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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소 Mar 25. 2018

[인도] 훈드르-라다크에 갔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의식 흐르는 대로, 사진 찍히는 대로
흘러흘러 인도로


디스킷에서 너무 늦장을 부렸나 보다. 버스터미널 겸 합승지프 스탠드로 돌아오니 오늘 투르툭으로 가는 합승지프는 더 이상 운행 되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2시간쯤 기다리면 투르툭으로 미니버스 한 대가 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잠시 고민하다 훈드르에 가기로 했다. 2시간동안 마땅히 할 일도 없고, 하늘은 구름이 가득하고, 정신적으로 힘든 하루였다.     



디스킷에서 훈드르까지는 7km남짓. 걸어가도 되지만, 더 이상 걷는 선택지는 오늘의 할 일에 없다. 훈드르 까지 가는 버스도 없고,  이럴 때는 역시  히치하이킹이다.    

라다크, 스피티 지역에서 혼자 여행하게 되면 원하든 원치 않든 히치하이킹을 자주 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1.라다크,  스피티 지역을 벗어나서는 절대 히치하이킹을 하지 않는다.

(이 지역들은 대중교통이 사정이 좋지않다. 그렇기에 현지 주민들도 히치하이킹을 하는 장면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2.차 안에 부인이나 엄마 같이 여자들이 함께 탑승하고 있나 확인한다.(절대 남자만 있는 차는  타지 않는다.)

3.가능한 가족 단위의 차량에 타도록 한다.

4.만약 내릴 때 돈을 요구하면 합리적인 금액을 지불 한다.     


나만의 원칙을 두고 나름대로 신중하게 판단하며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고, 히치하이킹을 하다 곤란한 상황에 처한 적은 아직까지는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장소를 불문하고 히치하이킹은 언제나 위험하며, 그 점을 항상 염두해 두고 있다.           
              


한5분쯤 손을 흔들었을까? 검은색 지프 한대가 섰다.

“안녕하세요. 어디 가세요?” 창문이 열리고 운전석의 남자가 물었다.

슬쩍 옆자리를 보니, 부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눈이 마주치자 웃어 주었다.

“훈드르까지 태워 줄 수 있을까요?”

“훈드르는 안가는데, 그 옆을 지나니 근처에서 내려 줄께요”

얼른 차에 탔다.      

십분도 가지 않아 부부는 길 한복판에 나를 내려주었다.
여긴 어디인가?

부인은 도로 밖 내리막 쪽을 가리키면서 그 옆쪽으로 내려가면 훈드르 마을이 있다고 했다. 부인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시멘트로 된 다리 근처까지는 갔는데, 아무리 봐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 핸드폰의 gps도 잡히지 않는다. 마을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방도가 없으니 우선 내려가 보기로 했다.



다리 밑으로 흐르던 도랑을 따라 5분 정도 걸어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마을이 나왔다. 훈드르였다.     

여기가 훈드르구나… 라는 감상 외에 사실 훈드르는 그다지 기억에 남는 마을은 아니었다. 


훈드르에는 인도에서 유일하게 쌍봉낙타가 살고 있고 훈드르를 방문하는 이유는 대부분 이 쌍봉낙타와 사막을 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낙타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훈드르는 잠시 들리는 것이아 생각했는데 3일이나 있었다.

카르둥라에서 부터 흐렸던 하늘은 디스킷에서는 완벽하게 하늘을 메웠고, 훈드르에 도착하자마자 비로 변했다. 훈드르에서의 3일 중 2일 동안 비가 내렸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라다크에서?

