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시대
혐오라는 단어를 보면 무슨 느낌이 너에게 다가올까 궁금하다. 사전적 뜻으로는 싫어하고 미워함이라 하는구나. 혐오.. 시간을 보내며 느끼는 일이지만 내 주변에서 혐오라는 것이 점점 진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안타까운 점은 혐오의 시발점이란다. 바로 주장이지. 이 주장이라는 것이 당최 먹히질 않으니 갑갑하고 짜증남이 결국엔 혐오로 전이된 거지. 네 아비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난 우리나라의 대표 혐오를 꼽자면 첫째로 세대 혐오, 둘째로 진영 혐오, 셋째로 성 혐오라고 생각한단다.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것이니 순서와 비중은 무관함을 알린다. 우리나라에서 부각되는 웬만한 주장들의 구심점이라 이 아비는 생각한다. 혐오의 출발을 어디에서 잡아야 할지 모르겠구나. 늘 그랬듯 내 맘대로 써보마.
시대가 달라졌단다. 예전 농경사회에서는 별 다를 것이 없었지. 서두가 길어질 것 같은데 머릿속으로 정리를 해가며 써보도록 노력 하마. 이 농경사회에서 별 일이라 함은 가뭄 같은 천재지변 정도였지 나머지 일은 그저 과거에도 일어난 일이었단다. 천재지변이 가장 큰 염려 거리였겠지. 그러나 그것마저 아예 없던 일도 아니라서, 그런 일이 생겼을 때는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의견이나 해결 거리를 구했단다.
그 나이 많은 사람의 데이터가 귀중했기 때문에 나이 많은 사람은 대우를 받고 살았단다. 데이터의 참 거짓을 판단할 겨를도 없이 그저 그것을 따랐지. 왜냐하면 그 오래된 데이터는 나름 해결된 결과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야. 예를 들면 가뭄 시즌 당시 임금은 기우제를 지냈어야 했어. 문제는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했기 때문에 기우제의 효과가 있었다고 데이터가 기록된 거고.
뭐 이런 시대는 지나고 새로운 시대가 찾아오게 된단다. 모두에게 데이터가 열린 시대가 온 것이지. 문제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데이터를 보유한 세대와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후세대의 갈등이었단다. 비슷한 시대를 보낸 것으로 오해하는 자들이 후세대에게 본인의 잣대를 들이밀게 되었고, 시대가 너무 빨리 바뀌어 길잡이조차 없이 시대의 방파제가 된 후세대들이 이를 거부하면서 세대 간의 갈등은 시작되었지. 난 여기가 대한민국 삼종 혐오의 시발점이 아닌가 생각한단다.
파도를 이겨내며 생긴 독립심을 개척심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단다. 어쨌거나 독립이나 개척의 과정을 겪고 나면 본인의 판단기준에 강한 신뢰가 생기는 것이 일반적이란다. 고로 자연스레 남의 말 따위는 안 듣게 되는 거지. 그래서 절대적으로 옳은 것만 같은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는 상대를 처음에는 갑갑하게 여기다가 결국엔 미워하게 되었단다. 변화무쌍한 시대를 함께 보낸 이들의 결과가 갈등이라 아쉽지만, 원래 사람은 대우받고 싶은 존재란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우받고 싶단 주장은 잘 먹히지 않는단다. 또 대우받고자 하는 목소리는 잘 들려지지도, 잘 듣지도 않았단다. 대우가 누군가의 여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결핍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하지. 결국 대우해달란 목소리는 대우해주지 않는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으로 바뀌었단다. 이건 인간이라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너도 언젠가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에게 욕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자꾸 아쉽다는 말을 꺼내서 민망하다만. 아쉽게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잘 받아들여지는 주장은 혐오로 실행되는 것이 적지 않단다. 만원 지하철에서 임산부 배려석에 아무도 앉지 않는 것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란다. 자발적으로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서 혐오받기 싫어서 앉지 않음이 더 맞겠구나 싶었지. 실은 그전부터 임산부를 위한 좌석의 확보에 대해서 사회적 목소리가 없던 것은 아니란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대우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지.
아름다운 자발적 의식이 아니라 혐오에 의해서 강제되는 사회의 면을 본 것만 같았단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혐오는 위대하구나 생각했단다. 당연히 혐오받을 만한 일도 있지. 그러나 그런 삭막한 미움의 사회보다는 여유와 배려가 있는 사회에서 네가 자라길 원한다. 원래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라지만, 행동에 보상을 바라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투자란다. 난 네가 좋은 투자자임과 동시에 배려의 기품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싶다. 네 아비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