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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온 May 01. 2019

시간의 고향

  왜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 기간은 길고 온전하게 느껴지고, 성인이 된 후에는 스쳐 지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까?

  어린 시절에는 순간순간에 집중하며 시간을 온전히 사용해서 시간이 흘러간다는 의식을 하지 않는다. 시간을 완전히 느껴 경험에 대한 인상이 깊고 강렬하게 남는다. 업무를 위해 긴장하며 사는 어른과 달리 어린 시절에는 세상의 이벤트나, 문화 트렌드에 흠뻑 빠질 여유도 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12월 초부터 설레어하며 트리를 만들고, 집에 장식품으로 꾸며 놓기도 하며, 산타가 온다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겨울을 오래도록 길게, 흠뻑 느꼈었다.

  성인이 되면 세상의 이벤트를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스쳐가 듯 잠시 느끼게 된다. 세상의 이벤트가 중요하다기 보단 진행하고 있는 일, 직장의 업무가 더욱 중요해서 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성인이 된 후의 겨울에는 일의 일정의 흐름대로 살아가다가 달력을 보고 ‘아!, 12월이 구나’ 생각한 뒤, 다시 시간이 흘러 25일이 되면 ‘아!, 쉬는 날이구나!’라고 생각을 한다. 크리스마스라는 세상의 이벤트를 잊고 있다가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캐롤을 듣고 크리스마스를 잠시 느낀다.



  대중문화를 느낄 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또래는 ‘90년대의 가요가 정말 좋았고, 요즘은 그렇게 좋은 노래가 없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객관적으로 90년대의 음악이 훌륭했다기보다 그 시절에 대중문화에 많이 동조했기 때문에 그 시대의 음악을 자신의 것처럼 느껴서 좋아할 가능성이 높다. 커서도 다른 가수의 노래를 많이 들었지만, 그저 들을 뿐 내가 그 문화에 흠뻑 젖어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의 경우 세상의 이벤트와 대중문화를 흠뻑 느끼던 시기가 12세~15세로 어렸고, 그 시절의 세대인 X세대는 20~30대였다. 어렸지만 나는 X세대와 동등한 시절을 진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나를 X세대라고 느꼈다. 후에도 많은 세대가 나왔지만 나는 X세대 때의 세상 트렌드에 동조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X세대를 추억하는 문화가 나오면 내 세대 이야기라고 생각을 한다.


  또, 시간을 온전하게 느꼈던 시절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동네에 살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감수성이 예민했던 나는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한강이 보이는 아름다운 동네에서 살 때 유난히 행복했었다. 자유로운 친구들과 동네의 아름다운 풍경이 내 어린 시절이 내 기억에 크게 남아있고, 그 시절의 시간을 온전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 동네어서 보낸 시간을 나의 ‘시간의 고향’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에게 공간적인 고향은 기억 속에서 감정과 혼합되어 마음에 남는 것이라면, 독일 문필가 W.G 제발트가 말한 ‘시간의 고향’은 삶에서 정신의 바탕이 될 정도로 시간을 진하게 느낀 시절을 말한다. 시간의 고향은 나처럼 긍정적인 기억일 수도 있지만, 어두운 기억인 경우도 있다. 제발트는 2차 세계대전으로 공군들의 폭격이 엄청났을 때를 자신의 시간의 고향으로 표현했다. 본인이 흠뻑 동조하였고, 시간을 온전히 느꼈을 때의 상황이 시간의 고향이 되는 것이다.

  시간의 고향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같은 상황과 동일한 문화에 동조였으면 그들은 한 세대가 되어 같은 추억을 공유하게 된다. 이런 세대를 겨냥해 영화나 드라마가 제작되면 흥행하기도 한다. 영화 “건축학 개론”과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그러한 경우이다.


  “시간의 고향”은 개인이 추억하는 시절이기에, 긍정적이었던 부정적이었던 매우 소중한 시간이다. 지금 사는 현실을 최대한 즐기며 ‘시간의 고향’처럼 만들려고 해도,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만 모든 것을 흠뻑 느끼며 함께 동조했었던 ‘그 시절’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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