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지금

첫눈이 선사하는 지금의 자유

by 담우

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흡수되는 듯 고요해집니다.

창밖을 스치던 시선이 멈춘 곳, 기다림 없이 찾아온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장엄한 폭설이 아닌, 이 세상의 모든 얼룩을 지우려는 듯 사뿐히 내려앉는 작은 눈송이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의 심장이, 지금, 가장 순결한 신호에 반응하며 뛰기 시작합니다.

마치 노련한 레이서의 엔진이 예열되듯, 내 안의 녹슬 줄 알았던 감각의 회로에 다시금 붉은 전류가 흐릅니다.


백지 위의 현재

첫눈은 세상을 거대한 백지로 만드는 가장 완벽한 마법입니다.
어제까지 나를 짓눌렀던 회한과 욕심의 얼룩, 그리고 묵은 해의 계산까지도 눈은 아무 말 없이 덮어버립니다. 새로운 시작의 은유를 이토록 가볍고 아름다운 형태로 허락하는 자연의 섭리 앞에, 나는 일순간 모든 짐을 내려놓습니다.

나는 굳이 추억 속으로 걸어 들어가지 않습니다.
과거의 낡은 지도를 펼쳐 '그때는 그랬지' 하고 감상에 젖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때 느꼈던 설렘이 '오늘'이라는 좌표에 도착하여, 더 단단하고 깊은 울림으로 나를 깨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초월하는 '순정한 소년'

첫눈이 내릴 때, 나는 내 나이를 잊습니다.

세월이 켜켜이 쌓아 올린 삶의 높이와는 아무 상관없이, 나는 여전히 순정한 소년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이 감정은 과거의 회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뜨거운 증거입니다.

예순의 지혜를 가진 '현재의 나'는, 이 첫눈이야말로 하늘이 보내온 가장 가벼운 위로이자, 다시 한번 희망을 품고 길을 떠나라는 초대장임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제 문을 열고 나설 것입니다.

과거의 잔상에 머무르지 않고, 여기, 지금 내리는 이 순결한 눈을 밟고 걷겠습니다.

오늘을 위한 추억, 미래를 위한 설렘으로 가득 채울 새로운 길을 향하여. 나는 지금,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