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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낭이 Sep 12. 2023

드래곤볼 손오공의 초사이어인 훈련 방법

몰입을 넘어 평정으로

드래곤볼.


나와 같은 8-90년대생 남자들 중에서 이 만화를 안 본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매우 유명한 소년만화이다.


특히 이 만화의 주인공인 손오공이 초사이어인으로 변신했던 그 첫 순간은, 

정말 지금 다시 봐도 전율이 흐를 정도로 멋있고, 

뭔가 그 남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감동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요새 문득, 일을 하다 보면

나는 이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이 초사이어인 상태에서 했던 훈련법이 생각나곤 한다.


내용은 이렇다.


셀이라는 극악무도한 인조인간이 나타났고, 

주인공들에게 10일이라는 시간을 주면서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훈련을 하고 오게끔 했다.


이에 초사이어인으로 변신할 수 있는 손오공, 베지터 등 주인공 일행은

실제 시간 하루가 1년의 시간으로 치환되는 "시간과 정신의 방"이라는 곳에서 열심히 수련을 하게 된다.


처음 손오공과 그 아들 손오반이 시간과 정신의 방을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은 총이틀이었지만,

손오공은 하루도 안돼서 그곳을 나오면서, 이렇게 말한다.


"더 이상 몸을 무리하게 단련시켜 봤자 도움이 안돼. 그런 짓은 수련이 아니야"

"나는 남은 9일 동안 3일 쉬고, 3일 훈련하고, 3일 쉬면서 셀을 맞을 준비를 하겠어"

"우리의 훈련 목표는 이 초사이어인 상태를 마음 편한 상태에서도 계속 유지하는 것이야"

(초사이어인의 변신은 기본적으로 극한의 분노를 통해 가능하다)


초사이어인 상태를 자연스레 유지하는 손오공을 보고 놀란 베지터
걱정하는 아들 오반과 달리 태평한 오공


어린 나이에 이 장면을 수도 없이 읽었을 때는,

단지 이 장면이 손오공의 알 수 없는 자신감 때문이거나 혹은, 

손오반의 진가를 알아버렸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자기만족 같은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새 계속 회사에서 일을 할수록,

손오공이 얼마나 통찰력 있는 훈련을 했는지 계속해서 감탄하게 될 뿐이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나의 가장 큰 장점은 "지나칠 정도로 과한 몰입을 잘한다는 것"이었다.

박사 과정 때에도, 

나는 논문 한 편을 쓸 때, 하루 20시간 이상을 논문에만 집중해서 작성했던 경험이 있다.

일단 그 하나에 꽂히면, 

화장실도 안 가고, 밥도 안 먹을 정도로 미쳐버리고, 그것을 완료해야만 그 몰입 상태를 끝내버리고는 했다. 

나는 때로는 그것을 꽤나 자랑스레 여겼었고, 나의 장점으로 인식하곤 했다.


미국 회사로 이직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마음 상태는 이미 '성취동기'로 가득 차 있었다. 

무엇이든 잘 해내고 싶은 마음, 어떤 일이든 바로바로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픈 마음, 

그리고 그것들을 내가 가진 몰입의 힘으로 해결해 내겠다는 욕망.

그래서 이곳에서도 그런 인재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강한 인정 욕구.


그러나 이곳은 학교가 아닌 회사였다.

학생 때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수준의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관리하며 일을 진행해야 했고,

하나에 미친 듯이 몰입해서 일하는 나의 장점은,

그 하나 때문에 다른 여러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의 단점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일을 하는 나의 마음이 계속해서 조급해지고, 

그 일들이 늘어날수록, 

해야 할 일에 대한 걱정과 했어야 하는 일에 대한 걱정들이 뒤섞인 채

일을 할 때마다 한 번씩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몸이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것이 나에게 한 번씩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게 되었다.


그렇다, 손오공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일을 잘하려면, 

초사이어인 상태(일을 잘하고자 하는 마음 상태)에서 무조건 훈련(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마음 상태를 온화하게, 그럼에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일종의 "steady state"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성장 방식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손오공으로부터 얻은 깨달음을 행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일주일에 4일 이상을 무조건 야근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아이들 pick up은 2회 이상 씩 내가 한다거나, 하루 8시간 이상 일하는 것을 지양하도록 노력 중이다.


마음속에 계속해서 이번 달의 나의 해야 할 일을 새겨 놓으면서도, 

그것 때문에 마음 조급해서 내 몸을 혹사시키지 않도록, 

일 할 때 최대 능률로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나를 위한, 그리고 가족을 위한 시간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계속해서 새삼 느끼곤 한다.


어렸을 때, 학교에 있었을 때는, 

"몰입의 단계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나와 남들과의 차별점을 주는 포인트라 생각했는데,


사회에 나와 보니,

그것은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해야 하는 매우 당연한 것이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그 상태를 내가 얼마나 자유자재로 자기 관리할 수 있는가.

그래서 이 상태를 단거리 달리기가 아닌 장거리 마라톤으로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가.

라는 걸 깨닫고 있는 하루하루이다. 


마치, 밥을 먹을 때도 초사이어인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손오공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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