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은 좀 하고 삽시다
삼성 다니는 후배가, 정말 속상한 말투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1년동안 프로젝트 터질 거 다 막아주고 주말에 야근에 미친듯이 일했는데 결국 고과는 평범하네요"
어느 회사든 고과 시즌만 되면 직원들이 늘상 겪는 일이겠지만서도,
열심히 일한다는걸 아는 후배가 그런 얘기를 했을 때는 참 안타깝고 속상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딱히 적당한 위로를 해주지 못했다.
왜냐면, 나도 그게 싫어서, 극복하지 못해서 퇴사한 사람이었으니까.
물론 매니저들도 고충이 있다는 걸 안다.
그런데, 매니저도 사람인지라
항상 모든 고과 평가를 정량적으로 계산해서 평가하지 않는다.
고과는 한정 되어 있고, 지금 당장 고과를 주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 부터 주거나,
이 사람은 당장 안줘도 큰 문제 없겠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얼마나 일했는지는 큰 상관이 없다. 그 순간을 잘 넘기면 된다.
그래서 어떤 매니저는 아예 대놓고,
"너는 어차피 지금 받을 시기 아니니까 몇 년만 참고 버텨, 나중에 다 챙겨줄게"
이런 개소리를 시전하기도 한다.
(참고로 고과의 세계에서 다음이란 없다. 누가 언제 잘릴지 어떻게 알고...)
마침 이 연락을 받았을 때가, 내 개인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나름 큰 맘먹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비싼돈을 주고 호텔을 예약해서 호캉스를 즐기고 있었는데,
방 온도가 너무 추운게 아닌가?
곧 따뜻해 지겠지.. 곧 따뜻해 지겠지... 했는데 3~4시간이 지나도록 온도가 올라가지 않아
프론트에 문의했더니, 확인하러 사람을 보내왔고, 그들은 몇 십분간 내방에서 확인하더니,
방을 바꿀 수 있겠냐고 물어보았다.
호텔 쪽의 실수로 내 개인적인 시간을 빼았겼다는 사실이 조금 화가 났지만, 알겠다고 했고,
곧 방을 바꿔주기로 한 직원이 찾아왔다.
나는 적어도 나를 보고 미안하다는 이야기는 할 줄 알았는데, 정말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조금 화가 난 나는 날선 목소리로, "입실 전에 난방 체크를 확인 안하시나봐요?" 하고 물었고,
그는 "제 담당이 아니어서 잘 모르겠는데요" 하고 대답했다.
그 말에 정말 화가 난 나는, "담당이 아니면 미안하다는 말도 안하시나요?" 라고 쏘아붙였다.
정말 화가 났다. 그리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지?
내가 내 돈을 주고 이런 대접을 여기서 받아야 하나?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무시를 당하고 있지?
그리고 방을 옮겼는데, 이전 방보다 더 좋지않은 구조에, 뷰도 내가 원하는 뷰가 아니었다.
최악이었다.
바로 프론트에 연락해서 진짜 살면서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감정과 어투로 내 모든 불만을 쏟아냈다.
그제서야 그쪽 매니저가 직접 찾아와서 사과하고, 방을 더 좋은 방으로 업그레이드 해 주었다.
정말 또 다시 한번 느낀 하루였다.
"지랄하지 않으면 알아주질 않는구나"
나는 강약약강(강한자에게 약하고 약한자에게 강한 것)은 모든 인간의 공통된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강강약약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강해져야 한다. 적어도, 다른 누군가에게 강해 보여야 한다.
그 누군가가 나에게 함부로 할 수 없어야 하고, 그로 인해 내 권리를 응당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회사로 돌아와서,
그건 내 상사에게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이고, 그걸 위해 내가 얼마나 고생하고 있으며
이걸 알아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식의 일종의 '무언의 협박'이 필요하다.
공손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나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알도록 해야 한다.
"쟤는 내가 고과 한 두번 안줘도 괜찮을 거야"
"쟤는 내가 좀 심하게 말해도 크게 대꾸도 못하던 걸"
이런게 한 두번 쌓이다 보면, 결국 그게 내가 받는 대접이 되고 마는게 아닐까?
정말 그들도 "지랄하지 않으면, 알아주질 않는다"
씁쓸하지만, 그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