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가 하루종일 생각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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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일한다고 이른 아침, 늦은 출근을 해가며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매니저와 얘기하면 할수록,
하나둘씩 지적 아닌 지적과 핀잔 아닌 핀잔에 나 스스로 지쳐 가는 걸 느꼈다.
그런 말을 내게 하는 매니저가 밉고 싫었던 게 아니라,
나는 왜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칭찬이나 격려가 아니라 지적을 받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밉고 싫었다.
미국에서는 훨씬 더 proactive 해야 하고, performance를 내야만 한다고 귀가 닳도록 들어왔는데,
머리로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내 행동과 결과는 그렇지 못하고 있는 거구나 생각하니,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괜히 실력도 안되면서 미국 회사에서 일한다고 설쳤나"
별의별 생각을 다하면서 의기소침한 채로 퇴근을 하던 그날.
유튜브에서 틀어놓은 영상에서 나온 맷 데이먼의 연설 한 구절이 내 가슴 깊숙이 박혀 들어왔다.
"Turn towards the problems that you see"
"문제가 보이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세요"
"You have to engage"
"그 속으로 뛰어드세요"
"And turn towards the problems that you see"
"그리고 다시, 문제가 보이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세요"
원래 명언이나 격언은 그 자체보다
나의 실제 현실과 맞물렸을 때 더 감동이 있고 아름다운 법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저 문장들이 나에게 크게 다가왔던 이유는,
정말 내가 현재 문제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나는 그 속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문제 파악: 스스로 일은 많이 하고 있다고 느끼면서 매니저의 요구충족에는 실패하고 있다.
해결 방안:
1. 실제 일을 얼마나, 어떻게 하고 있는지 파악이 필요하다.
2. 매니저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이 필요하다.
3. 나의 일을 어떻게 배분하면서 매니저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킬지 전략이 필요하다.
1. 내 work time을 분석하자.
스스로 되뇌며 저녁에 퇴근하자마자 애들을 재우고,
늦은 새벽에 나는 오늘 내가 하루종일 했던 것들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전 해보지 않았던 To do list, daily schedule을 엑셀로 작성하면서
실제로 내가 1주일에 얼마나 일을 하는지, 파악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 매니저가 나에게 할당해 준 각 프로젝트 별 work time rate와 일치하게 일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그래프 화 할 수 있도록 자동 매크로를 설정해 두었다.
고3 수능 때나 하던 일을, 서른 중반이 넘어서 다시 하게 되었지만, 확실히 의미가 있었다.
일이 순차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할당되던 삼성 시절과 달리
많은 양의 프로젝트와 할 일 들이 쏟아지는 이곳에서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나의 시간관리였던 것이다.
2. 상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리하다 문득, 내가 정말 이거구나! 하고 감탄했던 예전 유튜브 영상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정말 많은 영감과 동기부여를 유튜브에서 받고 있다. 감사할 일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NqXFSuEuRKI&t=14s
많은 좋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최명화 대표님으로부터 들었던 가장 내가 원하는 내용은 바로 이것이었다.
"당신의 상사는 하루 종일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정답은 바로, 그 사람의 상사입니다.
상사를 모실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상사의 마음에 들겠다는 각오로 접근하면, 당신은 S고과를 못 받습니다.
'이 친구는 내가 다른 회사를 가도 데려가고 싶어'라는 생각이 드는 친구는 바로,
"나를 나의 상사에게 잘 보이게 만드는 친구"입니다.
상사는 모실 대상이 아니라,
본인이 활용해야 할 최고의 자원입니다.
이전에도 여러 번 봤던 영상이지만, 정말 내 뒤통수를 한 대 치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내 매니저가 그 위 매니저에게 돋보일 수 있도록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이렇게 나 스스로 반문해 보니, 스스로에게 부끄러워 짐과 동시에,
정말 막막했던 그동안의 암흑 같던 기간에서 무언가 한줄기 빛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리를 해보니 다음과 같았다.
나의 업무 상태
1. Yield 관련 Project (할당 50%)
2. Foundry 관련 Project (할당 30%)
3. 인도팀으로부터 take over 한 Project (10%)
4. 기존 진행하다 곧 Hold 되는 Project (10%)
그 외 내 업무로 할당되어 있지 않지만,
5. 이미 종료된 Project 지만 유지보수개선 해야 할 Project
6. 새로운 Project을 위한 item 발굴
매니저가 돋보일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아이템
1. 새로운 innovative (SRAM) diagnostic project 발굴
2. 기존에 계속 발생 중인 debug 이슈 근본 원인 해결
3. Yield 관련 기여할 수 있는 sub project 발굴
정리를 하고 나니,
내가 지금 부족했고,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이 뭔지 조금 더 명확해지는 기분이었다.
먼저 나는, 현재 지속적으로 우리 팀을 괴롭히고 있는 debug 관련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나 스스로 다른 인도 팀 매니저와 meeting을 잡았다.
앞으로 나올 새 product에서 동일한 문제가 나오지 않도록, 직접 관여해서 처음부터 확인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project item 발굴을 위해,
팀 내 다른 yield 전문가 들과 현재 상황 및 아이템 발굴 review를 위한 weekly meeting을 잡았다.
대체 어떻게, 뭘 proactive 하게 일해야 하는 거야?라고 스스로 되뇌던 내가,
내 매니저가 원하는 것을 깨닫고 나서부터, 조금씩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게 돼버린 것이다.
이렇게 일하고 있는 것이, 이게 맞는 일일까? 잘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반문이 들 때면
이 일이 얼마나 내 매니저를 돋보이게 하는 일인가에 대해 스스로 되묻고는 했다.
그렇게 하고 나니, 100점짜리 정답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7-80점짜리 답안을 가지고 시험을 보고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미국 생활 적응기는 계속해서 현재진행형이다.
언젠가 3년, 5년 후의 내가 내 글을 보면서,
그래도 일정 부분은 맞게 살아왔었구나 할 수 있도록 이 감정과 기분들을 계속해서 정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