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플러스, 다시 배워야 할 이유

40대 플러스, 다시 배워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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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학생의 정의를 다시 써야 할 시간

우리는 보통 20대에 대학에 진학하고, 전공을 선택하고, 몇 년간 집중적으로 공부한다.
그리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하지만 80세~10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20대에 배운 걸로 인생의 4~5배나 되는 시간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20대에 모든 것을 몰아서 배우는 방식은 이제 너무 낡았다.
시대는 변했고, 인생의 길이도 달라졌다.

이제는 20대, 40대, 60대에 나눠서 배워야 하는 시대다.

특히 40대에 들어선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인생을 재정비하며,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도록 사회가 설계되어야 한다.

진화생물학자 장대익 교수는 “두 번째 대학”이라는 개념을 제안한 바 있다.

40대 플러스,
즉 중장년층을 위한 새로운 교육 플랫폼이다.

많은 이들이 이 나이대에 뇌가 굳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과학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40대 플러스들의 뇌는 여전히 말랑말랑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회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오히려 중년 이후는, 삶의 다양한 경험과 축적된 지식이 연결되어 높은 응용력과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기다.

40대 플러스 세대는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실패와 좌절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줄 안다.

이들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학습자'가 아니라, 배운 것을 삶과 사회에 연결해낼 줄 아는 학습자다.

미래학자들은 예고한다.
앞으로는 평생 3개 분야에서 5개 이상의 직업, 19개 이상의 서로 다른 직무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그렇다면 20대에 배운 지식 하나로 평생을 버틴다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하다.
지속적인 재교육과 전환 가능한 역량이 필수인 시대가 된 것이다.

2050년의 인구 구조를 보면, 40대 이상 인구는 압도적으로 늘어나 있다.

그만큼 이 계층의 사회적, 경제적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교육 제도의 현실은 여전히 20대 초반에만 집중되어 있다.

예산도, 제도도, 인프라도 모두 청년기에 몰려 있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사회가 거의 책임지지 않는다.

이제는 ‘학생’의 정의부터 바뀌어야 한다.

100세 시대의 ‘학생’은 반드시 청년일 필요가 없다.
40대, 50대, 60대, 나아가 70대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배움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배움’은 더 이상 특정 시기의 특권이 아니라, 삶 전체를 가로지르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이미 세계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재 뉴욕의 퍼체이스 칼리지(Purchase College)에서는 단순한 실험을 넘어서,

실질적으로 '은퇴촌(Retirement Community)'을 캠퍼스 내에 조성하여 운영 중이다.
이건 미국 대학 중에서도 매우 선구적인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세대가 함께 배운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삶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노인은 청년에게 경험을 전하고, 청년은 노인에게 활력을 전한다.
그 안에서 서로 다른 세대가 서로를 존중하고 배우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간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40대에 다시 공부를 한다고 중,장년층들의 일자리 수요가 늘어날까?”

이에 대해 학자들은 단호하게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배워야 한다.”

시니어 산업은 지금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시장 중 하나다.

고령사회로 접어들수록,
의료, 상담, 시니어 테크, 문화 서비스, 돌봄, 라이프케어 같은 분야는
더 많은 사람들의 손과 마음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미국 MIT의 ‘에이지랩(Age Lab)’은 시니어를 위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시니어 체험복’을 입고 직접 고령자의 삶을 경험해본다.

하지만 아무리 정교한 체험이라도,
실제 고령자들이 사회 속에서 겪는 삶의 복잡함과 정서적 어려움은 온전히 체감할 수 없다.

그래서 당사자가 직접 배워야 하고, 직접 설계에 참여해야 한다.

40대 플러스가 배움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 자리한다는 것은,
곧 우리 사회의 미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멀지 않은 미래,
주요 대학교의 강의실 절반이 50~60대의 학생들로 채워질지도 모른다.

그것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장면이다.
누구나 인생의 어느 순간이든
다시 배울 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며,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100세 시대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는 삶의 다음 챕터를 써 내려갈 권리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걸 위해,
다시 배워야 할 용기를 꺼내야 한다.

사회는 그 용기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제도와 예산, 환경을 바꿔야 한다.

배움은 생존이고,
40대 플러스의 교육은,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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