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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낭이 Feb 20. 2024

회사 면접이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누군가 나의 가치를 알아봐 준다면, A사 2차 팀 면접

2nd interview for senior staff engineer role


1차 hiring manager와의 인터뷰 후,

나는 어렴풋이 2차 팀 인터뷰가 잡힐 거라는 예상은 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hiring manager와의 인터뷰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런데,


1차 인터뷰 때에는 staff engineer로 명시되어 있던 이메일 제목이,

다시 공고에 적혀있는 대로, HR이 말했던 대로 senior staff engineer로 바뀐 것이 아닌가.


그냥 혼란스러워졌다.


그저 HR의 실수로 둘 중 하나의 표기에 오타가 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1차 인터뷰가 너무나 원활히 잘 흘러가서 갑자기 다시 올라간 것일 수도 있었다.

(물론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정도로 1차 인터뷰를 잘 보지는 않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으로 이상했다.

받을 수 있는 직급이 갑자기 떨어졌다고 생각할 땐 아쉽더니,

갑자기 또 내가 그 직급을 받을 거라 생각하니, 두려웠다.


내가 과연 그 직급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 스스로도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는 상황 속에서, 그냥 그렇게 2차 인터뷰를 시작하기로 했다.


무슨 직급이든, 어차피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이 인터뷰 과정들을 모두 통과하고,

최종 오퍼를 받아야 고민할 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A사의 2차 인터뷰는 두 사람씩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다.

첫날은 현재 일하고 있는 실제 엔지니어들과 인터뷰가 진행이 되었다.


첫날의 첫 번째 면접관은, 나의 background와 실제 진행했던 project들에 맞춰 여러 질문들을 했다.

대부분의 내가 했던 project들에 관심을 보였고 특히 Q사에서 진행했던 project들에 대해 얘기할 때는,

그의 실제 현재 업무와 맞닿아 있는 부분도 있었는지, 자연스럽게 technical discussion을 진행하기도 했다.


면접을 보는 느낌이 아니라,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회의 같은 느낌이어서 좋았다.


반면, 두 번째 면접관은 조금 더 까다로웠다.

Taiwan 팀의 manager였는데, 실제 현업에서 문제 될 만한 이슈들에 대해,

"너라면 어떻게 해결하겠어?"라는 질문들이 많았고,

첫 번째 인터뷰와는 달리 정확히 대답하지 못한 질문들도 많았다.


다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아는 지식 내에서의 기술적 설명과,

그 일이 벌어졌을 때의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에 대한 나의 추측과 예상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 시간이 끝나고,

여느 평범한 다른 면접들처럼, 아쉬움을 가득 남긴 채 인터뷰가 끝이 났던 기억이 있다.


'이 부분에서는 이렇게 어필을 할걸, 이런 기술적 대답을 선보일걸...'


두 번째 날의 첫 번째 면접관은 그 팀의 VP였다.

그녀는 질문보다는 현재 본인 팀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은 이렇고, 내가 만약 입사하게 되면 이러한 challenge에 대해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식의

전형적인 임원 면접 같은 느낌이었다.


다행히, 내 background와 이곳에서 합격하게 된다면 앞으로 하게 될 업무들이

그녀의 기대치에 부응하는 듯 보였고, 큰 문제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마지막 면접관은, 다시 hiring manager였다.


"지난번 인터뷰는 내가 카메라가 잘 동작하지 않아서 내 얼굴을 못 보여주고 진행했는데,

이제는 잘 동작하는 것 같네요. 제 얼굴 잘 보이지요?"


한번 경험한 면접이어서인지, 워낙 편하게 진행을 해주어서 인지

시작부터 큰 긴장 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만난 그가 나에게 던진 질문들은 좀 더 심화되고 어려운 질문들이었다.

정답은 없는, 하지만 일정 이상의 기술적 지식이 있어야 답변할 수 있는 방법론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S사, 그리고 현재 Q사에서 보고 듣고 경험했던 내용들을 바탕으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답변을 하며 진행하던 와중에,

갑자기 그가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지난번에 우리 팀에서, 이쪽 silicon debug 분야도 시작하고 있다고 말한 거 기억하지요?

제 기억에 담낭이 씨 박사 논문(Thesis) 주제도 이쪽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맞나요?"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박사 시절 연구 분야에 대해 물어보길래 신이 나서 대답을 했더니

갑자기 대뜸,


"그런데 이거 관련해서 publish 된 논문이나 특허가 없나요?

Resume를 아무리 봐도 관련 논문이나 특허에 대한 내용을 찾을 수가 없네요?"

하고 또 물어보는 게 아닌가.


당황한 나는 황급히 나의 resume를 확인해 보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 6년간의 석, 박사 시절 나의 노력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그래봤자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내 논문과 특허 실적들이 resume에 하나도 기입되어 있지 않은 것이 아닌가.


허겁지겁, 내 publish 된 저널들 4~5편 정도를 이야기해 주고,

논문들에 대한 컨셉과 아이디어들을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 내용들을 들으며 좀 더 심화된 질문 몇 개를 이어나갔고,

나는 내가 진행한 연구 수준에서 대답할 수 있는 내용들을 계속 답해갔다.


어느 정도 질문이 끝나고, 그는 약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혼내듯(?) 이렇게 말을 했다.


"담낭이님, 우리가 정말 중요한 걸 놓칠 뻔했네요.

이 분야는 지금 우리가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고 담낭님이 박사 시절 이런 연구를 진행한 것은

면접에서 충분히 좋은 추가 점수가 될 수 있어요.

