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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낭이 Feb 23. 2024

면접보다 어려운 연봉 협상

HR과의 치열한 눈치 싸움

업데이트드릴 내용이 있습니다. 혹시 10분 정도 통화 가능 하실까요?



올 것이 왔다.

어렴풋이 오퍼를 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면접을 1주일 만에 HR로부터 연락이 오다니.

미국 회사 생활을 오래 해보지 않은 나도, 이것이 매우 긍정적인 신호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으로, HR과 통화를 시작했다.


HR은 먼저, 나에게 팀 인터뷰 이후 내가 받은 팀 인상이 어땠는지에 대해 물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이 팀에서 일하는 것이 좋다고 느껴지는지, 다른 걱정은 없는지 등...


나 역시 솔직하게 답변했다.

이 팀은 매우 현재 도전적인 과제가 많은 팀처럼 보이지만,

나의 전문 분야와 매우 잘 맞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오퍼를 받게 된다면 즐겁게 일을 있을 같다고.


그리고, 나에게는 확실히 해야 할 것이 있었기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나의 직책이 정확히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공고에는 senior staff engineer라고 적혀 있는데, 당신의 첫 이메일에는 staff engineer로 적혀 있어서,

무엇이 맞는 것인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제가 오퍼를 받게 된다면 어떤 직책을 받게 될까요?"


그러자 그는 짐짓 당황한 듯, 다시 그가 준비한 서류를 찾아보더니 이렇게 답변했다.


"제가 알기로 이 공고는 senior staff 직책이고, 당신의 면접 feedback은 매우 좋았기 때문에,

당연히 senior staff로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지난번 얘기했던 예상 TC도 그에 맞춰서 말을 했던 거고요.

하지만, 다시 확인을 위해, 팀에 물어보도록 할게요."


속으로 '아 괜히 물어봤나... 가만히 있었으면 그냥 그 직급을 받는 거일 수도 있었는데...' 싶었지만,

우선 알겠다고 답변했다. 어차피 확실히 하는 것이 좋으니까.


그 이후로는, 그전에 이미 HR과의 통화에서 이야기했던 것들을 다시 재점검했다.

A사는 Visa와 영주권 지원을 해 줄 것이라는 것.

입사를 위해서는 지역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

그리고 오퍼를 받게 될 경우 내가 받게 될 예상 연봉의 수치 (정확히는 공고에 적힌 숫자의 중간값) 등

서로가 알고 있는 사항에 대해 재 확인하는 시간을 다시 가졌다.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HR은 다시 팀과 논의하여 며칠 내로 최종적으로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당연히 최종 오퍼 결과와, 내가 받게 될 연봉 수치에 대해 지금 당장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깊은 아쉬움과 함께, 알겠다는 말과 함께, 좋은 결과를 기다리겠다고 답변했다.


생각해 보면 시간이란 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상대적인 것 같다.

분명히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음에도, 시작과 끝은 전혀 다른 속도감을 지닌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차를 이용해서 여행을 간다고 생각해 보자.

첫 200km는 순식간에 지나가는 듯 하지만,

부산 시내로 접어들어 마지막 목적지까지 10km를 남겨두고 있을 때, 시간은 갑자기 그 무게를 드러낸다.

각 초가 무거운 짐처럼 내 어깨를 짓누르며, 그 짧은 거리가 어째서 그렇게도 끝없이 느껴지는지.


A사와의 인터뷰의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두 번째 인터뷰를 볼 때만 해도 마음을 내려놓은 상태였기에,

연락이 오는 것에 대해 그것이 늦다거나 하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정말로 최종 오퍼를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매일매일이 초조함과 긴장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핸드폰 진동이 울릴 때마다 혹시 그 연락이 HR로부터 온 연락이 아닌지 매번 확인하게 되었다.

더 이상 초연한 상태의 내가 아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어찌어찌 시간은 무심히 도 흘러, 3일째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기다리던 HR에게 다시 메일이 왔고, 나는 그와 통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전화를 하자마자, HR은 먼저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담낭씨. 이제 우리 팀 내부적으로는 어느 정도 대화가 끝이 났어요.

팀 매니저는 당신과 일하기를 매우 원하고 있고, 당신의 직책은 senior staff engineer가 될 것입니다.

여러 candidate 중에 당신이 가장 top candidate이에요"




이보다 더 듣기 좋은 인터뷰 면접 결과가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누군가 구직 활동은 마치 연애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했던가.

