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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Nov 23. 2016

소선 대악 대선 비정(5)

후회를 남기고 가셨습니다

후회만 두고 갔다고 하기에는 그래도 곱씹어보면 많은 것을 두고 갔습니다. 당신이 남기고 간 여러 것들이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아직은 후회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날들도 더러 있음을 고백합니다. 종종 주변인들은 이야기합니다. "너 할 만큼 했다"라고 말입니다. 글쎄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럼 '할 만큼도 못한 것'은 어떤 것인가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만큼'의 기준이라는 것은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내가 할 만큼 한 것도 어쩌면 그게 아닐 것이라 결론짓게 됩니다.


사람은 참으로 간사합니다. 있을 때는 모르지만 없으면 그제야 늦은 깨달음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 깨달음이 좋은 것이라면 좋은 것이지만. 나의 부족함을 깨닫는 것은 고통스럽고, 또 그래서 어렵습니다. 지나간 나날들이 깨달음을 얻고 나면 순간으로 바뀝니다. 그 나날들이 파편이 되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순간이 됩니다. 저에겐 그 순간순간이 후회로 날아오는 요즘입니다. 그 순간의 선택은 당시의 최선의 선택이 분명하지만 그 최선이 결국엔 후회라는 것. 이점이 저의 모자람을 자책하기 좋은 도구가 되어버렸습니다.


저의 대부분의 생각은 이러합니다. 여기서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지든 간에 당신께 전달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는 것이지요. 그게 당신을 참되고도 바른 안식으로 인도하는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곳에서까지 이곳 걱정을 하는 것은 당신에겐 너무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의 흔적을 보러 가서도 별말을 건네지는 않습니다. 그곳이 과연 당신을 위한 공간인지, 아니면 남겨진.. 아니 남은 자들을 위한 공간인지 저는 아직도 혼동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다른 이들이 하는 행동은 과연 어떤 소용이 있는지도 생각합니다.


그래도 그곳에서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질 못합니다. 무거운 발걸음을 겨우 옮겨도 고개가 돌아가고 시선이 맺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시선이 머문 곳을 바라보면서 그때를 곱씹기도, 그러면서 지금의 당신을 궁금해하고 상상합니다. 거기엔 많은 이들이 놓고 간 후회의 흔적들이 고이 놓여져 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흔적이 아니라 그 흔적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그 후회의 숱한 자취들이 나를 나타내는 것만 같아서입니다. 그곳엔 나의 과거 후회도 미래 후회도 있습니다.


보고 싶다, 잘 지내느냐, 시험 잘 치렀다 등등의 인사말이 저의 과거와 미래를 훑고 지나갑니다. 그렇습니다. 그곳엔 어쩌면 미래의 내가 사용하게 될 인사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미래에는 내가 또 얼마나 슬퍼질지. 예전보다 슬프지 않다면 나의 감정과 각오는 얼마나 빛이 바래버렸을지, 풍화되어 버렸을지 계산하는 자체로 다시금 슬퍼집니다. 내가 그렇게 변해버릴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내가 변할 것이라는 슬픈 예감을 확신하는 자신이 미워지기도 합니다.


당신의 아들이 스스로를 미워하는 모습을 달가워할리는 없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자아비판을 통한 깨달음과 당신을 추모하기 위한 원동력을 잃는 것만 같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다시 생각합니다. 과연. 과연 당신이 보고 싶어 하는 나의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를 말입니다. 정답이란 건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건 아마 장성한 아들이 사회의 거친 들판으로 뛰어나가 온몸으로 구르기를 바라는 모습이겠지요. 저의 걱정이 필요 없을 만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이젠 나에게 할애하는 길이 최선이겠지요.


당신에게 꺼낼 말이 "사랑한다"는 말밖에 없던 때를 떠올립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은 아닙니다만. 사랑한다는 말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는 것은 가슴 가득히 서러워지는 것입니다. 그 가슴 가득한 서러움을 내려놓으면 당신이 멀어지는 것만 같아서 쉬이 내려놓기가 너무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는 내려놓을 마음이 추호도 없습니다. 이렇게 당신을 안고서 지내려 합니다. 


당신께 전달하고픈 많은 말들이 머릿속에 어지러이 떠돕니다. 그 말을 손가락까지 밀어 자판에 올리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내어놓는 말들이 혹여 당신께 닿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부디 이 말들이 당신께 닿지 않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당신을 아직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의 사랑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보낸 짧디 짧은 순간에 나의 진심이 담겨있기를 간절히 빌고 또 바라고 있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겠습니다.


신기하게도 눈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상하리만치 눈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렴풋이, 그리고 감히 예상해봅니다. 때를 가늠할 수 없는 그 어느 날 눈물은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며. 그리고 그 눈물은 쉬이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다들 각자의 길에서 잘 지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 이야기는 해보아야 알겠지마는 그렇게 보입니다. 잘 지내는 것, 어쩌면 당신도 누려야 하는 호사를 누리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몹시 서글퍼질 때도 많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괜찮습니다. 그리고 괜찮을 겁니다.


우리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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