우리 팀으로 오지 않더라도, resume는 반드시 업데이트해 두세요"


그리고, 이어진 그의 말.

그 말이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연구 주제가 아주 흥미롭네요, 잘 들었어요.
내 메일 알죠? 나중에 면접 끝나고 메일로 논문을 좀 공유해 주세요.




문득 예전 SK 하이닉스에서 산학 장학생 면접 보던 면접관의 한마디가 생각났다.


'이거 실제로 쓰일 수나 있나... 별로 필요 없는 연구 같은데...'


https://brunch.co.kr/@damnang2/47


그 한마디가 그 당시에는 참으로 분했지만, 또 맞는 말이기에 대꾸할 수 없었다.


우선 나의 연구분야 자체가, 내가 연구를 하던 2016~17년 당시에는 너무 앞서나간 발상의 분야였다.

칩 하나에 면적을 어떻게든 줄여야 하는 이 시점에서,

실제 칩의 기능 동작을 위한 회로가 아니라, 오로지 silicon debug만을 위한 목적으로 회로를 추가한다는 건

회사 입장에서는 엄청난 비용 낭비였기 때문이었다.


모든 연구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학계에서 진행되는 연구와 논문이라는 것은, 때로는 현업에서는 이상적이고, 실현 불가능 한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특정한 하나의 효과를 위해 여러 다른 변수들을 통제하여 실험하기 때문이다.

특히 추가적으로 하드웨어를 설계해서 다른 무언가를 좋게 만들겠다는 나의 논문들은,

하드웨어 비용 낭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설계에서는 상당히 많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 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항상 그런 식이었다.

지금까지 여러 업계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 논문에 대한 발표를 했었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거나, 실제로 쓰이는 거냐는 등 관심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기술이 많이 발전한 지금, 실제로 관련 분야에 대한 IEEE 표준화 활동도 진행되고 있고,

(그 당시에는 없어서 내가 직접 구현해야 했던) 관련 tool에 대한

EDA vendor 들의 개발도 현재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박사를 졸업한 지 4년 여가 지난 후였다.

아직도 가끔, google scholar를 통해 내 연구 분야에 대한 신규 논문들을 확인하곤 하지만,

박사 연구 분야와 다소 멀어진 커리어 패스를 밟고 있는 현재의 나에게는 다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떨결에 지원했던 이 팀이 알고 보니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현업의 일 뿐만 아니라,

내 박사 시절 연구 분야도 함께 연구개발 할 수 있는 팀이라니.

그리고, 팀의 수장이 (그 누구도 별 관심이 없었던) 나의 논문과 연구 아이디어에 높은 관심을 보여주다니.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듯한 기분은,

뭐랄까.. 나에게 알 수 없는 설렘을 주었다.

내 초라했던 박사 기간에 대한 보상을 받는 느낌.

내 논문이 쓸모없다고 여겼던 누군가에게 드디어 할 수 있는 말을 찾은 느낌.


기대와 긴장이 없이 시작되었던 A사와의 면접은 그렇게 뭔가 가슴 벅찬 설렘으로 마무리되어가고 있었고,

어쩌면 그 이상적인 설렘을 깨기 위한 것이었는지, 그나에게 마지막 현실적인 질문을 건넸다.


그래서, 생각하고 있는 TC는 혹시 어느 정도예요?




"저는 $XXXK 이하면 절대 이직할 생각이 없는데요" 라거나

"아이고 주실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좀 당겨 주세요~"라는 식으로

이야기할 배짱은 물론 다행히 나에게는 없었다.


HR과 논의한 대략적인 금액을 알고 있고, 정도 부근에서 생각하고 있다.

다만, (미국에서 가장 비싸다는 지역인) 실리콘밸리 지역으로 옮겨야 하고 나에게 부양할 가족이 있는 만큼,

그들을 부양할 수 있는 금액은 지원받으면 좋을 것 같다.


정도의 형식적인 답변으로 마무리했고, 그렇게 2차 인터뷰 과정이 모두 끝이 났다.


후련했다.

(괜히 사서 고생을 했지만) 큰 숙제를 하나 마무리 한 느낌이었다.


1차 면접을 끝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이미 Q사라는 아주 좋은 회사에서 잘 일하고 있고,

내가 A사, 당신들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라면 내가 원하는 수준의 높은 연봉을 제시해라.

그게 타당하다면, 기꺼이 이직할 용의가 있다.

어차피 결정은 내가 하는 거니까.


2차 면접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는 급할 것이 없었고, 높은 연봉의 오퍼를 받지 못한다면 아쉬울 순 있겠지만, 잃을 것이 없었다.


일종의 배짱장사 같이.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기에 부담도 없었고, 오히려 긴장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참 간사했다.

아무리 별생각 없이 그냥 진행한 거라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게 쉽게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면접을 끝마치고 나니, 조금씩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내 논문이) 누군가에게 인정받은 듯한 기분.

내가 좀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

갑자기 눈덩이처럼 불어난 그 감정들로 인해, "이곳에서 한번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내가 A사를 원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더욱더 걱정이 커져갔다.


'오퍼가 안 오면... 아쉽겠네... 참으로 아쉽겠어'

'오퍼가 오더라도... 내가 원하는 만큼의 연봉이 아니라면 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정말 어느 정도의 연봉을 받으면 만족하고서 이직을 하기로 결정할 수 있을까?'


그렇게 2차 인터뷰가 끝난 지 일주일 정도가 흐른 뒤,

나는 HR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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