내가 마음에 들었던 그 상대가, 알고 보니 그 역시 나를 가장 마음에 품고 있었다는 뻔한 연애물 스토리처럼,

무언가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문득 내가 Q사의 인터뷰를 볼 때는 어떠했는지 떠올렸다.


Q사와의 2차 팀 인터뷰 이후에, HR은 나에게 인터뷰는 통과되었다 말했지만,

나는 면접 과정이 진행 중인 candidate들이 아직 더 있다는 이유로 하염없이 달여를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나중에 내부 소식을 통해 들은 바에 의하면) 나보다 더 적합한 누군가가 나타났었지만,

높은 몸값으로 인해 거절된 후 그다음 기회를 내가 운 좋게 거머쥘 수 있었다.

어찌 되었건 오퍼를 받을 수 있었지만, 무언가 꿩 대신 닭 같은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 여가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이 팀은 오롯이 나를 원하고 있다.

다른 누군가를 데려오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선택당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1순위로 경력과 전문성을 원하는 누군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여하튼, 오퍼를 주겠다는 HR에게 나는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의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오퍼에 대한 구체적인 숫자 (연봉)는 얼마인가요?"


그랬다.

오퍼를 주겠다는 HR의 그 말에도 사실 나는 온전히 기뻐할 수는 없었다.

이미 두 차례의 면접 이후, 어느 정도 새로운 팀에 마음이 가버린 나에게,

가장 최악의 경우는, 오퍼를 못 받는 것이 아니라 기대에 못 미치는 오퍼를 받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구체적인 숫자는 그날에도 들을 수 없었고,

나는 또다시 그 무거운 무게의 시간을 견뎌내야만 했다.

그 어느때보다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하루가 억만년과 같이 느껴질 정도로 초조했다.

그만큼, 나는 목적지에 다 와가고 있는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1주일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 드디어 HR은 그토록 내가 기다리던 '구체적인 숫자'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 숫자는, 몇 번이고 그가 자신 있게 내 예상 연봉이라고 이야기했던,

공고에 적혀있는 연봉 범위의 '중간값' 보다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의 숫자였다.


정확히 내가 우려했던 그 최악의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 했던가.


HR은 그전까지 계속해서 내가 받게 될 연봉으로 공고에 적혀있는 값의 '중간값'을 언급했고,

나 역시 그 정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나름대로 그 '중간값' 보다 조금 더 받기 위해서 어떤 식의 연봉 협상을 진행할지 혼자 생각도 해보고,

행여나 협상이 원활히 잘 진행되지 않더라도, 그 '중간값'의 연봉은 현재 연봉보다 훨씬 많은 수준이었기에

정말 내가 이 정도 연봉을 받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도 여러 차례 했었다.


그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들은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이었고, 차가웠고, 냉철했다.

그들이 제시한 숫자는 물론 현재 내 연봉보다 더 현저히 높긴 했지만,

이곳 샌디에고를 버리고 실리콘밸리로 갈 만큼 매력적이지는 못했다.


나의 이런 반응을 눈치챘는지, HR은 계속해서 부연 설명하기 시작했다.


"원래 내가 이야기했던 중간값에서 많이 낮아진 것을 알아. 나도 처음에 조금 깜짝 놀랐어.

그래도 이것 말고도, 네가 받게 될 현금 보너스와 주식 보너스, 그리고 입사 보너스들이 있어.

이것들은 네가 현재 Q사에서 가지고 있는 주식을 고려해서 최대한 많은 수치를 줄 수 있도록

최대한 고려한 숫자야"


그렇게 HR은 다른 부가적인 보너스 숫자들도 설명하기 시작했다.

분명, 그가 언급한 입사 보너스와 주식 보너스는 어느 정도 높은 수준이기는 했다.

적어도 내가 Q사에서 받았던 수치보다 몇 배는 높은 수치였다.


"연봉에 대해 내부적으로 얘기한 결과, 우리는 내부 형평성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어.

이 연봉은 우리 팀 내부에 다른 엔지니어들의 연차와 연봉을 고려해서 계산된 숫자야.

물론 내가 말했던 중간값보다는 낮지만, 너도 알다시피, 연차에 직급은 매우 파격적인 조건이잖아.

이 직급부터는 기본적으로 매년 받는 현금 보너스와 주식 보너스의 비율도 높은 편이야.

그 점을 이해해 줬으면 해"


그랬다. 그 역시 이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여러 가지 합당한 '명분'을 가지고 온 것이다.

