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낭이 Oct 27. 2022

박사과정 본심 후 작성한 6년간의 대학원 생활의 소회

그래도, 박사 하길 잘했다.

지금은 이제 벌써 학위 취득한 지 근 3년이 다 되어 가네요

예전 블로그 작성 시절에 썼던 글인데, 브런치 작가가 된 기념으로 옮겨보았습니다.

공학 박사를 했던 분이나, 하고 계신 분이나, 할 생각이 있으신 분이라면,

어쩌면 재밌게 읽으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올려봅니다.





새벽이 되어서 일까.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하는 밤이다.


당연히 졸업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진짜로 박사과정의 본 심사까지 마무리가 되고 나니, 실감이 난다.



내가 박사구나.


아직 부족한 점도 많은데, 내가 감히 Ph.D 학위를 받아도 되는 걸까. 겁이나기도 한다.



감정이 뒤섞인 이 글은 그 어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는 글은 아니겠지만,


그래서 그리 많이 읽힐 글도 아니겠지만,



뭐, 그래서 더 좋다.


온전히 나의 이야기이고, 나의 글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하찮아 보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대상일 수도 있을 나의 박사과정 생활에 대한 소회를 잠시나마 풀어보려 한다.







미안하지만 학점이 너무 좋지 않아 연구실 인턴으로 들어오기 힘들 것 같다




지도교수님과 연구실 인턴에 관해서 첫 상담을 했을 때, 교수님께서 나에게 하셨던 말씀이다.



사실 나는 공부와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나름 서울 소재 대학 중에 좋은 대학이라고 여겨지는 곳에 어떻게 입학을 하긴 했지만,


공부가, 그것도 전기전자 과목 공부가 너무 싫었다. 어려웠다.



그래서 학부 때, 정말 공부 빼고는 다해봤던 것 같다.


음악 활동, 동아리 활동, 창업 활동 등등


그러고 나서 20대 후반이 되고,


어떻게든 졸업을 하려다 보니 시작한 전공 공부가 다시금 너무 재미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대학원에 가고 싶었다.


학부 때 공부를 못한 만큼 더 공부를 다시 하고 싶었기에 대학원에 가고자 했다.



하지만 나 같은 날라리를 교수님은 받아주지 않으셨다.


다만, 1학기의 유예 기간을 주셨다.


1학기 동안, 본인 수업을 포함하여 전공 수업을 들어서,


네가 연구실에서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에게 보여달라고 하셨다.



지금 보면 그런 기회라도 주신 교수님께 몇 번이고 다시 감사드려야 할 일이지만,


너무나 이기적인 나란 놈은, 본인의 부족한 역량은 생각지도 않고 그 사실을 서운해하기만 했다.


아마, 같이 연구실 인턴을 지원했던 친구는 합격하고, 나는 불합격했기 때문에 더 서러웠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교수님과 그렇게 얘기를 나누고, 1층에 와서 피우던 담배의 그 맛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생각 없이 살던 내 삶에서 맛본 첫 패배감 같은, 그런 부류의 기분이었다.







아직도 갖고 있는 그 당시 어머니가 보내주신 장문의 카톡





뭐 어찌 됐든, 나는 내 인생 최고의 (두 번 다시는 있을 수 없는) 학기 학점을 받아


교수님께 무사히 나 자신을 '증명'해 보였고, 그렇게 2013년 2학기부터 대학원 인턴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는 석사로 입학했었다.


입학하던 그 당시에도, 사실 내가 박사까지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경험해보고 박사까지 할 수 있을지 판단해 보고 싶었다.



입학하고 나서는,


정말 수도 없이 논문을 읽었던 것 같다.


아마 대학원 생활 내내 읽었던 양 중에 입학 후 첫 해가 가장 논문을 많이 읽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원래 글 쓰기를 좋아했던 성격 탓도 있지만,


논문을 쓴다는 것은 뭔가 나에게 엄청난 환상 같은 존재였다.