갑작스런 비에 가려고 했던 홈스테이를 찾아가지 못하고 근처의 가장 가까운 호텔에 갔는데 방값이 하룻밤에 무려 1,000루피(한화 18,000원) 였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기에 울며겨자먹기로 이 호텔에 숙박하게 됐다. 빗속에서 카메라를 사수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비싼 방을 잡으면 밖에 나가지 않는다.
손님 이라고는 나 혼자 밖에 없는 3층 건물 2층 가장  방에서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진실여부는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작은 발코니까지 있는 이방은 원래는 2,500루피인데 손님이 없으니 특별히 1,000루피에 주는 것이라 했다.) 나무로 된 인테리어가 왠지 모르게 고풍스러운 분위기라 귀신이 나올 것 같았다. 복도 코너마다 있는 전신거울은 무서워서 쳐다보지도 못했다. 지나갈 때마다 내 반영 뒤로 검은 무언가가 서있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복도로 들이치는 바람소리는 바람소리가 아닌 것 같이 들렸다. 살아있는 생물의 소리 같이 들렸다. 전기가 나가면 방 밖을 나가는 것도 무서웠다. 정말 유쾌한 경험이었다. 다음에 훈드르를 다시 간다면 반드시 이 호텔에 머무르겠다고 다짐했다.


훈드르에서의 일상은 레에서 만큼이나 단순했는데, 산책하고 밥먹고, 이야기하고, 밥먹고, 이야기하고, 책읽고, 잠자고. 이보다 단순할 순 없었다. 비 내리는 것 만으로도 추운데, 모래바람이 함께 불어와서 사정없이 두 뺨을 때리니 얼굴이 따가웠다. 그래서 비가 갠 짧은 아침시간에 산책을 다녀오는 것 이외에 밖에 나갈 수도 없고,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면 손님이 없어 심심한 호텔 관리인이 말동무를 해주었다. 2박3일 동안 밖에도 안 나가고 하루 종일 호텔 식당-방을 오가며 빈둥대니 자연스럽게 친해 질 수밖에 없었다.      


이곳의 관리인은 네팔인 이었는데 네팔인인 그가 인도의 라다크 그것도 누브라밸리라는 국경지역에서 호텔 관리인을 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웠다. 인도에서 일하는 네팔 노동자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비록 작은 호텔이지만)관리직에 일하는 네팔인을 만난것은 처음 이었다.

그는 호텔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일을 담당하고 그의 아내는 이곳의 요리사로 손님들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다고 했다. 1년에 딱 2달 이곳 훈드르에서 일을 하고 남은 10달 중 9달은 네팔의, 카트만두의 (그것도 꽤나 고급인)호텔에서 매니저로 일한다고 했다.


 네팔인, 거기다가 이런 변두리의 작은 호텔을 관리하는 사람인데도 영어가 매우 능숙했다. 그의 영어는 레의 게스트 하우스 주인인 인도인들 보다 유창했다. 영어실력의 비결에 대해 물으니 학교에서 배웠다고 했다. ‘아니 이렇게 고전적일 수가!!’, ‘교과서만 열심히 봤어요’ 는 만국공통의 자기자랑인가? 하지만 그는 그냥 일반 학교를 졸업한 것이 아니라 카트만두의 호텔경영학교(hotel management school)를 졸업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시험과목에는 물론 영어도 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그의 유창한 영어 실력이 이해가 갔다.


그가 말하길 카트만두에서 일할 때가 훈드르에서 일할 때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고 했다. 올해는 그가 처음 인도에서 일하는 해라고 했는데 가능하다면 내년에도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월급이라도 많으면 모를까... 월급도 적은데 굳이 남의 나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그에게 아무리 옆 나라, 언어마저 매우 비슷한 나라이지만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기분에 대해 물으니 그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인도의 다른 곳에서 일하기는 싫은데, 라다크에서 일하는 건 좋아요. 특히 훈드르는 손님들이 전부 친절해서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좋아요. 일하면서 휴가 온 기분이에요.”

그의 말이 110% 동의 할 수 있었다. 나도 이곳에서(훈드르는 아니지만...라다크에서) 살 수 있다면 돈은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다행히 3일째 아침은 날이 좋았다. 훈드르를 떠나기 전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볼 수 있게 된 것이 행운인지, 그동안 안 좋았던 날씨가 불행인지 모르겠다. 좋은 것이 좋은 것 이라고, 지금기분이 좋으니 그걸로 된 것 아니겠는가? 오랜만에 카메라를 메고 아침 산책을 나갔다.      


