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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낭이 Feb 27. 2024

이직 연봉,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

동대문 쇼핑몰 식 실리콘밸리 연봉 협상 과정

일주일 후, HR은 다시 나에게 연락하였다.

그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결연했고, 당당했다.

마치 자신이 최선을 다해 이 새로운 숫자를 가져온 것을 반증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담낭씨. 내부적으로 다시 논의해 본 결과예요.

아쉽게도, 제가 처음에 말했던 그 '중간값' 만큼 가져오는 것은 실패했지만 거의 비슷한 수준이에요.

이 이상은 내부 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하더군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담낭씨 연차 대비 이 직급과 연봉은 회사 내에서도 매우 높은 편이에요."


HR가 다시 가져온 연봉의 숫자는, 여전히 그가 말했던 중간값에는 약간 못 미쳤지만,

다행히 내가 보수적으로 예상했던 수준보다는 높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HR의 말,


"대신에, 주식 보너스와, 입사 보너스를 기존보다 조금 더 드리려고 해요.

이전에 담낭씨께서 이 숫자들은 만족스럽다고 하셨지만,

최대한 팀에서 담낭씨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정말로 팀에서는 나에게 '연봉을 더 주고 싶지만 어쩔 수 없어요'를 증명이라도 하고 싶다는 듯한,

예상치도 못했던 추가 주식 보너스와 입사 보너스까지.


정말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오고 갔다. 나는 이제 이 순간 결정을 해야 했다.


여기에 만족하고 수긍할 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연봉을 요구할 것인가.

혹시 더 무리한 연봉 요구를 하다가 혹시 오퍼가 취소되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볼만한 배짱이 나에게 있는가.


당신이라면 이 순간, 어땠을 것 같은가.

놀랍게도 나는 여기서 한번 더 배짱을 부려 보았다.


"우선 이렇게 신경을 많이 써줘서 고마워. 솔직히 주식과 입사 보너스를 더 받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

연봉도, 처음 제시한 것보다 더 높게 올려준 것에 대해서도 고맙게 생각해. 내 생각보다 더 많은 인상이었어.

하지만, 이전에 내가 얘기했던 대로, 내가 생각했던 내 연봉의 최소 기준은

우리가 면접 처음 시작부터 논의했던, 네가 언급했던 그 '중간값'의 수치였어.

그 기준으로 미국에서 가장 생활비 물가가 비싼 실리콘밸리 지역에서의 우리 4인 가족의 생활비를 계산했고,

그 수치가 합당하다고 생각해서 면접을 진행했던 거야.


혹시, 가능하다면 연봉에 대해서만 추가 인상이 가능할까?"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HR도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사실 HR이 두 번째로 들고 온 연봉과 그 '중간값' 간의 간격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10k 남짓.

그리고 이미 HR이 들고 온 총 TC (Total Compensation)은 이미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지금 내 연봉에 비하면 말이다.


그러나 왜였을까.

와이프에게 내가 받게 될지도 모르는 그 '중간값' 수준의 예상 연봉에 대해 신나서 떠들던 내 모습이,

왠지 그 수준의 연봉을 받지 못하게 되면 너무나 초라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을까.


아니면, 인터넷상에서 찾아본 이 직급에 대한 평균 연봉이 나의 그것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이라는 걸

알게 된 내가, 왠지 모르게 열등의식을 느꼈기 때문이었을까.

(물론 그들은 나보다 10년 이상의 연차를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스스로 왠지 모를 아쉬움, 그냥 왠지 한번 더 협상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번 더 협상을 진행한다고 해서 정말 오퍼가 취소될 리는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얼마간의 침묵 후, HR은 대답했다.


"아마 이 이상의 인상은 쉽지 않을 것 같아. 하지만 다시 팀에 물어볼게."


그렇게 또다시 끝없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배짱을 부린 지, 다시 1주일이 지나고 HR과 세 번째 협상 전화를 하게 되었다.


"담낭. 이 건과 관련해서 팀 내부적으로 다시 논의를 했어.

원래 Director 선에서 결정되는 연봉이었는데, 그 이상 인상은 VP 승인이 필요하다고 해서

VP 보고까지 올라가느라 시간이 조금 더 걸렸어.

결과적으로는, 더 이상의 인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우리 팀의 입장이야."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는, 옷을 사러 동대문 쇼핑몰을 많이 다녔었다.

학생 신분에,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나름대로 유행하는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그 무엇보다 좋은 것은 '가격 흥정'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청바지 하나가 5만 원이라고 하는 동대문 상인에게, 나는 2만 원 이상 줄 수 없다고 얘기한다.

그러면 그 상인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계산기를 가지고 오면서 무언가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입력한다.


48.


계산기에 적힌 숫자. 4만 8천 원을 달라는 이야기다.

