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낭이 Jul 17. 2023

SK하이닉스가 아니라 삼성전자에 입사하다

자발적으로 인간성 나쁜 사람이 되다

XXX 씨, 나랑 이렇게까지 얘기해 놓고 나중에 다른데 가면
정말 인간성 나쁜 사람입니다!



여러번의 면접 탈락 후, 나는 최종적으로 2018년도에 SK 하이닉스 박사 장학생이 되었다.

위의 말은 그 당시, SK 하이닉스 인성 면접 시에 면접관이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겠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두 반도체 기업 간의 인재 경쟁은 정말 치열하다.

그래서 항상 인사팀은 서로를 주목하고, 인재를 빼앗기지, 혹은 빼앗기 위해 여러 전략들을 취한다.


그래서 당시 인성면접 시에, 면접관이 나에게 물어봤던 질문이 

첫 번째로는 논문을 이렇게 많이 썼는데 나중에 교수로 도망가는 것 아니냐? 였고

두 번째로는 왜 삼성전자가 아니라 하이닉스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일종의 先충성심 확인 같은 거였다.


나는 이미 준비해 간 답변으로 열심히 내 답변을 털어놓았다.


"저는 우리나라에 삼성과 하이닉스 모두 뛰어난 반도체 회사라는 것을 잘 압니다. 

반도체 박사 과정생으로서 두 회사 모두에 대해 고려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각 회사의 기업 문화와 회사 분위기가 저와 얼마나 잘 맞을지, 제 선배님들을 통해 물어보고 확인해 왔습니다


대부분의 사항은 두 회사 모두 비슷했으나, 회사 내 업무 처리에 대한 방식에서 달랐습니다.

삼성의 경우 연구원 개개인이 전체 시스템 중 하나의 톱니바퀴로서 해야 할 일만 잘하면 잘 돌아가게끔 구성된 반면, SK 하이닉스에서는 전체 시스템을 각자가 잘 조율할 수 있도록 유기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이 잘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더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하이닉스에서 근무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물론 삼성에서 일해본 결과 새빨간 거짓말이다.)


여하튼, 면접 내내 이렇게 박사 장학생으로 뽑아놓고 결국에 삼성으로 가버리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었는지, 여러 차례에 걸쳐 SK 하이닉스에 대한 충성심을 내비치길 요구했던 면접관이,


마지막 면접 순간에 나에게 했던 말이 바로 저 말이었다.


XXX 씨, 나랑 이렇게까지 얘기해 놓고 나중에 다른데 가면
정말 인간성 나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는 2017년 말, SK 하이닉스의 박사 장학생에 합격할 수 있었고,

2020년, 박사 졸업 후에 삼성전자로 취업했다.

  



하이닉스의 박사 장학생 대우는 생각 이상으로 친절하고, 깍듯했으며, 분에 넘칠 정도였다.


우선 장학생 첫 계약 시에 150만 원 상당의 노트북이 제공되었으며,

매월 150만 원의 장학금이 지급되었다.

그리고 생일마다 10만 원 상당의 생일 선물과, 분기-반기별 회사의 관심 어린 메일,

그리고 당연히 써야 하는 논문에 대해, 열심히 논문을 썼다는 이유로 추가 보너스까지 지급되었다.


2019년 박사 마지막 학기에는 중국 하이닉스 우시 공장에 견학을 해주는 이벤트도 있었다.


하이닉스 인사팀은 늘 간절했고, 본인들이 삼성보다 더 낫다는 점에 대해 어필했다.

기본 base salary는 늘 삼성보다 높음을 강조했고,

본인들이 그들보다 훨씬 더 박사 대우를 잘해주는 점을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나는 결국 삼성전자에 취업하기로 했다.


그냥, 내 인생을 결정 지을 회사가 1등 회사였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이 가장 컸다.

또 한편으로는, 분야는 다르지만 아버지가 다녔던 회사도 삼성전자였으니,

나도 그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주변에서는 아깝게 그 수천만 원을 포기하냐고 멍청하다고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차피 그 돈들은 다 갚아야 할 돈이니 그리 아까운 돈도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나는 그 인사팀 면접관 그분에게는 정말 인간성 나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학교를 졸업하고 정식으로 돈을 받고 일하는 순간 나도 이제 한 명의 professional engineer 인 것이다.

회사와 정식 계약을 하고, 이행하려 했으나 계약 조건이 맞지 않아 나는 계약을 파기했고, 

그 회사는 나를 설득할 만한 추가 benefit을 나에게 제시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나와 그 회사 간의 계약은 파기된 것이다. 그뿐이다. 그 이외의 말들은 애들 장난일 뿐이다.


사실 이 말은 내가 직접 생각한 것은 아니고,

나의 아버지가 내가 이런 결정을 하였을 때 해주셨던 말이다. 

어렸던 나는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찝찝함을 아버지의 이 말 한마디로 말끔하게 지울 수 있었다.


그래, 나는 이제 돈을 받고 고용된 사람이니까, 그에 합당하게 일을 하는 것이지. 

더 이상 학생이 아니니까.


그리고 놀랍게도, 2022년 미국 회사에 입사 준비를 하는 동안, 

회사와 면접, 오퍼레터가 오가는 상황에서의 치열한 협상 과정을 겪으며 


너 우리 회사 안 오면 바보 멍청이, 나빠! 

같은 애들 장난 수준의 면접이 아니라, 


정말 나의 실력이 내 sales point가 되어 내 연봉과 보너스를 결정하는 그런 면접을 경험한 후에야

아버지가 말씀하신 그 말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전 02화 분당 SK 하이닉스에서의 처량했던 면접 기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