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가 성지라고 다들 순례를 왔는지 모르겠지만 관심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뭔가 재미있는 현상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 저 시절에 일하던 것들이 하찮고 쓸모없어 보였어도,
그 와중에 하나 둘 도움이 되는 부분들은 분명히 있었다.
물론 아직도 내가 생각하는 삼성 내 조직과 업무 간 수많은 비효율적인 부분들이 있지만 말이다.
여하튼 나는 그 고귀하신 박사병에 걸린 채로, 수개월간을 스스로 없는 스트레스를 만들어가며
회사생활을 했던 것 같다.
약간의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지만, 나는 내 분야와 내가 맡은 삼성에서의 업무를 사랑했다.
삼성에서 정말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고, 내 분야를 발전시킬 수 있었으며, 이 일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현재 Qualcomm에서도 동일한 업무를 맡아,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에서의 불만은 업무가 어렵거나, 양이 많거나 한 것이 아니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포인트는,
1. 하는 일의 visibility가 매우 낮다 : 나는 삼성에서, 그 누구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관심이 없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없으면 안 되는, 데이터 서버 관리를 하게 되었다. 물론 더 뛰어난 누군가는 같은 일을 맡아도 스스로 자기의 존재 가치를 빛내 보였겠지만, 물박사인 나는 그저 속으로 투정하기에 바빴을 뿐이었다.
2. 지원 조직에 근무하여 주도적인 일이 힘들다 : 일을 진행하면서, 나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완성하면서 타 부서에 전달하고, 가이드하는 역할을 하였지만, 결국 내가 만든 솔루션을 사용할지 정하는 것은 다른 팀이었다. 실제로 열심히 만든 솔루션 중 일부는 그들이 관심 없다는 이유로 toy project로 전락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이 빛나기 위해 존재했으며, 그들이 원하지 않으면 필요 없는 존재라고 여겨졌다.
물론 물박사니까 하는 투정이다.
3. 하기 싫은 잡일이 너무 많다 : 회사에 잡일이 어디 있겠는가. 다 필요하니까 해야 하고, 해야 하니까 시키는 일이다. 하지만 실력도 없는 물박사라 딱히 중요한 일도 하지 않는 차에, 팀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시킬 때면, 나 스스로 자존감이 너무 떨어지곤 했다. 물론 회사의 유능한 인재는 나 같은 불만 없이 이런 사소한 잡일도 척척 해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팀에 존재하는 각종 보여주기 식 Agent들이 왜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이런 불만 포인트들은 Qualcomm으로 이직하면서 한순간에 해결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어떤 포인트들은 이직 후에 아쉬움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삼성에서의 여유롭였던 생활들,
책임지지 않아도 잘릴 걱정 없는 안일한 생활들,
삼시 세끼 친절한 식사와 친절한 파트원들이 있는 회사 생활들은
이직하면서 높아진 근무 강도와 함께 가끔 나에게 삼성을 그리워하게 되는 포인트가 되곤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환경에 만족하지 못한다.
나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 누군가는 그렇게도 만족스러웠을 그 생활을 나는 여러 가지 핑계들로 만족하지 못한 채 살았다.
그래도, 나에게 삼성에서의 이 짧고 굵은 2년 반 동안의 시간은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시간이 없었다면, 나에게 지금처럼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주어지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