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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낭이 Feb 11. 2024

직장인은 돈만 많이 주면 되지

가족은 먹여 살려야 하니까..

너 혹시 이 포지션에 지원할 생각 있니?


평소라면 그저 자주 오는 스팸 메시지 중 하나였을 것이다.

미국 이직을 결심한 이후, 영어로 만들어 놓은 나의 LinkedIn에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이런 이직 제의를 하는 메시지가 왔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내 박사 전공 분야인 'DFT'만 보고 연락하는 recruiter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무엇을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고, 

심지어는 내 이름이 아닌 'Hello candidate'로 오는 연락들을 볼 땐, 

그저 이 사람들도 그냥 검색해서 복붙 하는구나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이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달랐던 것 같다. 

먼저, 이미 지원해 둔 G사가 꽤 오랜 시간 연락도 없고, 나에게 관심도 없다는 점에서 

속으로 이미 좀 '삐져(?)'있던 데다가,

내가 이미 한번 관심 있게 봤던 A사의 job opening이었는데, 

이렇게 나한테 연락이 온다는 것이 뭔가 조금 설레기도 했고

그리고 먼저 연락 준 HR도, 

단순한 복붙성 연락이 아니라, 나의 직무를 조금은 공부하고 보내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그리고 연락이 온 A사는 어떤 곳인가.

대한민국에서도 이미 꽤 유명한 CEO인, 리사 수가 이끄는,

Fabless 회사 중에서는 그래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에 속하는 기업이 아닌가.


그래서, 그냥 홧김에 답장했다.


응, 나 이 포지션에 관심 있어




그러자 그 후에는 정말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HR은 나에게 이메일 주소와 CV를 물어보았고, 나와의 전화 약속 시간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진행에 덜컥 겁이 나기도 했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었다.


혼자서 전전긍긍하는 나를 보며, 와이프는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나 여기 회사에 인터뷰를 보게 될 것 같아"


놀란 와이프에게 우선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다.


1. 우선 이직이 결정된 것도 아니고, 이제 HR이랑 이야기하는 단계이다.

2. 이직할 생각도 없고, 그냥 재미(?) 삼아 진행해 보는 거다.

3. 만에 하나 인터뷰를 잘 봐서 이직이 성공하더라도, 연봉을 정말로 잘 주지 않는다면 나는 안 갈 거다.

4. 오히려 만약에 운 좋게 연봉을 많이 올려준다면 우리 가족에게도 좋을 거다. 

5. 어차피 결정은 내가 하는 거고,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자.

6. 아 근데 만약에 되면 샌디에고에서 산호세로 가긴 가야 하는데..


와이프는 6번에서 조금 당황해했지만,

어쨌든 아직 이직이 결정된 것도 아니고, 

행여나 연봉이 오르기라도 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또 좋은 일일테니 하면서 넘어가 주었다.

그러나 다음엔, 그런 결정을 할 때 꼭 먼저 물어봐 달라는 말과 함께.


나 역시, 이직을 진심으로 목표로 하고 진행한 일이 아니었기에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진행한 거였고,

그냥, 좋은 경험이 되겠구나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 흐르고, 

나는 나에게 연락을 준 HR과 전화를 하게 되었다.


미국 회사의 인터뷰 프로세스 중 가장 첫 단계인데, 우선 HR 단계에서 screening을 하는 것이다.

HR이 보기에 이 사람이 해당 직무와 연관성이 있을 것인지,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우선 판단하고, 

적합하다 생각이 들면, hiring manager에게 인터뷰 볼 것을 제안하게 된다.


보통 한 직무에 최소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 지원하는 미국인만큼,

HR 단계에서 우선 판단하여 지원자를 선별하고, 

그가 전달한 CV와 평가서를 가지고, hiring manager가 관심이 있는 경우, 다음 단계로 진행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HR이 먼저 연락을 준 case였기 때문에 조금 더 수월했다.

거의 모든 대화는 형식적이었고, HR은 지금까지 만나 본 HR 중에 가장 친절했다.


우선 그는 나의 background에 만족하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해당 직무의 job description을 보았을 때도, 

이건 분야라고 생각할 정도로 느낄 정도였으니까.


거기에 Q사와 S사에서 일한 경력, 그리고 관련 분야의 박사 학위까지.

무난하게 대화가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흘러나온 질문.


"아직 Q사에서 1년 반 정도밖에 일을 안 한 걸로 알고 있는데 이직하려는 이유가 있어?"


순간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네가 인터뷰 한번 보자며....'라고 답변하고 싶었지만 또 그럴 수는 없었다.