논문을 읽으면서, 학회와 저널의 차이도 알게 되고, 어떤 저널이 좋은 지도 파악하게 되고,


IEEE의 저명한 저널지에 연구실 선배들이 published 되는 것을 보면서


'나도 published 하고 싶다, 저 사람들처럼'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논문과 친해져 가고,


아이디어를 내고, 나를 옆에서 케어해 주던 사수 형을 매일 커피를 사줘가며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그 사이에 자그마한 국내외 학회들에 논문을 써보면서,


그렇게 석사 4학기 차에 첫 저널 논문을 accept 받게 되었을 때의 기분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마 그때 옆에서 계속 붙어서 봐주던 사수 형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박사과정을 해야겠다고 결정하게 된 건, 오히려 너무 간단한 생각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다가, 언젠가 깨닫게 된 것 같다.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해내야 한다'라는 것을





어떤 일을 하던지,


내가 '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다만, 그것을 해내면 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는 마음이 편해졌다.






2번째 저널 논문은 이듬해에 작성되었다.


새로운 논문 작성을 위해 아이디어를 생각하던 중에,


기존의 연구실에서 나왔던 연구에서 참조하여 나의 분야에 적용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디어가 확정되고부터는, 논문 작성 완료까지 정확히 2달이 걸렸던 것 같다.



가끔 연구실 친구들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논문을 쓰냐'라고 물어보곤 하지만


사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조금 억울한 것도 있다.


그 2달 중에 논문 작성하는 데 거의 하루 20시간 가까이 시간을 썼던 날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기 때문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논문 쓰는 것이 재미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논문이 published 되고 나서의 그 쾌감이 너무나 짜릿했다.



전 세계의 석학들과 나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그들의 공격을 적절하게 defense 한 후에,


그들이 'All my Comments have been answered properly' 하고 답변이 올 때의 그 쾌감.



아마 이 글을 읽는 다른 박사과정 학생이라면 모두가 공감하지 않을까.





정말 운이 좋았다고 밖에 표현 못할 만큼 다행스러웠던 건,


나의 지도교수님은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라는 점이다.



연구실 생활할 때는 당연하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다른 연구실 (심지어 같은 학교임에도) 상황들을 들었을 때, 얼마나 감사하게 느껴졌던지.



간혹, hibrain.net 같은 곳에,


교수님과의 불화 등, 정말 상상도 안 되는 이유로 학위를 포기하는 몇 연구자들을 본 적이 있는데,



이제 와서 느끼는 거지만, 정말 다시 한번 교수님께 감사드리는 바이다.






마지막 본심을 봐주신 교수님과 얘기를 하면서 교수님께서 물어보셨다.






자네, 박사 하기를 잘한 것 같은가?





지금 드는 생각은 정말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내가 박사과정을 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노예가 되는 걸 축하해' 하며


소위 장난 같은 진담을 건네곤 했다.







실제로 이런 짤도 돌아다니곤 한다






하지만, 본인이 정말 엔지니어로서 생각이 있다면,


공대 계열의 대학원 진학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많은 이들이 원하는 대기업 취업은 이제, 공대생들에게도 쉽지 않은 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외국 계열 기업들처럼, 이제 정시 채용은 더욱 없어지는 게 기정 사실화되고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박사라고 하면 어느 정도 인정해 주지 않는가.



또한, 전공 분야별로 다르겠지만,


요새 대학원에서는 월급도 잘 나오는 편이라 생활에 큰 부담이 없다.


기업에서 제공하는 산학장학생 장학금까지 받으면, 웬만한 대기업 신입 사원 연봉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그 이외에도 수많은 장점들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이제 학위를 받을 입장에서는 더 좋게 보일 수밖에 없긴 하겠지.



어쨌든 나에게는, 대학원 생활은 후회 없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오늘 졸업 논문의 마지막인, 감사의 글을 쓰면서 무척이나 감상적이 되어 글을 쓰게 된 것 같다.


어쨌든,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지금의 마음을 잊지 않고,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