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인간의 완성작인가, 실패작인가



문명은 언제나 법에서 출발했다고 말해진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에서,
성경의 십계명과 고조선의 8조법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오래전부터 폭력을 줄이고 약자를 보호하며
공동체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법이라는 약속을 만들어왔다.


함무라비 법전의 돌기둥에 새겨진 규범들은 지금 보아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 문장들은 “하지 마라”는 도덕적 경고라기보다,
“만약 이렇게 했다면, 이렇게 처벌한다”는 판결문에 가깝다.

함무라비 법전은 형법에 그치지 않는다.
가족관계와 재산, 거래와 노동까지 삶 전반을 규율한다.
‘눈에는 눈’으로 요약되지만, 실제로는 282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실체법이며
자유민,평민,노예라는 신분 질서를 전제로 동일한 행위에도 다른 책임을 묻는다.

성경의 십계명은 전혀 다른 언어로 말한다.
십계명은 인간이 만든 규범이 아니라, 하느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내린 계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조건 없이 “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시작한다.
처벌보다 먼저 요구되는 것은 순종과 양심이며,
법은 외부의 강제보다 인간 내면의 책임을 향한다.
십계명은 법이기보다 도덕의 언어에 가깝다.

고조선의 8조법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음으로 배상하고,
상해는 재산으로, 절도는 공동체로부터의 배제로 응답한다.
처벌은 단순하고 분명하며,
정의의 이상보다 공동체의 생존과 질서를 우선한다.

형식은 달라도, 이 오래된 법들이 공유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생명은 보호되어야 하고,
재산은 함부로 침해되어서는 안 되며,
거짓은 공동체를 무너뜨린다는 사실이다.



현대 법 역시 살인과 상해, 절도를 엄격히 금지하고 처벌한다.
문장만 놓고 보면 인류는 진보해 왔고,
법은 정교해졌으며, 정의는 현실에 가까워진 듯 보인다.

그러나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전혀 다른 현실이 드러난다.
법전은 모든 범죄를 막아낼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범죄는 사라지지 않았다.



“법조문은 늘 아름답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이 문장은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한다.

사회는 발전했지만 폭력은 더 교묘해졌고,
범죄는 법보다 빠르게 진화했다.

이 지점에서 질문이 생긴다.
이토록 오래된 금지와 처벌의 문장들이 존재하는데,
왜 인간의 악은 멈추지 않는가.

법이 있음에도 범죄가 줄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법은 인간의 욕망을 제거하지 못한다.

법은 금지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분노하고 탐욕하며 절망한다.

법은 처벌을 예고하지만,
인간은 충동의 순간에 그 경고를 떠올릴 판단력을 잃는다.

인간의 욕망은 즉각적이고,
법은 언제나 사후적이다.

그러나 더 고통스러운 질문이 있다.

왜 법은 모두가 아니라
특정한 사람만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일까.

왜 약자는 법정에서 밀려나고,
권력자와 재벌은 늘 유리한 위치에 서는가.

법은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문장은 선언에 가깝고, 현실은 다르다.

법이 전제하는 평등은 형식적 평등이다.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규칙을 적용한다고 해서
실질적 평등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재벌과 시민이 같은 법정에 서는 순간,
법은 두 사람을 동등한 존재로 취급한다.
그러나 그 동등함은 이미 허구다.

재벌은 정보와 자본, 시간과 전문 인력을 갖고 있다.
반면에 시민은 변호사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렵고,
법을 이해할 여유도, 여론을 다룰 힘도 부족하다.

이 과정에서 법의 중립성은
현실의 불평등을 더욱 단단히 굳힌다.

법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 구조는 권력과 자본을 가진 쪽에
더 높은 생존 확률을 제공한다.

법은 사건을 요건과 효과로만 분해한다.
그 결과 약자의 절박함과 구조적 억압은
판결문에서 대부분 배제된다.

반대로 강자는 맥락이 삭제되는 순간,
자신에게 불리한 배경까지 함께 지운다.

결국 법은 삶을 보호하기보다
의미를 제거한 행위만을 판단한다.

그 결과는 냉혹하다.
약자는 더 약해지고,
강자는 더 강해진다.

이 때문에 법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다.
급진적 변화보다 제도적 안정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기존 권력 구조는 쉽게 흔들리지 않고,
약자가 원하는 변화는 늘 제자리걸음 식이다.

법이 정의롭지 않게 보이는 이유는
법 자체의 결함 때문만은 아니다.
법이 만들어지고 해석되며 집행되는 구조가
이미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의로운 법은 가능한가.

완벽한 정의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더 정의로운 법은 언제나 가능하다.

법은 완성된 건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보수되고 개조되어야 할
공사 중인 구조물에 가깝다.

사회가 정의를 얼마나 강하게 요구하느냐에 따라
법의 방향은 달라진다.

법의 문제를 묻는 사람들,
약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는 사람들,
권력과 법의 결탁을 비판하는 사람들.

이들의 목소리가 있어
정의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법이 정의롭지 못한 이유는
법 자체보다
법을 둘러싼 사회 구조와 권력의 기울기,
그리고 법을 해석하는 인간의 편향에 있다.

그러나 법을 더 정의롭게 만들 힘 또한
인간에게 있다.

법은 인간의 악을 완전히 막지 못하고,
약자를 완벽히 보호하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무력한 존재는 아니다.

법은 정의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만들어온 가장 오래된 도구이며,
우리가 여전히 정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법이 정의롭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자체가
이미 정의를 향한 첫걸음이라는 점이다.

왜 법으로부터 약자는 보호받지 못하는가.
왜 법은 현실의 흐름을 쫓아가지 않는가.
왜 법의 정의는 실패에 가까운가.


이 질문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법은 여전히 변화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

법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법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법은 끝내 정의를 향해 움직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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