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동굴에서 벗어나 이제는 새롭게 사회로. 사회로의 새로운 한 걸음을 걸어야 하는 시간이 왔다. 그 시간이 언제인지는 몰랐지만. 그 시간이 영원하리라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가까운 미래겠거니 어렴풋이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자리 잡았음에도 몸은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서있기보다는 그저 누워있기를 원했고. 깨어있는 시간보다는 잠들어있는 시간이 길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하루하루를 낭비하면서도 이렇게 살면 망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놓지 못했다
큰 마음을 먹는 것으로도 모자라, 지인과 동참한다는 것까지 확정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다시 훈련소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앞 길이나 미래의 먹거리와 전혀 관련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또다시 긴 시간을 고민이라는 핑계로 덮어두고는 뒤돌아서서 누웠다. 그러나 나의 나태함은 언젠가 끝날 일이었기에, 좋지도 않은 나태함을 일찍 끝내버리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다시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실상 그것을 알아보는 것만으로 나에겐 어떤 활동이 될 만큼 나는 늘어져 지내왔다. 그게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워졌고 더 이상 이 부끄러움을 참아내기도 벅찼다.
과거의 어느 날 내가 겪었던 이른 아침의 기상과 세안, 그리고 옷가지들을 대충 걸치고서 밖으로 나왔던 흔적이 지워진 나는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더디고 더뎠다. 바깥의 공기는 믿을 수 없이 차가웠고 바람은 날카로웠다. 너무나 추워서 나는 자꾸만 어깨를 움츠렸다. 잠에서 깨지 않으려는 몸의 일부가 흔들어대는 결심을 지속적으로 떨쳐 보내기 고단했다. 그러다 문득 단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는 일, 무거운 몸을 침구에서 떼내는 일, 화장실로 가서 세안하는 일, 따뜻한 집을 벗어나 추운 출근길을 쉬지 않고 겪었던 아버지가 무심결에 떠올랐다.
나는 너무 오래 쉬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 이른 아침에 많은 사람들이 일터로 향하고 있었다. 추위에 떨면서 기약 없는 버스를 기다렸고, 사람이 과적된 버스는 계속해서 사람을 태우려고 문을 열었다. 버스에 가득 찬 입김이 뿌옇게 유리창으로 내려앉았고, 덜컹거리는 길 따라 흔들리고 요동치는 몸들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파도와 같았다.
세상의 흐름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바다를 지나 해변에 도착하면 잔잔해지는 것처럼. 버스 안의 잔잔한 파도마저 감당하지 못해 기약 없이 해변에서 서성거리는 나로서는 그들이 대단해 보일 따름이었다. 주인이 뿌려주는 모이를 먹고사는 어항 안의 붕어들도 남보다 더 먹으려 버둥거리는데. 어항을 떠나 바다로 향하는 그들이 붕어든 무엇이든 간에 숭고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