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낭이 Mar 01. 2023

분당 SK 하이닉스에서의 처량했던 면접 기억

너희가 나를 불합격 시켰지만, 나도 너희를 불합격 시켰어

SK 하이닉스에 처음 도전했던 곳은, 분당에 있는 설계 부서였다.

원래 SK하이닉스 공장은 이천에 상주하고 있어, 대부분의 임직원이 이천으로 출퇴근하는 반면,

이곳은 분당에 있어 서울 거주자들에게 거리적으로 매우 메리트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나같이 메모리가 아닌, SOC 관련 설계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막연하게나마, 분당 설계팀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을 것 같다.



면접 당일, 나와 같은 처지의 연구실 친구들 2명과 함께, 면접을 보러 분당으로 도착했다.

집에서 자차로 2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으니, 더더욱 이곳에 합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에 대한 준비도 크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연구와 과제 내용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이 있었다.


도착해 보니 당시에 면접을 보기 위해 머물러 있던 사람들이 3-40명 정도 있었고, 

그렇게 면접이 시작되었다. 


처음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한 가지 추상적인 문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하이닉스가 메모리 업계에서 1위를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brainstorming 해보시오

생각지도 못한 창의성을 묻는 문제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보통 박사과정 산학장학생 면접은, 본인의 기술적 내용만 잘 증명하면 된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사실 솔직하게 하이닉스가 2등 하든 1등 하든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내가 아는 기술적 수준에서 나열해 보기 위해 열심히 작성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작성 후, 첫 기술 면접.

나를 맞이해 준 건 두 명의 면접관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파트장과 그룹장 정도의, 어느 정도 이 분야의 경험과 연륜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처음 진행했던 내용은, 미리 준비해 오라고 요청했던 나의 연구 내용 발표였다.

하이닉스는 까다롭게도 연구 내용을 그냥 준비하는 것이 아닌,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항목에 초점을 두어 발표를 진행시켰다.


 


나의 논문과 연구 내용 발표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고, 위의 5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돌이켜 생각해 보니 결국 이 5가지는 면접관들은 별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부서장 정도로 보이는 면접관은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실제로 쓰일 수나 있나... 별로 필요 없는 연구 같은데...'


그러면서 이 연구가 왜 필요한 지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나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사실 연구와 논문이라는 것은, 현업에서는 이상적이고, 실현 불가능 한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특정한 하나의 효과를 위해 여러 다른 변수들을 통제하여 실험하기 때문이다.


특히 추가적으로 하드웨어를 설계해서 무언가를 좋게 만들겠다는 나의 논문들은,

하드웨어 비용 낭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설계에서는 상당히 많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면접장은 면접이 아니라, 마치 논문 디펜스를 하는 졸업심사 같은 분위기로 바뀌고 있었다.


그 당시 나도 그리 고분고분한 목소리로 답변하지 않았던 기억으로 미루어보아,

내 스스로의 연구에 대해 편협적으로 바라보는 그 사람의 시선이 좋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분위기가 점점 이상해지자, 그 옆의 좀 더 직급이 높아 보이는 다른 한 면접관이 이야기를 전환했다.


"하이닉스가 메모리 업계 1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접근이 필요할 것 같아요?"


나는, 관련하여 내가 아는 수준에서의 기술들을 열심히 나열했고,

그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다른 면접관의 조소와 비웃음이었다. 


마지막에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xx 씨는 책을 잘 안 읽는 것 같은데, 기본 지식이 없는 것 같아"


결국 면접은 이상하게 종료가 되었다. 

왜 그래야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부서장급 면접자와 알 수 없는 감정 소모적 다툼을 하고 있었고

다른 그룹장급 면접자는 그 분위기를 전환하기 급급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사실 내 어떤 면이 그분의 심기를 그렇게 건드렸는지 잘 알지 못한다.

만약 정말 이유가 있었다면, 


1. 내 인상이 안 좋았거나

2. 내 연구 분야와 논문 주제가 비현실적으로 들렸거나

3. 하이닉스는 2등 기업이기 때문에 삼성전자를 따라잡으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내 말이 고까웠거나

4. 그날따라 하는 업무가 잘 안 되었거나


이런 이유 중 하나였지 않을까 싶은데,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때, 그 면접이 끝나고 1층으로 내려와 끊었던 담배를 수도 없이 피웠던 것 같다.

그 후로 형식적인 인성면접도 있었지만, 더 이상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최종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 면접관이 너무나도 미웠다. 

한참 논문을 여러 편 쓰던 시기였기 때문에, 알량한 자존심에 

'네가 논문에 대해 뭘 알아, 너는 논문 얼마나 써봤어!?' 하는 생각도 했다.  

물론 다 부질없는 생각일 뿐이었지만.


나는 그 관계에서 을이었고, 그는 갑이었다. 

그렇다면 안타깝게도 그 관계에서, 그 대화 순간에서 나는 더 이상 그를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당시에는 그 사실이 너무 분하고 속상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곳에 취업해서 그 사람과 함께 일했다면 나는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잘 생각해 보면 면접이라는 것은, 나라는 사람이 그 회사를 위해 

얼마나 적합한 사람인 지를 검증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 회사가 나에게 얼마나 잘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 너희는 내가 적합하지 않아서 나를 뽑지 않았지만, 나도 사실 너희와 일했다면 더 불행했을지도 몰라.


결과적으로는 나는 그 당시 면접에 떨어졌지만, 그래서 지금 더 좋은 커리어를 얻게 되었으니, 

그때 나의 불합격은 오히려 내 인생에 축복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이전 01화 반도체 전공하면 무조건 뽑아준다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