진심은 숨길 수록 좋은 것이 원래 이직 인터뷰가 아닌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무난하고, 당연한 답변을 했다.


"응, 나 지금 Q사에서도 매우 만족하면서 일하고 있어. 이곳은 배울 곳이 아주 많은 훌륭한 곳이야.

그러나, 지금 A사는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회사이기도 하고, 

또 나중에 내 커리어를 위해서 bay area에서 꼭 일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 

그러던 와중에 이렇게 놓칠 수 없는 좋은 기회가 와서 지원해 보려고 마음먹은 거야."


어차피 형식적으로 물어본 대답이었기에, 오히려 막힘없는 대답은 뻔했지만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대략 30분 정도의 통화가 지나고, HR은 갑자기 예상치도 못한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너 대략적으로 받고 싶은 연봉이 얼마야?




아니. 아직 이직이 확정되지도 않은 나에게 연봉을 먼저 물어보다니.

이건 대체 무슨 스타일의 면접 진행인가 싶었지만, 그렇다고 대답을 안 할 수도, 할 수도 없었다.

대충 얼버무리면서, 아직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고,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는지 

다시 역질문을 하자, HR은 이렇게 대답했다.


"응, 나는 나중에 네가 오퍼를 받게 되었을 때, 

서로 더 많은 시간낭비를 하지 않기 위해서 대략적으로 알고 싶었어.

내가 예상하는 연봉은, 이 직무 site에 나온 median 값인 xxx불 정도이고, 

이 직급의 매년 평균 보너스 %는 xx% 정도야.

거기에 입사하면 주어지는 주식과 signing bonus, 매년 추가적으로 지급되는 bonus가 있을 예정이야."


대략적으로 미국 회사가 어떤 식으로 연봉을 지급하는지는 알았지만, 깜짝 놀랐다.


첫 번째는, 그가 언급한 median 값이 내가 와이프에게 언급했던 

"그래도 XXX불 정도 준다고 그러면 내가 이직 생각해 볼게, 그런데 그럴리는 아마 없을 거야 하하"  

의 금액을 상회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처음 지원할 때 나 역시 그 job opening에서 예상 지급 연봉 금액의 range를 보았었다.

적어도, 그 range의 최소 금액이 현재 연봉보다 만 불 이상은 높은 수준이었기에,

그래 한번 지원해 보자,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가 중간값을 이야기하면서, 그 연봉을 받게 될 거라고 하니까,

정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HR은 정해진 것 하나 없이 그저 뻔하디 뻔한 이야기를 것인데도, 

그 숫자가 주는 설렘이 너무 강력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정도 연봉을 받게 된다면..... 정말 꽤 높은 수준이겠는걸.....' 


두 번째는, 역시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한 것이지만, 내가 받게 될 title, 직급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내가 senior staff의 직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을 했다.


물론, 지원할 때 나 역시 보았던 직급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 정도의 직급을 정말로 받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현재 Q사에서는 그보다 2단계 낮은 senior 직급으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으로 치자면, 과장 정도 되는 내가 차장을 지나치고 갑자기 부장을 달게 되는 격이었다.


생각해 보면, Q사에 지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내가 지원했던 Q사의 job title은 senior staff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 직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지원을 했고,

나를 뽑았던 Q사에서도, 최종적으로 나의 경력을 고려해서 senior로 변경을 했다.


그래서 나는 그저 Q사처럼, 

title은 알아서 너희들이 조정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진행을 했는데, HR은 그런 것 없이 나에게, 직급으로 입사하게 되면, 

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냥 HR이 모르는 소리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바꿔 생각하면, 

아까 말했던 그 연봉도, 지금 직급보다 낮은 직급을 받게 되면 더 낮아지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그게 현실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연봉에서 낮아지면, 나에겐 이직을 해야 할 동기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굳이 미국으로 온 지 1년도 안 되는 시점에서, 

지역을 옮기고, 비자를 바꿔가면서 이직을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여하튼,

꿈과 같은 HR의 설명을 듣고, 잠깐이나마 설렜던 마음을 추스르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HR에게서 메일이 왔다.


"좋은 소식이야! Hiring manager가 너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해. 가능한 시간을 알려 주겠어?"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일이 벌어지고 나니 조금씩 현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연봉이 아니라면 옮기지 않겠다는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기에,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오히려 편하게 인터뷰에 임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HR에게 온 hiring interview 메일.


메일 제목에는, 

역시나 한 직급 낮은 title, staff enginer가 언급되어 있었고, 

그렇게 나는 아무런 기대도 가지지 않은 채, hiring manager와의 interview를 진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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