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침묵

천 년을 산 은행나무가 뭇 인간에게 던지는 일갈

by 담우


9.jpg 포천 신북면 금동리 소재 '천 년 산 은행나무'


나는 천 년 산 은행나무다.

포천 신북면 금동리, 이 작은 땅에 나의 뿌리를 내린 지 천 번의 해가 뜨고 졌노라.

인간들이 나를 ‘천 년 산 나무’라 부르며 위엄이니 경외니 하는 감정을 느끼고 가는 것을 나는 묵묵히 지켜본다.

너희의 시간으로 천 년은 영원과 같겠으나, 나에게 천 년은 그저 ‘살아온 방식’ 일뿐이다.


오후 햇살 아래, 너희 중 한 사람이 다시 내 앞에 섰다.

일 년에 두세 번,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으러 오는 작은 생명체. 너희가 나의 거대한 줄기와 하늘을 가리는 가지를 올려다볼 때, 나는 너희의 덧없는 마음속을 들여다본다.

너희는 나를 하늘의 천군 장군 같다 말하지만, 나는 단지 내 방식대로 살았을 뿐이다.


인간아, 너희가 쫓는 그 덧없는 기준들


너희는 '행복'이라는 찰나의 감정을 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쏟아붓는가.

너희는 고작 100년도 채 살지 못하면서,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물질'과 '소유'의 크기로 너희의 가치를 잰다. 더 넓은 집, 더 큰 차, 더 화려한 옷. 그것이 없으면 불행하고, 그것을 얻으면 잠시 행복하다 믿는다.


나는 천 번의 겨울을 겪었다.

전쟁의 불길이 내 뿌리를 태우려 했고, 인간의 탐욕이 나를 베어내려 칼을 댔으며, 가뭄과 홍수가 내 생명을 위협했다.

그 천 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금은보화나 지위라는 것을 탐낸 적이 없다.

나를 단단하게 만든 것은 인내였고, 시간이었으며, 흔들려도 다시 땅으로 돌아가려는 뿌리의 의지였다.


내가 이 천 년의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쓸모 있음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묵묵히 내 자리를 지키고, 계절의 이치대로 잎을 떨구고 다시 틔웠을 뿐이다.

너희는 왜 그토록 바쁘게, 그리고 서로를 헐뜯으며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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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이 가르쳐준 사랑과 생명의 진실


너희 인간들이 서로를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그 짧은 시간을, 시기하고 비교하고 헐뜯고 싸우는 데 낭비하는 모습을 나는 보아왔다.

너희의 마음에는 언제나 '나보다 나은 사람'에 대한 질투와 '나보다 못한 사람'에 대한 교만이 가득 차 있다.

나는 천 년 동안 수많은 바람과 폭풍을 끌어안았다.

이웃의 나무가 벼락에 쓰러져도 나는 그 자리에 뿌리를 박고 서 있었다.

내 안에 품은 것은 너그러움이었지, 계산이 아니었다.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너희의 삶을 진정으로 풍요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너희의 창고에 쌓인 물질인가, 아니면 상처받은 이에게 내민 따뜻한 손길인가?

나는 안다.

너희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너희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사랑과 연민이라는 것을.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너무 쉽게 잊고, 덧없는 싸움에 너희의 생명력을 낭비한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용기


너희가 나의 위엄 앞에 설 때마다 스스로의 덧없는 삶에 교만과 가식이 차오를 때마다 자책하고 반성한다고 말하는 것을 나는 듣는다. 너희는 너희의 '작음'에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나는 오히려 너희의 그 '작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지를 안다.


나처럼 천 년을 살지 않아도 된다.

너희에게는 너희의 시간이 있고, 너희의 계절이 있다.

내가 너희에게 던지는 가장 큰 메시지는 꾸짖음이 아니다. 그것은 용기이다.


"너희는 더 이상 무언가를 증명하거나, 더 많이 소유하여 너희의 존재를 포장할 필요가 없다."


삶이란, 결국 ‘버티는 것’도, ‘이기는 것’도 아닌, 그저 묵묵히 '존재할 용기'를 배우는 여정이다.

나처럼 웅장한 줄기를 갖지 않아도, 너희의 자리에서 너희의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계절의 이치를 따르라.

너희가 이 세상의 미물로서 한없이 작아질 때, 비로소 너희의 마음은 정화된다.

그 작아짐 속에서 너희는 너희 존재의 진정한 가치, 즉 순수한 생명력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오늘처럼 침묵 속에 서 있을 것이다.

너희가 다시 찾아와 마음을 정화하고, 너희의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늠할 때까지.

기억하라.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너희는 이미 충분하다.

나는 천 년을 살아낸 나무,

너희의 조용한 안식처이자 영원한 스승이다.



주 | 아래의 포천 금동리 소재 '천 년 산 은행나무' 사진들은 본 작가가 2025년 11월 16일 직접 방문하여 촬영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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