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uld've would've could've
살아감이란 아쉬움을 떨쳐버리는 것의 연속이다. 그러나 아쉬움이란 좋은 것이다. 성장이 없다면 아쉬움도 없다. 사람은 사랑하며 성장한다. 사랑했으니 성장한 것이고, 성장했으니 아쉬운 것이다. 또한 사랑했으니 아쉬운 것이다. 너와 나는 만나서 '우리'라는 세상을 만든다. 새로운 것으로 가득 찬 세상의 주인공으로 멋진 장면을 만들어내는 일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실은 살아감의 시간이 길수록. 우리라는 존재가 너와 나라는 개인으로 이루어졌다는 것, 그래서 너와 나의 길은 분명하지만 우리의 길은 비교적 분명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이 길지 않다. 우리의 새로운 세상을 위해서 그동안 살던 내 세상에 잠시 들러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의 불분명이 분명으로 가는 길이 절실하듯 개인 또한 마찬가지다.
원래. 적지 않은 시간과 그에 따른 성장이 아쉬움을 배가하는 것이다. 이랬으면 저랬으면 하면서 shoulda woulda coulda 나도 모르게 서글픈 계산은 잠시 접고, 현재의 개인을 씁쓸해하면서 과거의 자신을 달래며 응원하는 것이다. 아쉬움이 주인공인 가정의 시간은 달콤 쌉쌀하다. 별빛 아래에서 춤추던 곳은 낮에 보니 별로라며 맘에도 없는 눙을 치는 것처럼.
그들이 어찌 살았을지는 모를 일이다. 그저 알 수 있는 건. 서로를 계속해서 사랑해 왔다는 것이다. 각자의 길을 걸어간 것도 사랑. 재즈를 잘 아는 이와 만난 것도 사랑. 셉스와 첫 만남의 재즈를 연주함도 사랑. 더 이상의 연주가 필요치 않음을 서로가 아는 것 또한 사랑. 그리고 이렇다 할, 한마디 말도 필요하지 않은 것. 역시 사랑임을 이해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