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했던 면접들... 그리나...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여러 리쿠르터들이 나에게 같은 position에 대해 연락을 주었고,
그리고 그 position은 꽤 높은 TC를 얘기하고 있었고,
그래서 호기심 때문에 한번 면접이나 볼까 하고
레쥬메를 전달한 것뿐이었는데,
무려 매니저가 관심 있다며 면접을 보자고 하다니!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사실 별생각 없었다.
분야를 바꿔야겠다는 구체적인 마음이 들었던 때도 아니었고,
막연한 연봉 제시는 실제 오퍼를 받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사실도
이미 여러 번의 이직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우선 엎질러진 물이었으니,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어도 잘 닦아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얼렁뚱땅 1차 인터뷰를 보았다.
면접을 본 매니저는
브로드컴의 APD라는 부서의 senior director였다.
주식이나 반도체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브로드컴은 요새 AI 시대에 빅테크의 ASIC을 만들어주는 걸로 유명하다.
특히 구글의 TPU를 생산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들어보셨을 텐데,
그 TPU 개발에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부서가 바로 APD였다.
그야말로 브로드컴에서 가장 핫한 곳 중 하나였던 것이다.
여하튼 senior director와는 전화로 1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가장 처음 물어본 질문은 역시 왜 이직하려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히 그 시점에는 AMD에 있던지 1년도 채 되지 않던 때라,
좋게 보이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어차피 딱히 큰 이유도 없던 나는 열심히 지어내야 했다.
"나는 이직, 그러니까 AMD를 떠나고 싶은 게 아니야"
라는 다소 파격적인 말로 나는 술술 거짓.. 이직 동기를 설명했다.
"네가 레쥬메에서 보다시피 나는 박사를 DFT 설계 쪽을 했어.
그런데 삼성, 퀄컴, AMD를 거치면서 Diagnosis, 즉 silicon 불량 분석 쪽을 보게 되었지.
물론 이 쪽에서 일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고, 그것들은 소중한 나의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해.
그러나, 너도 알다시피 이쪽 일은 대부분 '사후 처리'야.
내가 post silicon 영역에서 일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DFT 설계 단계에서 이런 post silicon의 지식이 반영될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느낀 적이 많았어.
그래서 더 늦기 전에, DFT 설계 쪽으로 옮기고 싶었어."
그 자리에서 단순히 지어낸 거치곤 나름 나쁘지 않은 이유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이직 동기는 앞으로 벌어질 수많은 면접에서 첫 대사로 유용하게 잘 활용되었다)
그리고 어차피
"거짓말하지 마 이 자식아"
라고 나에게 말할 수도 없었을 면접관은 형식적인 내 대답 후에,
내가 회사에서 해왔던 일들,
그리고 본인이 알고 있는 여러 가지 기술적인 질문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순조로웠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평이한 질문들, 그리고 평이한 대답.
게다가 그즈음에
AMD에 들어와서 했던 프로젝트로
팀을 대표해서 발표, 그리고 논문화를 작업 중이었기에
나는 내가 해온 것들에 자신감 있게 발표할 수 있었다.
면접이 모두 끝날 때쯤, 질문이 있냐는 그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물어보았다.
"혹시 면접관님이 보시기에 제 어떤 점들이 이 팀에 기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나요?"
"저를 면접보고 싶었던 이유가 혹시 어떤 점이셨을지 궁금합니다."
그 면접관 역시,
수많은 지원자 중에 분명 나와 면접을 진행하자고 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부분이 궁금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은 많은 하이어링 매니저 인터뷰에서 꽤 잘 먹히는 전략이었는데,
그 이유는
면접관으로 하여금 면접 전 서류상으로 나를 보았을 때,
나를 좋게 봤던 점을 다시금 상기시켜 줄 수 있고,
면접 내용이 나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나를 다른 지원자들과 차별화시켜줄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면접관은 예상대로 술술(?) 대답하기 시작했다.