높은 직급, 팀 내 형평성 등 자세히 들어보면 그 또한 그들의 사정에 맞는 이유일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이 제시한 입사 보너스와 주식 보너스 또한 결코 낮은 수준은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그들이 제시한 연봉이 이미 높아져 버린 내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 역시, 나의 논리와 명분을 그에게 펼쳐야 했다.


"알겠어. 나 역시 팀 내 형평성을 매우 존중하고 이를 해치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러나 너도 알다시피 이 연봉은 네가 말했던 숫자보다 한참 낮은 숫자야.

처음 면접을 시작했을 때부터 네가 이 중간값 정도의 연봉을 받게 될 거라고 나에게 이야기했고,

나도 그것을 기준으로 계속 생각해 왔기 때문에 지금 이 수치가 조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어."


나에게도 명분은 있었다.

이 높아진 기대치는, 내 맘대로 만든 것이 아니라 HR 당신이 나에게 심어준 기대치가 아니던가.

나는 최대한 담담하고 실망스러운 어투를 유지해야 했다.

그리고 마인드컨트롤을 위해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세뇌하듯 이야기했다.


'나는 이 오퍼가 없어도 괜찮아. 나는 지금 Q사에 다니고 있고, 충분히 만족하고 있어.'

'너희가 나를 원한다면, 좀 더 높은 수준의 연봉을 제시하도록 해'


그렇게 어느 정도 스스로 마음 정리를 한 후, 나는 다시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다른 수치는 나에게 만족스러운 편이야. 다만 이 연봉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터무니없이 낮아.

혹시 이 수치에 대해 다시 내부적으로 논의해 줄 수 있어?

적어도 나는 네가 생각했던 '중간값' 이상의 연봉을 받아야 할 것 같아"


원래 협상 전 내가 생각했던 그림은,

그가 나의 연봉으로 '중간값'을 제시하게 되면 그 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을 제안해 볼까 했었다.

그러나 그의 고도의 전략인지, 정말로 팀 내 형평성 문제 때문인지,

그들이 제안한 연봉은 '중간값'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이었고,

이제 나의 목표는, 최대한 그 '중간값'과 비슷한 수준이라도 연봉을 받고 싶다로 변하게 되었다.


그리고 HR은 예상했다는 듯,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래, 알겠어. 이 부분에 대해 다시 논의해 보고 연락 줄게"




돌이켜 생각해 보면, Q사에서는 이런 과정의 기회조차 나에게 주지 않았었다.


Q사의 HR은 나에게 한 없이 귀찮아했고,

현재 A사와 진행했던 이런 치열한 협상 과정은 거치지도 않은 채 바로 공식 오퍼레터를 보냈다.

내가, 왜 verbal negotiation을 하지도 않고 오퍼레터를 보내느냐 따지자,

그는 그제야 몰랐다는 척, 어느 부분에 대해 협상을 하고 싶은지 물었고,

내가 base가 생각보다 낮으니 10k 정도만 더 올려 받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그는 귀신같이 5k 이상은 올려줄 수 없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미국에 오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거기서 더 따지지 못한 채로 그렇게 (지금 생각해 보면 매우) 낮은 수준의 연봉으로 계약을 마무리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달랐다.


나는 Q사와 협상할 때 보다 훨씬 더 많은 배짱을 부릴 준비가 되어있었다.

지금 반드시 오퍼를 수락할 필요도 없었다.

오퍼를 수락하지 않더라도, 나는 현재 Q사를 잘 다니고 있으며, 심지어 영주권도 진행하고 있다.

이 영주권만 나오게 되면, 언제든지 다른 회사에 더 좋은 조건으로 언제든 이직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번 A사와 면접을 본 만큼 잘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겠지만)


그럼에도, 처음해보는 협상이라는 과정 자체는 확실히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이유와 명분이 있고, 예상 범위의 예산이 있다.

내가 더 높은 연봉을 받기 위해서는, 왜 이만큼 받아야 하는지, HR과 그 팀에 충분히 어필을 해야만 한다.


나는 여기에 만족하고 수긍할 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연봉을 요구할 것인가.

혹시 더 무리한 연봉 요구를 하다가 혹시 오퍼가 취소되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볼만한 배짱이 나에게 있는가.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충분한 기준점을 스스로 세운 후에,

최대한 그 연봉을 받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협상 전략을 스스로 해내야만 했다.

(물론 내가 정말 실력이 출중한 엔지니어였다면, 이럴 필요도 없이 좋은 오퍼를 받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나의 첫 번째 구두 협상은 마무리되었고, 나는 다시 또 새로운 협상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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