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나는 40살이 되었다.
만 나이로 하면 아직은 30대인 38살. 그런데 익숙하지 않다. 40살이라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이 나이는 내가 중년을 시작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좀 더 원숙해져야 할 것 같고, 뭔가 삶의 전환을 만들고 싶기도 하다. 인생의 2막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나에게는 40이란 숫자가 그렇다.
어렸을 때는 30살만 되어도 다 큰 어른인 줄 알았다. 막상 내가 30살이 되어보니 나는 어른이 아니었다. 날마다 외부 사람들 말과 평가에 흔들리는 사람.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보여야 한다고 늘 생각하며 그거에 맞추려고 마음 쓰는 사람. 남의 호불호가 더 중요했다. 그 안에 나는 없었다.
30살에 덜컥 결혼했다. 남자 친구를 부모님께 보임과 동시에 결혼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상견계를 했다. 어느새 드레스를 입고, 세상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사귀게 된 지 6개월 만에 클리어. 내가 결정하기도 전에 주변 흐름이 나를 결혼하게 만들었다.
32살에 첫째 아이를 낳았다. 36살에는 둘째 아이를 낳았다. 30대는 결혼과 두 애를 키우다 보니 지나갔다. 그중 애 둘 3년 가정 보육하는 시기는 내 인생의 최고의 암흑기였다. 정말 뒤지게 힘들었다.
제일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은 내 감정의 변화였다. 스스로 힘겹다고 여길 정도로 날마다 롤러코스터를 탔다. 우울함은 지하 100층 땅굴을 뚫어냈다. 빛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남편은 남의 편이 된 것 같았다.
우울해하고 남 탓하는 것을 그만두고 싶었다. 힘들 때 찾아가서 마음 편안하게 하소연할 사람이 없었다. 나에게는 온전한 내 편이 없었다. 지독하게 외로웠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읽다 보니 어느새 새벽마다 글을 쓰고 있었다. 그 결과 내 이름으로 들어간 책을 4권 냈다. 30대 후반에 일어난 큰 변화였다.
그런 과정 가운데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지 않았는지를. 나 자신을 어찌나 하찮게 대했는지 말이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은 아이들과 남편이 아니었다.
너무나 차갑고 바른말만 떠들어대는 최고의 비판자. 나와 날마다 함께 하고 있는 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 아이와 사이좋게 잘 지내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 진심 어린 화해부터 시작해야 했다.
40살.
나와 베스트프렌드로 지내는 걸 날마다 연습하고 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시간을 보낸다. 내가 내 찐팬이 되어 오늘을 산다. 남이 아닌 나에게 집중하며,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며 살아간다.
이때 필요한 건 가지치기다. 아주 심플, 단순하게 사는 것. 나에게 중요한 것을 한다. 하루 동안에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이다. 직장에서 일하고, 두 아이를 돌보다 보면 에너지가 점점 방전된다. 거기에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내가 잘못한 것을 곱씹기, 부정적인 생각으로 시간을 쓰면 에너지는 사라지고 없다.
그래서 하나씩 끊어내기로 했다.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관계부터 잘라냈다. 만났을 때 내 마음이 불편하고, 눈치를 봐야 하는 사람은 보지 않기로 했다. 서로 나누는 대화가 남 욕하기, 남 탓하기, 불평불만하기로 이루어지는 곳에도 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제안이나 부탁에 거절하기를 연습했다.
대신 자연과 더 가까워지는 것을 선택했다. 혼자 있는 고독을 즐기기로 했다. 나에게 들려주는 말도 사랑, 응원, 감사의 말로 채우고 있다.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생각의 패턴을 발견하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까지. 계속 의식적으로 연습하는 시간을 보낸다.
나는 인생 목표를 아주 심플하고 단순하게 살기로 결정했다.
나를 존재만으로,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응원하고 내 편 되는 것에만 집중하기. 시간과 에너지를 온전히 나를 사랑하는 일에 쓰기로 했다. 오늘도 나를 제대로 알아가는 여행을 떠난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 그 진실을. 나는 40살이 되어서 집중해본다. 그렇게 시작하는 내 인생 2막. 앞으로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이 펼쳐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