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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Apr 01. 2016

기회를 잡는 능력은

그것을 놓쳤던 경험이다.

어차피 말해도 믿지는 않겠지만. 나는 주커버그를 눈앞에서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말이다. 수많은 청자들 앞에서 강연하는 그의 앞에 있던 것도 아니다. 그곳에는 그와 나를 포함한 5명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나는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도 있다.


날이 점점 더워지는 어느 환절기. 나는 공항에서 아주 잠시 일했다. 티비를 보지 않는 나는 그곳에서 평생 볼 연예인은 다 본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아시안게임도 있던 터라 많은 운동선수단도 볼 수 있었다. 역시나 티비를 보지 않는 나는 무덤덤했고, 같이 일하는 파트너는 뛸 듯이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공항은 사람이 없어서 산만하지 않았다. 썰렁했다. 곧 어느 키 큰 외국인이 수수한 차림으로 백팩을 메고서 출국장을 걸어나왔다. 기자로 보이는 3명 정도의 사람이 달려들어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그 키와 피부색, 그리고 기자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저 사람이 어쩌면 운동선수 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었다.


파트너는 자고 있었다. 어차피 하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 구경을 하기로 했다. 사진기자들이 열심히도 셔터를 눌러대고, 눌리는 셔터에 따라서 히얀 섬광의 거대한 홍수가 뒤따랐다. 도대체 누굴까 생각했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그저 어느 운동선수일 거라는 확신 때문에 다른 어떤 생각이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자리를 잡기 위해서 몸싸움을 하며 뒷걸음질로 사진을 찍어대는 그 기자들 틈바구니처럼 말이다.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다. 바로 옆에 서서 같이 걸으며 그 외국인을 봤지만 누군지 몰랐다. 질문하는 기자도 없었고, 고로 외국인은 말이 없었다. 모르는 사람 때문에 시간을 쓸 여유는 없었다. 나는 자리로 돌아왔다. 할 일이 또 없어진 나는 멍하니 있었다. 지루함을 참다못해서 N사 포털을 봤고 거기에는 주커버그가 방금 입국했다는 기사가 덩그러니.


내가 주커버그를 몰랐던 것도 아니고, 페이스북을 안 하는 것도 아닌 만큼 놀랐다. 주커버그는 생각보다 키가 너무 컸고 너무 수수했다. 그리고 안경을 써서 완벽한 Nerd였다. 그냥 하나의 구경거리로 그를 손쉽게 떠나보냄이 허무했다. 그는 내가 여태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미국에서 그렇게 가까이 접근하려면 경호원이나 가능했을 일이다.


물론 내가 주커버그와 사업적으로 거대한 그림을 그릴 계획이 있거나 그럴 주제 거리가 있었다면 또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렇게 가까이, 적은 사람 수와 함께, 그와 대면할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는 게 좀 아까웠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좀 더 과감했다면 그와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았으려나 하는 생각이었다.




공항에서 일하면서 중국인들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을 품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언어로 질문했기 때문이다. 어느 일말의 눈치나 주저함 조차 볼 수 없었다. 나는 어느 나라에 여행을 간다면, 최소한의 해당국 언어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의 질문에 아무런 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 드는 생각은, '저런 과감함이 어쩌면 기회라는 것을 붙잡는 도구가 되겠구나'라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 중국인들이야 그렇게 자기 말로 질문을 던지다 보면 중국어를 하는 공항직원 누군가가 도와줄 것은 사실이다. 결국엔 그 과감성이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야 마는 도구. 이른바 그 기회를 잡는 도구가 된다.


나의 과감성을 억누르는 건 나의 예의범절이나 기타 상식이 아니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 과감함이 없어서. 어쩌면 나는 얼마나 많은 기회를 날려먹었는지도 알 턱이 없었다. 왜냐하면 과감성에는 '시도를 감당함'이, 더 나아가 '시행과 착오'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도와 시행. 그에 따른 착오가 두려워 과감성을 억압했는지도 모른다.


'저게 기회일지도 몰라' 생각하며 뛰어드는 과감성이 기회를 붙잡는 도구가 되었음을 공항에서 배웠다. 그래서 그런지 성공한 사람들 중에서는 좀 후안무치한 사람들이 많구나 싶었다. 기회를 잡는 뻔뻔함이라. 사람 사는 일이 이렇게나 모순적일까. 마음이 여린 사람은 뻔뻔해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일까도 생각해보았다.


실은 주커버그 말고도 공항에서 아깝게 놓친 사람이 또 있다. 정말 주커버그보다도 아까운 사람인데. 그 사람은 내가 딴짓하다 놓쳤다. 잡았다고 해서 바뀔 일은 아니지만 어쨋든 기회라는 놈은 이렇게 도처에 널려있을 수 있음을 느낀다. 기회를 잡는다는 것이 무조건 장밋빛은 아니지만 뭔가를 잡아냈다는 성취감이 좋은 출발이지 않은가.


과감. 과감해야 기회를 좀 더 편히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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