처음엔 늘 그런 식이다. 약간의 금액을 깎아주면서 우리가 마진을 떼오고, 유통을 줄이고,

도매에서 남기고 등 어려운 말들을 써가며 그들이 이 돈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합당한 논리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협상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학생이기 때문에 많은 돈이 없다거나, 이곳의 단골임을 어필한다거나 등

마치 이 돈 아니면 안 살 것처럼. 이곳엔 당신 말고도 청바지를 살 곳들이 많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나는 무지성으로 다시 2만 5천 원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상인은 다시 인상을 찌푸리며 요란하게 계산기에 적는다.

원래는 얘가 9만 원이고 그 돈이면 원가도 안 남는다, 이렇고 저런 이유로 4만 5천 원 그 이상은 안된다.


그런 식의 공방이 어느 정도 지나면, 이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각자의 입장이 담긴 서로의 마지노선 가격대가 형성된다.

한쪽에서 동의를 하지 않으면 그 협상은 더 이상 성사되지 않는 바로 그 지점.


그 지점에서, 상대방이 나에게 넘어오는 그 짜릿함은 협상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혹은, 내가 넘어가더라도 이미 내 예상보다 훨씬 많이 저렴하게 산 경우, 그만의 즐거움이 또 존재하곤 한다.


그런 흥정 시스템 자체가 재미있는 곳, 그곳이 동대문 쇼핑몰이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실리콘 밸리의 미국 반도체 기업 연봉 협상이라는 것도 꼭,

그 동대문 쇼핑몰 흥정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지금의 순간이 바로 평행선을 달리는, 마지막 대척점의 지점인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청바지 가격으로 3만 원을 불렀지만, A사는 끝내 4만 원 아래로는 못 판다는 입장인 것이다.

VP까지 언급하며 더 이상의 인상이 힘들다는 HR에게, 내가 더 내밀 수 있는 카드는 없었다.


그래도 사실 지난번 협상에서 배짱을 부리긴 했었지만,

이미 HR이 두 번째에 제시한 연봉은 나에게는 현 상황과 비교해서도 매우 매력적인 수준이었다.


그래서, 어떤 대답이 돌아오든 이미 오퍼를 수락할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굳이 배짱을 한번 더 부렸던 건,

더 올려주면 좋고, 아니더라도 말고.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이미 어느 정도 예상했던 나는, 준비한 대로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논의해 줘서 고마워. 그것이 팀의 입장이고, 팀 내부의 형평성을 위한 결정이라면

나는 그것을 존중하고 따르겠어. 그 조건으로 오퍼 진행을 부탁해.

다만, 내가 알기로 이주 비용 지원은 팀 자금이 아닌, HR 소관으로 알고 있어.

이주 비용 지원은 가능한 최대한으로 지원해 줬으면 해!"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나의 협상 전략이었다.

그리고 이건 내가 동대문 쇼핑몰에서도 항상 쓰던 전략이었다.

"아저씨, 그럼 바지 4만 원에 살 테니 양말 하나 끼워줘요. 다음에 다시 또 올게요!"




그렇게 3번의 협상 끝에, 나는 오퍼를 수락하기로 하였다.

연봉은 다다익선이라지만, 회사는 절대로 내가 원하는 만큼 전부 주지 않는다.

결국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서는,

나만의 협상 카드가 있거나 (압도적인 기술 보유, 혹은 다른 회사로부터의 오퍼 등)

내가 인정하고 수긍할 수 있는 정도의 나의 기준선을 정해야 한다.


나는 아쉽게도 더 이상의 협상 카드가 없었기 때문에, 나 스스로 그 기준선을 정해야 했다.

그리고 이번 협상에서는, 다행히 그 기준선보다는 높은 수준의 오퍼를 받을 수 있었다.


흔히 그런 말이 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직 시에, 최소 2배 이상 연봉을 받아야 한국에서의 생활을 그나마 유지할 수 있다고.


그러나 아쉽게도 S사에서 Q사로 처음 이직할 당시에는 2배의 연봉을 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치열한 협상 과정도 없었고, 통보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나는 수긍을 해야만 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

그러나 한번 미국에 오고 나니 (생각보단 빠른 시점이었지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고,

그 기회를 통해 연봉과 직급을 더 높은 수준으로 올릴 수 있었다.


이제는 지금 보다 조금은 나은 미국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연봉 수준이 된 것이다.


미국은 그만큼 다양한 기회와 가능성이 풍부한 곳이었다.

 

또 하나,

이번 이직이 나에게 조금 더 의미가 있었던 건 Q사로 처음 이직했을 때처럼 누군가의 추천을 받은 게 아니라,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나 스스로 해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현재 보다 연봉과 직급이 훨씬 더 오른 채로 말이다.


그것도 한국 회사가 아닌 미국 회사에서!


면접 과정보다도 더 복잡하고 감정소모적인 연봉 협상 과정이었지만, 어쨌든 결국 끝내고 나니 후련했다.


최종 오퍼를 수락한 이후에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공식적인 오퍼 레터를 받을 수 있었고,

온보딩 절차부터, background 체크, 이주 관련 준비까지 큰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때는 알지 못했다.

오퍼 협상을 하고 오퍼를 기다리는 시간보다 더 괴로운 시간이 나에게 남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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