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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온 May 11. 2019

영원의 순간

타임 푸어, 타임 리치

 시간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을 조금 더 여유롭게 쓸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여가시간에 서점에서 책 읽기를 즐기는데, 집에 시간 맞춰 가야 할 일이 있어서 화장실 가는 것도 미루고, 책을 빨리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집중했기 때문에 감명 깊은 구절을 따로 기록하기도 하고, 음미하기도 했다. 다만 천천히 음미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감명을 한번 받고, 재빨리 느껴보고, 빠르게 스쳐가는 상념을 캐치하고 넘어갔다. 마치 일 할 때 빠릿빠릿하게 일을 처리하듯이, 할 것은 다 했지만 쉴 틈 없는 속도였다. 약속이 되어있어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도 쉬다가 읽었던 것 중에서 감명 깊었던 것과 새로운 생각들에 대해 글을 쓰겠다고 생각했는데, 드라마를 봐야 하는 시간이 임박해 쉬지 못하고, 바로 글쓰기에 돌입했다. 아마도 드라마가 끝나면 좀 여유로워지겠지만,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려는 것을 충분히 하지 못할 수도 있고, 부담감을 느끼며 급하게 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이렇게 두 가지 삶 혹은 세 가지 삶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모자라고, 급해지는 현상이 자주 일어나는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일을 남는 시간에 하거나, 여기에 더하여 가정 살림까지 책임지면 쉴 틈 없이 해야 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난 직장에 다니면서도 나만의 삶을 잘 꾸려나가는 편이라고 생각하고, 회사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간혹 ‘시간이 모자라 더 음미할 수 있는 것을 급하게 처리하고 있다’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매일 하기란 어려웠다. 평일에는 저녁에 쉬거나 회사에서 필요한 자료를 찾아봐야 하는 일도 많아서 주말만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사실 고미숙 작가님의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라는 책을 읽고 나서 이러한 생각을 더 하게 되었다.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라는 책에서는 노동은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며, 귀족, 사대부 들은 노동에서 벗어나 공부를 하면서 자기 자신을 알고, 인문학적인 고민을 많이 하면서 자신을 발전시켜 나갔다는 내용을 서두에 말하면서, 지금 많아진 청년 백수들과 중장년 백수들은 일하고 있지 않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귀족이나 사대부 계급처럼 시간이 많다는 장점을 활용하여 자기 자신을 아는 공부를 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며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시간을 갖기를 권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의 노예가 된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달리 아르바이트라도 주체성을 가지고, 경제 활동에 참여하라는 지침을 내려 주었다.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한 인문학적인 공부 방식에 관해, 여행에서 어떤 것을 느껴야 하는지에 관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새롭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 매우 공감하며 읽었다. 직장인들이나 과도한 노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들은 ‘타임 푸어’라는 표현 한데 비해 백수는 ‘타임 리치’라고 표현한 부분이 신선했고, ‘타임 리치’한 부분이 부러웠다.

 

  직장인들에게 ‘타임 푸어’도 문제가 되지만 급한 템포에 익숙해지는 것도 커다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서는 모든 것을 이벤트 중심으로 생각하는 방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내야 하는 날’, ‘월급이 들어오는 날’, ‘연말정산 결과가 나오는 날’등 이벤트 중심이다. 보고서를 내야 하면 그 시간까지 타이트한 속도로 일을 진행하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고, 월급이 들어오는 날과, 연말정산 결과가 나오는 날을 생각하면서 날짜가 빨리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운 생각을 한다.


  얼마 전에 연말 정산 결과가 나오는 날까지 시간이 빨리 흐르길 바라다가 아차! 싶었다.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면 1년 5년 10년이 휙 지나가 버릴 것이고, 인생을 다 사는 날 또한 빨리 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시간을 붙잡고 싶어 졌다.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이 들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내가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도보에 발이 닿는 대로, 잔디밭에 발이 닿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며, 세상을 새롭게 느끼고 순간을 음미했다. 급하게 하던 행동이 한 템포 늦춰지고, 여유롭고 온전하게 시간을 누렸다. 여행에서 새로운 것을 접하거나, 명상을 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느낀 뒤로, 적어도 저녁에는 이러한 영원의 순간을 몇 분씩 갖기로 했다. 나는 회사의 일도 좋아하기 때문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영향은 줄여가며 성장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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