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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Sep 13. 2016

재수생이 될 수험생에게

재수는 어린 나이에 느낄 수 있는 가장 뼈아픈 실패라 칭할 수 있다. 이는 오롯이 개인적 경험이면서도 어느 사회적 커트라인을 넘는 최초의 시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갓 성인이 됨과 동시에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복합적 실패를 떠안게 되는 것이다.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라는 말이 돌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 여기 헬조선에서 일 년이 미뤄진다는 것은 상당한 감점요소다. 그걸 너무도 잘 알았던 학원 선생들은 학생과 학부모들을 달래려 오만 합리화를 쏟아냈다. 더 나은 수능 성적을 얻게 됨을 '가정'하고 장기적으로 보면 이게 더 남는 장사가 될 수 있다며. 그렇게 학원은 장사를 했다.


가정? 그들은 재수생에게 가정 따위의 말을 붙이지는 않는다. 사실 재수생 모두가 원하는 점수를 얻는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허나 재수생 모두는 알고 있다. 이들 중 노력하는 전부가 원하는 점수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 일부는 자신이 결코 아닐 거라 믿는다. 그들에게 적용되는, 혹은 적용하는 그 사소한 단어마저 쉬이 넘기지 못할 정도로.


재수생은 아주 약하다. 성인으로의 거의 모든 최초의 행동이 사회에서가 아니라. 학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들은 그저 사회를 잘 모르는 큰 아이에 불과하다. 일반 성인도 대학생도 아니다. 마치 취준생이라는 계급처럼 그들은 어느 범주에도 확연한 색깔로 그들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정의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실패를 겪은 그들은 삭막해지기도 하고. 위축되기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스트레스는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자구책으로 해소된다. 그들 스스로를 파괴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말이다. 그렇게 재수생들은 자기 자신과 서로를 동시에 괴롭힌다. 일 년이 미루어진 자기 자신이 미워서, 그 미움의 크기만큼 자신을 온전히 수능에 집중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수를 하는 대부분 스스로 벽을 치는 행동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독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재수를 성공하는 사람들도 많지는 않다. 그저 재수생이 전국에 많기 때문에 독한 사람이 많은 것이지. 재수를 하는 누구나 독해지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여름이 되면서 지쳐가는 사람들이 서서히 등장한다. 문제는 그 지침을 위로해주는 사람은 같은 재수생 밖에 없다는 것. 왜냐하면 재수생이 힘들다고 해봤자, 재수생이 아닌 대학생은 그 상황을 알 턱이 없다. 재수생 주변 상황을 숙지해야 할 배려조차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수가 그럼 정말 답이 아닌 걸까? 글쎄. 실상 사회의 모든 공부가 그러하듯. 절대 시간의 확보, 그리고 그 시간 동안의 몰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고로 재수의 주 효율은 절대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남들보다 더 공부하는 사람에게 좋은 성과가 온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하루 십 분을 일 년간 모으면 60시간이 넘는다. 모두가 열심히 공부량을 적립하는 기간, 60시간이 가진 변별력은 결코 작지 않다.


사실 이런 능력을 가졌다면 애초에 재수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뭐 운이 나빠서 그렇다면 모를까. 그래서 능력이 없는 재수생은 능력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각오가 없다면 '아마' 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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