서의 이유가 그런 지적 허영으로만 시작하는 것만 같아서 걱정이 된다. 뭐 사실 종합하자면 '우리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솔직히.


그래서 우리는 지식을 쌓을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며, 이에 따라서 도서의 구매가 자연스레 잊혀지는 거라 하겠다. 진짜 지적인 대화는 넓고 얕은 지식으로 어찌해볼 수 있는 자위행위가 아니다. 지적인 대화에는 그렇게 목말랐으면서 다른 책 하나 볼 궁리를 하지 않았던 것도 괘씸하다. 자위가 끝나면 스노비즘의 쾌락이 온다.


과거 페이스북 뉴스피드에 올라오는 화젯거리 중 하나는 '교보문고 경영지침.' 댓글들에서는 교보문고가 아니라 '국보 문고'라고 해야 한다는 의견도 더러 보였다. 그 댓글엔 '좋아요'가 많이 있었다. 그것을 보아도 별 감흥은 없었다. 좋아요를 누른 그 사람들에겐 너네 어차피 책 사서 보는 인간들 아니잖아. 오 설마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그 말도 믿고 있는 것은 아니죠?라는 생각만 떠올랐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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