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사 hiring manager 와의 1차 인터뷰
이전 직장인 S사는, 매우 간략한 직급 체계를 사용했다.
Engineer(CL2)에서 출발해 Staff Engineer(CL3), Principal Engineer(CL4)를 거쳐 임원까지.
그리고 나는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staff engineer의 직급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일하고 있는 미국의 Q사의 직급 체계는 조금 더 세분화되어 있었다.
Engineer부터, Senior Engineer, Staff Engineer, Senior Staff Engineer, 그리고 Principal Engineer.
"Senior 면 지금보다 너무 낮게 받고 가는 거 아니에요?"
S사 퇴사 전 팀장님이 지나가듯 툭 던진, 그 한마디.
그랬다. 나는, 미국 Q사로 이직하면서 그들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Staff가 아닌, Senior engineer 타이틀을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그 팀장님의 말이 계속 마음 한구석에 맴돌았다.
Q사에서는 신임 박사에게 Senior engineer 직급을 부여하는 것이 일상적이라고는 하지만,
S사에서의 2년 반의 경력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고,
나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도 들었다.
어쩌면 Senior engineer라는 타이틀은,
그들과의 면접에서 내가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던 최대의 능력치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쨌든 미국에서의 새로운 시작, 그 가능성이 내게는 모든 것보다 소중했다.
직급과 연봉 따위야 언제든지 올라갈 수 있고, 변경될 수 있는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경험, 그것을 얻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번 이직 과정은 달랐다.
우리 가족은 이제 막 San Diego에 새롭게 뿌리를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나의 미국에서의 신분 상태 또한 아직 불완전한 상태였다.
나의 visa는 Q사가 지원해 주는 working visa였기 때문에,
만약 이직을 하려면 다시 처음부터 A사로부터 working visa를 받아야 한다는 위험 부담이 있었다.
(생각해 보라, 만에 하나 visa가 갑자기 취소라도 된다면... 바로 한국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 그냥 한번 진행해 볼까?라고 생각해 봤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주변 그 누구와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현재의 연봉과 비싼 미국 생활 물가.
그리고 매달 빨간 불이 들어오는 내 통장 잔고.
비자고 영주권이고 그전에 금전적으로 파산해서 한국으로 돌아갈 것 같은 불안한 감정 때문이었다.
그래. 지난번, HR이 꿈 같이 말해준 연봉을 정말로 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적어도 매달 적자가 나는 이 상황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 만으로도 어떤 위험 부담도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시작하기로 한 거다. 연봉이 오르면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는 정도의 마음가짐.
그러나 그 기대는 허상이었다.
HR이 말해준 높은 수준의 연봉은 그저 공고에 적힌 숫자의 중간값이 전부였고,
그것도 'senior staff'라는 직급을 받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
그 직급을 받지 못한 다는 것은, 결국 받게 될 연봉도 낮아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연봉을 받게 된다면,
나로서는 이 모든 위험 부담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사실, 잠시 멈추고 돌아보면, 그 시작부터 이미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상상이었다.
어떻게 갑작스럽게 senior engineer의 위치에서 두 직급이나 높은
senior staff engineer를 받게 된단 말인가.
또 어떻게 이유 없이 갑자기 연봉이 2배 가까이 오를 수 있단 말인가.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 좋은 일이 나에게만 벌어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왜 그런 달콤한 말들에 마음이 흔들렸던 걸까?
높은 직급과 연봉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 부끄러운 상상은,
HR로부터 정확하게 명시된, senior staff가 아닌, staff engineer interview라는
메일 제목 하나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참으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HR의 들뜬 메일 앞에서도, 나는 어떠한 감흥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무덤덤하게, A사 hiring manager와의 1차 인터뷰를 시작했다.
면접관으로 나선 A사의 Fellow, 중국인 'C'는
I사 에서의 20년이 넘는 세월을 오롯이 나와 같은 DFT 분야에 바친, DFT의 장인이었다.
그는 세심하게 나의 resume를 살폈고, 항목마다 날카로운 질문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나 역시, 내가 해온 일들, 아는 일들이기 때문에 별 무리 없이 그에게 대답할 수 있었다.
문득, 이전 Q사와의 1차 인터뷰가 떠올랐다.
