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무게

요만큼도 저만큼도 아닌 충만한 현재

by 담우

이만큼이 지금이고, 지금이 그만큼이다.


나는 매일 아침, 이 문장을 거울 앞에서 주문처럼 외웁니다.

이 간결한 문장 속에는 세상의 모든 욕심과 회한을 잠재우는 고요한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늘 지금이 아닌 어딘가를 바라봅니다. 어제 놓친 기회 때문에 후회하고, 내일 얻을지 모르는 무언가를 기대하며 지금 이 순간을 저당 잡힙니다.


하지만 이만큼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지금 나에게 주어진 존재의 총량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만치만 내 앞에 펼쳐져 있고, 이만치만 나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만치만 보이고 이만치만 존재하기에, 지난날의 미련도 내일의 허황된 욕심도 부릴 이유가 없습니다.


이만큼은 요만큼이 없고, 저만큼은 이만큼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장자의 만물제동(萬物齊同) 사상과 맞닿는 지혜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은 본질적으로 평등하며, 차별은 인간의 주관적인 판단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요만큼'이 더 부족한 것이 아니며, '저만큼'이 더 우월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내가 '이만큼'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요만큼'의 부족함으로 재단될 수 없습니다. 내가 '이만큼'을 살아왔다면, 그것은 '저만큼'을 살지 못했다는 이유로 폄하될 수 없습니다. 각자의 '이만큼'은 그 자체로 완결된 우주이며, 비교의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그 충만함은 깨지기 시작합니다.


노자가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라고 했습니다. (知足不辱, 知止不殆).


지금이 그만큼이다는 것은, 내가 현재 도달한 이 지점이 바로 내가 멈추어 서서 평화를 찾아야 할 지점임을 알려줍니다. 더 이상의 '저만큼'을 향한 질주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현재의 '이만큼'에 만족할 때, 우리는 비로소 미련과 후회라는 덧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 숨 쉬고 있는 이 순간. 내가 가진 이 생각, 내가 마주한 이 풍경, 내가 느끼는 이 감정. 이 모든 것이 완벽한 '이만큼'입니다.


나는 더 이상 '요만큼'의 결핍을 느끼지도, '저만큼'의 허상을 쫓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저 지금이라는 무게를 고요히 받아들이고, 이만치 존재하는 나 자신에게 감사하며 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