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기로에 서있을 때
멘토링을 하겠다고 선언한 이후로,
오픈 카카오톡 방으로 잊을만하면 한 번씩, 진로 상담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중, 최근에 연락온 친구가 매우 기억에 남았는데, 수능이 끝난 고3 학생이었다.
반도체 관련 학과를 위한 대학 결정을 해야 하는 고민을 하다가 나에게 상담을 한 것이었는데,
정말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겠다"라고 말하기 힘든 두 선택지 중에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 질문에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학을 결정해야 하는 일이고, 어느 대학이 더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대학을 결정한다는 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한 선택이기 때문이었다.
각 선택의 장점들이 명확했고 어떤 선택을 하던, 그 선택의 결과가 명확한 선택지 들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커리어 상담을 해주며 답을 주었던 케이스들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 생각하고 고민했던 케이스였던 것 같다.
결국, 그 친구가 잘 선택했을 테지만 말이다.
나와 함께 대학원 박사를 졸업한 형이 있었다.
우리 둘은 모두 졸업 후 삼성전자에 취업했지만, 그 형은 1년도 되지 않아 교수의 꿈을 안고,
지방에 있는 국립대학교의 교수가 된 형이었다.
최근 우연찮은 기회로, 그 형과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담낭아, 나 내년 2월까지만 교수하고 그만둬"
"내년에 인천 쪽에 내 모교 교수로 채용이 되어서 옮길 것 같아"
"5급 공무원 직은 사라지게 되었지만, 더 좋은 지역에서 좋은 학교에서 근무하게 될 것 같아"
"잘한 선택이겠지?"
그리고 나는 짧게 대답해 주었다.
이 세상에 좋은 선택은 없어요, 좋은 결과만 있을 뿐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서 계속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이 선택이 옳을지, 그렇지 않을지 고민하게 되고,
각자의 이유와 근거로 선택하게 된다.
어쩔 때는, 선택을 후회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그 선택을 곱씹으며 과거를 추억하기도 한다.
나도 작년 미국행을 결정하던 순간부터, 미국에 오고 나서도 여러 일을 겪으며 크고 작은 결정의 순간에서,
고민이 있을 때마다,
나의 교수님이 해주셨던 말을 꼭 떠올리곤 한다.
"만약 어떤 선택의 순간에 대해서 네가 1주일 이상 고민을 하게 된다면, 그 고민의 무게는 사실 같은 거야."
"어떤 선택을 하던,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기댓값은 같겠지"
"중요한 건, 그 선택 후에 네가 어떻게 하느냐일 거야."
막상 결정을 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쩌면 뻔하디 뻔한 말일 수도 있지만,
나는 교수님의 이 말이 내가 항상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 아주 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어떤 선택을 하던, 내가 잘하기만 하면 좋은 결과가 올 것이야.
좋은 선택 보다, 선택 후 좋은 결과를 얻는 것에 집중하자.
그래서, 이런 선택의 순간에서, 결정하기 힘들 때, 나는 그냥 내 마음이 조금 더 가는 쪽을 택했다.
미국행을 결정했을 때도 그랬다.
미국에서의 삶을 사는 것과 한국에서 삶을 사는 것 간의 각각의 장점과 단점이 있고,
어떤 한 선택을 내 마음속에 더 두는 순간, 갖지 못하게 될 다른 선택의 장점이 더 눈에 밟히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순간 결국 선택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내 감정 소모만 더 심해졌다.
그래서 그냥, 나는 내가 좀 더 멋있어 보이는 선택지를 했다.
"미국에서 일하는 반도체 개발자? 와 멋있다"
그냥 그게 내 선택의 이유의 모든 것이었다.
어차피 두 선택지 모두 다 장, 단점이 있기에, 더 내 마음이 가는,
어찌 보면 되게 유치한 이유로 결정을 한 것이다.
가끔은 한국에서 하던 것들을 미국에서 하지 못할 때가 그립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한 선택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한다.
미국에 올 수 있었던 기회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나는 한국에서 똑같이 후회하고 있었을 테니까.
그래서 그냥, 묵묵히 미국을 선택한 후의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회사 성취, 화목한 가족 관계... 등 내가 가지고 싶었던 가치들에서.
(그래도 여전히 한 번씩 한국의 여러 맛집이 그리울 땐 좀 서글프긴 하다)
갑자기 이런 뻔한 선택의 글을 쓰게 된 것은,
또 나에게 다가오게 될지도 모르는 어떤 선택의 순간을 대비하기 위한 예방책일 수도 있다.
그래도 항상 돌이켜 보면, 이 선택의 순간은 늘 설레었다.
이 선택으로 나의 인생이 또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상상할 수 있는 좋은 순간이 아닌가.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내가 교수님께 배웠던 인생에서의 작은 진리를 이 글을 통해 느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