오랜만에 본 맑은 하늘 이었다.
스쿨버스를 기다리며 숙제를 하는 아이들


아침 산책에서 돌아오니, 관리인이 나를 급히 찾고 있었다.

옆집 사람이 디스킷을 거쳐 레로 가는데, 나를 디스킷까지 태워 줄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이런 제안은 나야 당연히 단야밧이다. (*단야밧: 인도말로 감사합니다.)

“그럼요. 태워주신다면 감사하죠.”

“오늘쯤 디스킷으로 갈 것 같아서 아침부터 방문을 두드렸는데, 방에 없는 것 같더라고요. 혹시 몰라서 옆집 사람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어요.”

관리인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성격도 좋고, 감도 좋았다.      


어제만 해도 과일이 먹고 싶어서 정원에 있는 사과를 따먹어도 되냐고 물어봤다. 관리인은 사과가 아직 덜 익어서 맛이 없을뿐더러 배탈이 날지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사과를 달라고 계속 졸랐고, 결국 얻어낸 사과는 정말 맛이 없었다. 그래서 몇 시간 동안 훈드르 사과의 맛없음에 대해 불평을 했고, 매니저는 자신의 고향의 사과가 얼마나 맛있는지에 대해 말했다. 대체 내가 맛없는 사과를 먹은 것과 자신의 고향의 사과가 맛있는 것이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기어코 사과를 먹은 것에 대해 핀잔을 주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매니저와 옆집 아저씨의 배려덕분에 편하게 디스킷으로 돌아 왔다. 만약 훈드르에 다시 가게 된다면, 그리고 그가 계속해서 그 호텔을 관리하고 있다면 그의 호텔에 다시 머무르고 싶다. 비오는 날이면 더 좋을것 같다.

    



디스킷에 도착하니 레에서 디스킷으로 올 때 고통스러웠던 합승지프의 기억이 떠올랐다. 다시 엉덩이가 저려왔다. 이번에는 버스를 타자. 그렇게 다짐했건만 버스는 오후에 출발한다고 했다. 하지만 버스의 정확한 출발 시간은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만약 투르툭에 가는 사람이 없다면 운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나한테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 탑승객이 없다고 해서 버스가 운행을 안 한 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지만 이곳에서는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투르툭에 2번째로 방문 했을 때 알게 되었다.   
  

아무튼 나는 투르툭행 버스를 탈지 말지 한참을 고민했다. 2시간 기다려서 좀 편히 갈 것인가, 아니면 2시간을 일찍 도착해서 편히 쉴 것인가.

결국 합승지프를 다시 한 번 타기로 결심 했다.

버스터미널 위쪽 단층 건물에는 합승지프 예약 사무소가 있다. 그곳에 가면 디스킷에서 출발하는 합승지프 티켓을 살 수 있는데  사무소의 아저씨는 마침 30분 후에 투르툭으로 가는 지프가 있다고 했다. 나는 레에서 이곳으로 올 때 겪은 모진 고통에 대해 하소연하듯 이야기 했고 아저씨는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 했다.     

아저씨는 내가 지프에 탑승할 때 지프 운전기사에게 가서 내가 앉는 뒷자리에 3명이상을 태우지 말 것을 당부했고, 정말로 뒷자리에는 3명밖에 타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투르툭에 도착했다.     




*디스킷의 합승지프 예약 사무소 아저씨가 알려준 합승지프의 자리를 선택하는 팁이다.

합승지프에는 보통 앞자리는 2명, 가운데는 4명 맨 뒷자리는 3명이 앉는다. 그리고 승객이 추가되면 앞자리나 가운데 자리에 먼저 앉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뒷자리에 손님이 앉는다. 마지막 칸은 가운데 칸보다 좁지만 4명이 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니 4명이 타는 가운데 자리보다는 3명이 타는 뒷자리에 앉는 것이 그나마 편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이라 했다. 아저씨가 알려준 이 팁은 최북단 인도를 여행하는 내내 정말 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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