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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낭이 Dec 08. 2023

소심한 I가 미국에서 살아남는 법

Fake it till you make it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1년을 마무리하며 성과 평가를 진행했다.


성과 평과는 매니저와 직원 간의 동상이몽이라 했던가.

역시 결과는 내가 생각한 것과 상이했다.


대다수의 점수는 사실 내가 예상한 그대로였지만,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점수를 받은 부분이 있었다. 바로 Communication.


매니저가 설명해 준, 내가 communication이 낮았던 이유는, 

단순히 내가 영어를 다른 원어민들보다 못해서만은 아니었다.

내가 좀 더, 이곳에서 갖춰야 할 태도와 관련 있는 것이었다.




매니저가 먼저 지적했던 내용은 내가 주도적으로 진행했던 project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날은 2주에 한 번씩 sr.director와 진행되는 project review 미팅이 진행되는 날이었다.


이미 인도 엔지니어들의 미적거리는 일처리에 화가 잔뜩 나있었던 sr.director는,

여러 질문들을 쏟아내다가, 

마지막으로 최근 3nm 공정의 P제품의 verification에 이슈가 없는지 물어보았다.


해당 내용은 내가 10월, 11월 동안 다른 인도 엔지니어들과 진행했던 내용이었고,

수치적으로 아직 2~3%의 추가 data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물론, 이 사실은 나의 매니저에게 이미 보고되었던 내용이었고, 

따라서 sr.director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인도팀의 mangaer V는, 

눈치껏 여기서 더 혼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였는지, 아니면 정신이 나간 건지

문제없다고 답변했다.


나는 순간 그가 왜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놀랐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우선 그 순간에 내가 껴들어서 그 말을 부정하게 되면, 

안 그래도 실컷 혼나고 있는 V가 다른 모두들 앞에서 더 곤욕스러운 상황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의가 끝나고 물어볼 생각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내 앞에 앉아있던 sr.director는 나에게

V가 말한 것, 정말 맞는지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이미 보고한 대로 아니라고 이야기했고, 아직 추가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그는 옆에 있는 principal 엔지니어인 J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V가 나를 결국 잘리게 하려나보다"


그렇게 회의실에서 자리로 돌아오고 나니, 매니저에게 메신저로 연락이 와있는 것이 아닌가.


"너 왜 그 순간 chime in 하지 않았어?"

"네가 10월, 11월에 검증했던 내용에 대해 speak up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잖아"

"팀에서 너의 credit은 네가 챙겨야지"


그랬다.

V가 혼나든, 난처하든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순간은 내가 내 존재감을 팀에 드러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던 것이고,

나는 보기 좋게 그 좋은 기회를 발로 걷어찬 것이다.


그러나 소심하기 그지없는 나로서는 쉽게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영어가 아직 한참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회사에 와서 upper level manager에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할 때는, 

크게 문제없이 잘했다고 생각해 왔다. 

적어도 내 manager가 그렇게 이야기해 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아직 잘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부분은 로 

회의 시간에 즉각적으로 내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을 하는 것이다.


매니저는 위의 사례 말고도, 여러 회의를 들먹이며,

"네가 회의에서 너무 조용하면, 굳이 회의에 참석할 필요가 없어"

"맞던 틀리던, 회의에서 너의 존재감을 계속해서 들어내도록 노력해"

라고 조언해 주었다.


뼈아픈 말이지만, 또 반박할 수 없었다.

단순히 나는 영어가 부족해서.... 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다수의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수줍음을 나는 좀 더 심하게 가지고 있는 걸까?

내 모습을 돌이켜보면, 

미팅 때 정말 조용히 가만히 있는 스스로가 느껴졌다.

이건 무슨 내용이지, 하다가도, 미팅이 끝나면 따로 물어보지 뭐 하고 지나가 버리기 일쑤였다.


분명 고칠 필요가 있었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이곳 미국에서는 정말 나 스스로 밥그릇을 찾아먹지 못하면 나만 결국 손해라는 걸 절실히 깨닫고 있다.


미국 회사에서 생존하는 건 아직도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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