그 당시 미국에 가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거의 한 달을 가까이 그 인터뷰만을 위해, 영어 학원을 다니고, 카메라를 켜서 연습을 하고,
script를 외우다시피 준비를 했었다.
그만큼 그 인터뷰는 내게 간절했고, 그 간절한 만큼 긴장되고, 소중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A사와의 인터뷰는 전혀 달랐다. 딱히 준비를 할 것도 없었다.
한국에 있던 나보다 미국에 있는 나의 영어는 조금 더 진보했고,
그 무엇보다도 절실하지 않았다.
만약 이번 인터뷰를 통과하지 못한다 해도,
나는 여전히 이 미국 땅에서 일하며, Q사에서 계속해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더구나, A사로부터 오퍼를 받는다고 해도,
내가 기대하는 (내가 나의 위험 부담을 기꺼이 떠안을 수 있을 정도의) 연봉 상승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면,
이직 자체에 대한 생각을 접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인터뷰에 대한 긴장감과 부담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의외로 더욱 자신감을 갖고 내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었다.
어느샌가 내 이야기 속 나는,
S사와 Q사에서의 짧은 경력이지만, 그로 인해 이 분야를 넓고 깊게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기에, 긴장도 없었던 것이다.
인터뷰가 마무리될 무렵, C가 던진 "혹시 질문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나는 내심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한 질문을 했다.
"이 조직의 일원이 된다면, 제가 맡게 될 역할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될까요?"
C는 그의 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의 팀은 이제 3-4명으로 구성된 신생 팀이었다.
그는 몇 번이고, 그들의 일이 매우 도전적이고 창의적이라는 것을 언급했다.
또한, 성장 중인 팀이었기에 해야 할 일도 많아 보였다.
그에게서 내가 받은 느낌은, 마치 스타트업에 합류한 것처럼,
처음부터 모든 것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한 가지 나의 호기심을 사로잡았던 건,
내가 박사 시절 주로 연구했던 분야에 대해 C의 팀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내 박사 연구 분야는 회사에서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거의 신경 쓰지 않는 분야였고,
나 역시, 박사 졸업 이후 가슴 한편에 그저 묻어두고 살았던 분야였다.
그렇게 S사와 Q사를 옮겨 다니며 나의 직무도 나의 박사 시절 연구분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고 있던 때에,
C의 팀이 이 분야에 대해서 업무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갑자기 우연히 길거리에서 첫사랑을 만난 것 마냥, 매우 설레었다.
'그래서 내 박사 시절 연구 분야에 대해서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었었구나.'
'내가 특허화 했던 연구 주제들을 이곳에서 실제로 적용해 볼 수 있는 기회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일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특허나 논문을 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일지도 몰라.'
A사에서, 정말 내가 잘 아는 지식들로 무언가 기여할 게 많을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상상의 나래를 하던 찰나에, 그렇게 인터뷰는 끝이 났다.
C와의 인터뷰 콜을 끝내고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왔고, 나를 기다리던 아내는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해 주었다.
"인터뷰 잘 봤나 봐, 얼굴이 밝아 보여."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진행된 A사와의 1차 인터뷰는 그렇게 끝이 났다.
내가 느낀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고, A사의 팀은 여러 측면에서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A사에서 일하게 된다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을 의미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박사시절 오랜 기간 연구했던 내용들을 다시 꺼내 들어
현업에서 적용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 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신분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의 이직이라는 위험,
그리고 미국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산호세로 이주해야 한다는 부담은 확실히 가장 큰 문제였다.
정말로, 연봉과 직급이 높은 수준으로 올라서,
나로 하여금 이러한 도전을 하게 할 커다란 동기부여가 존재하지 않는 한,
이직을 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박사 시절 연구 분야니 뭐니 하는 이야기들도,
가정을 이끌고 있는 가장으로서의 나에게는 모두 다 쓸데없는 이상론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인터뷰를 진행해 보기로 했다.
어차피 결정은 내가 하면 된다,
나는 이미 Q사라는 아주 좋은 회사에서 잘 일하고 있고,
내가 A사, 당신들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라면 내가 원하는 수준의 연봉을 제시해라.
그냥 그런 마음이었다. 아님 말고.
그리고 1주일 후, 예상했던 대로 2차 인터뷰를 보자는 A사의 HR의 메일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 메일을 본 나는 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메일의 제목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2nd interview for senior staff engineer ro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