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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Sep 04. 2016

소꿉장난

커서 하는 소꿉장난은 교외로 놀러 가는 게 아닌가 싶어. 어릴 때라면 자그마한 장난감으로 흙이나 나뭇잎으로 감정이입을 했다면, 커서는 대형마트에서 장 보면서 감정이입이 되곤 해. 우리 같은 사람이 많지만 거긴 정말로 결혼한 사람들도 있잖아. 그래서 왠지 우리도 그렇게 보이고 싶어 져.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부부 같은 모습을 흉내 내는 거지. 부부도 아닌데 부부인양 흉내 내는 게 소꿉놀이 같다는 말이야.


이건 너무 비싸, 안 돼 등등 주부를 흉내 내는 모습. 잘은 모르지만 상했나, 시들었나 꼼꼼하게 따져보는 모습. 그걸 바라보면서 웃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어. 나쁘지 않아. 때로는 나란히 카트를 앞세우고 걷기도, 가끔은 카트보다 앞서 걸으며 매장을 훑는 모습도 빼놓을 수 없지.


시식코너에서 한 입 먹자마자 나를 바라보는 눈빛. 사자는 건지 맛있다는 건지 모르는 내가 갸우뚱하면 새댁이랑 맛나게 먹으라 눙을 치는 판매원. 별안간 터지려는 웃음을 참으며 시식코너를 지나고, 지나자마자 푸흐흐 마주 보며 웃는 즐거움도 있지. 흉내에 성공한 웃음과 정말로 그렇게 다정하게 보이나 싶은 뿌듯함을 느끼면서 말야.


카트를 끌고 주자창에서 내 차까지 가는 길은 걸음이 가벼워. 마치 사냥에 성공한 원시인이 사냥감을 들쳐 매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같아. 당연히 사냥한 사냥감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경계심도 약간은 포함시켜야지. 많이 사지도 않은 것 같은데도 묵직한 카트는 뿌듯함이 담겨져 있지. 


자동차로 먹을거리를 옮겨 싣고 나서 시동을 걸면 설렘이 배가 되어 돌아와. 목적지에서 뚝딱뚝딱 음식을 하는 모습, 서툴지만 도우려 애쓰는 모습이 소꿉놀이의 정점이 아닌가 싶어. 음식을 맛있게 먹고, 또 정리하는 등등 말이야. 그럴 땐 일상의 행동을 흉내 내는 어린아이가 아니구나 싶어. 흉내 아닌 흉내를 내보면서 그렇게 슬며시 미래를 가볍게 상상하기도 하고. 그렇게 또 웃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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