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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낭이 Feb 27. 2023

반도체 전공하면 무조건 뽑아준다며..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더니.. 3전 4기 스토리

2014년, 연구실 석사로 갓 입사했을 때였다. 


갑자기 모든 연구실 사람들이 학교 내 큰 강의실로 가고 있었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곳을 같이 따라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던 건 바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의 산학장학생/입사 설명회였다.


그곳에 나온 인사담당자는 열변을 토하며 우리가 삼성전자에 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고,

내 예상과는 반대로, 그곳에 있는 나의 연구실 선배들은 크게 관심이 없는듯한 눈치들이었다.

그리고, 설명회가 끝나고,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구실 선배들은, 이미 대부분 "삼성, SK, LG 산학 장학생"으로 등록(혹은 내부적으로 결정)이 된 상태였고,

졸업하는 시점에 맞춰 본인이 어느 회사를 가고 싶은지를, 

마치 31가지 맛 아이스크림 고르듯이 고르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야... 반도체 설계 쪽으로 전공하기 잘했다"




시간이 흘러, 2017년 8월이 되었다. 

나는 박사 4학기 정도의, 군대로 치면 막 상병정도 되는 정도의 익숙함을 가지고 있던 차였다.

그리고, 슬슬 나도 예전 나의 선배들처럼, 산학 장학생이 되고 싶었다.


산학 장학생이라는 건 굉장히 매력적인 제도였다.

회사가 나를 잠재 인력이라고 판단하여, 수년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입사를 하게 되면 장학금을 받은 햇수의 2배만큼 일을 해야 하는 제도인데, 그 말은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회사에 계속 안 잘리고 다닐 수 있다는 뜻 아닌가!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린 생각이지만)


처음 지원 했던 곳은 당연히도 삼성전자였다. 파운드리와 분사하기 직전의 삼성 LSI.

나는 당연히 설계 전공이고, SOC 설계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LSI를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다 서류를 제출했고, 별 무리 없이 서류를 통과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화성시에 있는 DSR이라는 건물로 가서, 면접을 보았다.


사실 면접을 보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지만, 면접을 보셨던 책임님 두 분이 모두 우리 연구실 선배님이셨다. 함께 연구실 생활을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건너 건너 익히 잘 알고 있었고, 

또, 다른 연구실 선배들과 대화 한 바에 의하면 이미 나는, 어릴 적 다른 연구실 선배들이 그랬듯, 

당연히 합격할 수 밖에 없다고들 했다.

 

왜 그런 연락들이 면접도 보기 전에 왔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는 이미 확정된 것 같은 연락을 여기저기서 받았기 때문에, 뭐.. 면접도 크게 걱정 없이 봤던 것 같다.



면접을 다 보고 나서, 그곳 면접을 안내해 주시는 여직원분이 나를 따로 불러 얘기를 해주셨다


"그... 면접 보신 분들께서 이따가 xx님과 커피 한잔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여러 번 면접 관리를 했었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네요,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요" 


나와 함께 커피를 마셔주신, (다른 선배들에 의하면 이미 나는 면접도 보기 전에 합격이라 하셨던) 두 선배는, 이미 내가 입사라도 한 듯이, 내가 앞으로 하게 될 일들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 주셨고, 

나도 이미 내가 입사라도 한 듯, 잘 경청하며,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 같다.


집에 와서는, 와이프와 함께 즐거운 선합격의 기쁨을 즐겼고, 

아버지와는, 앞으로 졸업 후 회사, 삼성전자 근처에서 사는 게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하며 

동탄 신도시에 임장 아닌 임장도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정확히 2달 후에 불합격 메일을 받았다.




나는 놀랍게도 그 후로도 여러 번 떨어졌다.


2014년에는 그렇게나 우습게 보였던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의 면접은, 면접자들의 냉소와 괄시 속에 끝났고

분당에 위치한 하이닉스에서 봤던 면접은,

"너 기초 지식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책은 읽니?"라는 답변을 들으며 끝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가장 나 스스로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정확히 내 위의 선배까지 잘 누려오던 산학 장학생 제도는, 

내가 부족한 탓이었는지, 회사의 긴축 경영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꽤 오래 찾아오지 않았고


그렇게 3번의 연속된 실패 후에, 2018년에 드디어 SK 하이닉스 산학 장학생에 합격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때의 실패들이, 결국 지금의 Qualcomm 취업을 가능하게 했으니, 참 아이러니 하다.


돌이켜 보면, 모든 것들이, 내가 원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결정해서 될 수 있는 것들도 없었다.


그저, 그 순간순간 나에게 찾아오는 기회들을 내가 쟁취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당연히 얻어지는 것이란 건 없었고, 내가 감히 못 얻을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잘나서 쟁취한 것도 아니었을 거고, 못나서 잃어버린 것도 아니었을 거다...

그냥, 그 기회와 내가, 얼마나 운명적 기로에서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한 일종의 확률 게임 같은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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