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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낭이 Feb 23. 2023

과외 학생 어머니가 알려줬던 삶의 진리

누군가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한 일이다

연세대학교에 입학하고서, 가장 먼저 해야겠다고 느꼈던 것은 바로 과외였다. 나도

 나 스스로 용돈을 벌어서 생활하고 싶었기도 했고, 

특히 성인이 된 후에 따로 독립을 해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학교 앞 과외 매개 업체에 일정 돈을 내고 막연하게 기다렸던 적도 있었다.

물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리고 두번째로 과외를 구하기 위해 했던 행위는,

과외 중개 사이트, 아마 과외코리아 라는 이름의 사이트였던 것 같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내 기억에 아마, 그 사이트에 선생님으로서 등록하고, 소개글, 과외 지역 등을 적어두면, 

학생 혹은 학생의 어머니가 그 중 마음에 드는 선생님을 골라 연락하고, 

매칭이 잘 되면 일정 금액을 중개 사이트에 주는 그런 형식이었던 것 같다.


여하튼, 나는 사이트에 나름대로 나의 이름과 소개, 지역등을 적어놓고 하염없이 학생들을 기다렸던 것 같다.

누군가는 나에게 연락이 오겠지.

그때는 또, 약간의 학벌 부심도 있던 때라, 

그래도 연세대학교 학생이면 좀 많이 관심 가져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 후 얼마 뒤에, 한 어머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분은 본인의 자제분에 대한 이야기와, 나의 거주 지역 이런 것들을 물으시더니 

대뜸,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가 지금까지 여러 과외 선생님들과 연락을 해봤는데, 
아직 학생이어서 그런지.. 공부들은 다 잘한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다들 자기 어필을 안하는 거에요?
왜 제가 당신을 과외 선생님으로 뽑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실 수 있어요?

그 이야기를 들은 21살의 나는, 너무나 당황했다.

나는 무엇을 이야기 해야 하는가. 

그래서 버벅이며, 머리를 쥐어짜면서, 나를 어필하는 말씀을 드렸다.


그 분은, 그제서야, 

그렇게 앞으로 본인 설명좀 써놔주세요. 저희같은 아줌마들은 그냥 글만 봐서는 누가 좋은 선생님인지 몰라요

하시고서 전화를 끊으셨다.


뭐... 그 분과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는지 나는 그 과외를 시작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해야 할 것을 깨달았다.


- 연세대학교 재학 중 

- 07 수능 수리영역 만점

- 강동구 과외 가능


과외 사이트에 이런식으로 쓰여있던 나의 자기 소개를 어떻게 어필해야 하는지 말이다.

철저히 고객을 위한 자기 소개로 바꾸었던 것 같다.


안녕하세요, 저는 연세대학교 xxx 입니다. 저는 고3 때 수리영역 3등급을 받았던, 수학을 그렇게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재수 기간을 통해 수리영역 만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수학은 원리가 중요한 학문이고 이를 위해서는 교과서를 기본으로 원리를 먼저 깨우친 후에 응용을 하는 방법까지 순차적으로 익혀야 합니다. 단순히 문제를 많이 푸는 것 만으로는 성적을 절대 올릴 수 없습니다. 저는 재수 기간동안, 강남의 여러 유명한 선생님들의 강의를 종합하여 저만의 수리 영역을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저는 처음부터 점수가 좋았던 학생이 아니었기에, 지금 점수를 올려야 하는 학생들이 무엇을 가장 필요로 공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단순히 과외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공부가 왜 필요한지,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지 먼저 수능을 경험했던 선배로서, 형으로서, 오빠로서 알려줄 수 있는 역할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주절주절...


정확히는 기억 안나지만 뭐 대충 이런 글이었던 것 같다.

어필하고 싶었던 내용은, 나도 공부를 못했었는데 잘하게 되었다. 그 방법을 너에게도 알려주겠다. 그리고 단순히 돈만 받는 대학생 과외가 아니라 학생의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멘토 역할도 해주겠다. 이런 식이었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구구절절하게 해야 하나 싶기도 했는데, 그때는 몰랐다.  

남의 돈을 받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를 말이다.

받는 입장에서는 모르겠지만 그 적지 않은 돈을 주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제대로 된 선택을 하고 싶겠는가.   


결국 저렇게 글을 업데이트 한 이후로, 나는 꽤 많은 과외 연락을 받았고, 

아마 기억에 학기 등록금은 걱정 안해도 되는 정도로 과외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지나 서른 중후반이 된 지금, 브런치에 글을 쓰다가 

문득 그때 그 아주머니가 생각나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나의 브런치 글이 누군가에게 좋게 읽히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그 무언가를 내가 잘 작성해 줘야 한다.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쓴다면 그건 그냥 일기나 다름없다. 


생각해보면, 브런치 뿐 아니라 모든 사회 생활이 그렇다.

회사 생활도 결국, 나를 판단해 주는 나의 상사가 필요로 하는 것을 반 박자 먼저 제공해 줘야 한다. 

원만한 결혼 생활도, 나의 배우자를 먼저 배려해 줘야 내가 배려받을 수 있다.

친구 관계도, 선후배 관계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누군가를 위하는 일을 하자. 그것이 곧 나를 위한 일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지만,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다.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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