"응, 네가 좋았던 점은 네가 post silicon 경험과 pre silicon 경험 모두를 갖고 있다는 점이었어.
우리는 사람을 늘 최소 규모로 뽑아. 그리고 모든 걸 다 할 줄 아는 사람을 원해.
최근에 인텔에서 많이 지원해서 그들을 본 적이 있었는데,
다들 자기가 맡은 분야만 할 줄 알더라고.
그게 꽤 실망스러웠는데, 너 레쥬메는 좀 특이해 보여서 한번 얘기해 보고 싶었어"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나는 속으로 '잘 걸렸다 요놈' 쾌재를 부르며 대답했다.
"맞아.
DFT 엔지니어의 진정한 가치는 설계 엔지니어임에도 post silicon까지 커버할 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도 이 기회에 관심이 있었던 거구.
나는 항상 새로운 조직에 조인할 때 두 가지를 생각하거든.
첫 번째는,
내가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얼마나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가.
그런 점에서 이 포지션은 나에게 매우 매력적인 포지션이었어."
그렇게 면접이 마무리되고, 나는 자신 있게 확신했다.
'2차 면접 준비를 해야겠구나!'
브로드컴의 2차 면접은 기존까지의 다른 회사 면접과는 다르게 on site로 진행되었다.
절실하지 않았기에, 쫄 릴 것도 없었다.
1차 면접 때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영국식 발음의 젠틀해 보였던 senior director는
실제로 만나보니 반바지 차림을 한 동네 아저씨 같아 보였다.
그렇게 그 어느 때보다도 편한 마음으로 면접장에 들어갔던 것 같다.
그러나 2차 인터뷰는 역시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다.
그 팀의 매니저 급 엔지니어 4명, 그리고 실무 엔지니어 2명,
그리고 다시 마지막 director 면접까지
총 7명의 DFT 전문가들과 하루 종일 면접을 진행해야 했다.
게다가 미국에서, 영어로, on site 면접은 처음이었다.
언어적인 부분이 막히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들었다.
'제발 울면서 면접 중간에 나오지만 말자'
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기나긴 면접을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처음 겪어본 On site 면접은 오히려 나에게 편안했다.
우선 가장 좋은 점은,
face to face로 진행한다는 것의 안정감이었다.
이 사람이 지금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그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면접관들은 프로페셔널하게, 하지만 최대한 나를 배려해 주며 면접을 진행하였다.
또 하나의 장점은, 칠판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내가 현재 AMD에서 하고 있는 일, diagnosis 분야의 일들은
현업 DFT 엔지니어도 손에 꼽을 만큼 적은 엔지니어들이 해본 일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내가 해온 일에 꽤나 큰 관심을 보였고,
나는 그들을 가르쳐 준다는 마음으로
칠판에 하나씩 단계별로 적으며 면접이 아닌 강의(?)를 해주었다.
2차 기술 면접에서 이렇게 주도를 가져오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단순히 면접관이 준비한 질문을 대답하는 것보다,
그 질문과 연계되어 내가 하고 있는,
특히 면접관이 관심보일 만한 내 주특기를 어필할 수 있는 시간을 잘 활용한다는 건
면접을 보는 입장에서 매우 귀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팀 자체가
pre silicon부터 post silicon까지 모두 관여하는 팀이라는 것을
이미 1차 인터뷰 때 잘 알았기에,
나는 내가 아는 것들, 그리고 그들이 궁금해하는 스킬들을
잘 어필할 수 있는 기회들을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2차 면접이 끝나고 마지막 senior director와의 대화만 남은 시간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낸 면접이었다.
아직 AMD에서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나 이렇게 얼렁뚱땅 이직을 해도 되는가....
근데 돈은 진짜 많이 줄라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들어온 senior director는 웃으며 면접이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 팀을 알 수 있는 너무 좋은 기회였고,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매우 형식적인 답변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물어본 질문.
그 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현재 영주권이 있는 상태이지요?
만약 입사하게 된다면 언제부터 합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일이 매우 많은 상황이기 때문에 바로 합류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