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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소 Mar 26. 2018

[인도] 투르툭-라다크에 갔다.1

드디어 투르툭에 도착했다.

의식 흐르는 대로, 사진 찍히는 대로
흘러흘러 인도로


드디어 투르툭에 도착했다.

투르툭 이야기를 쓰려다 투르툭에 가는 과정으로 이미 지쳤다.  지금부터가 진짜 투르툭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참 지금 이 이야기에는 투르툭에 3번 방문한 이야기가 전부 섞여 있다.




투르툭에 도착하게 되면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아무리 봐도 마을이 있을 것 같은 평지에 있는 장소, 그리고 절대 마을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절벽위의 장소.


절벽위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수많은 게스트하우스와 홈스테이 표지판들이 여행자를 유혹한다.

하지만 도로를 따라 오던 길 그대로 직진하라는 표지판들도 있다.


두 곳의 마을. 어디가 투르툭일까?

정답은 두 곳 모두 투르툭이다.

마을사람들은 평지에 있는 마을을 lower투르툭, 그리고 절벽에 있는 마을을 upper투르툭이라고 부른다. 사실 조금 더 투르툭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곳은 lower투르툭일 것이다. 원래부터 대부분의 주민들이 살던 곳은 lower투르툭인데, 마을의 인구 증가와 외부 관광객의 유입으로 번창하게 된 마을이 절벽위의 upper투르툭이라고 한다.

만약 투르툭에 가게 된다면, 어디로 숙소를 잡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upper투르툭으로 갈 것을 추천한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경치도 좋고,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게스트하우스들이 세워지고 있는 절벽 쪽으로 숙소를 잡는다. 단 하나 문제라면 그곳으로 절벽으로 오르는 길이 의외로 높다는 것 이다.


(lower투르툭에서 마을 끝까지 걸어가 다리를 건너면  upper투르툭으로 자연스레 연결된다. 차도를 따라 쭈욱 걷다보면 upper투르툭으로 이어진다는 말이다. 마을을 한바퀴 돌아가는 길이지만, 그 길로가면 급경사의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된다.)    



    

여기까지 오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으므로, 잠시 투르툭이라는 마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다. 투르툭은 라다크의 다른 어느 마을보다도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투르툭은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인도가 파키스탄과 갈리진 해인 1947년부터 1971년 까지 파키스탄의 영토였다. 하지만 1971년 인도-파키스탄 두 나라 사이의 전쟁에서 인도가 투르툭을 차지하게 된다. 파키스탄 국경과 매우 근접하고 있기에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투르툭은 1971년 인도령이 된 이후 외국인은 물론 모든 외부인의 접근이 차단되었다. 또한 1999년 카르길 전쟁으로 유명한 인도-파키스탄 간의 무력 충돌이 있었을 때, 국경 마을인 투르툭 또한 그 분쟁에 휘말렸다. 1971년 이후 군사적인 이유에서 오랫동안 격리된 투르툭 주민들은 경제적, 문화적으로 외부와 단절되는 것에 대한 걱정과 염려를 인도정부에 지속적으로 탄원했고, 2010년 드디어 외부세계에 투르툭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더 이상 투르툭은 고립된 국경마을이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1971년에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 1971년 당시 파키스탄에서 공부를 하던 사람들이나 일을 하기 위해 투르툭을 떠나 있던 사람들은 투르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은 파키스탄사람으로 남게 되었고, 투르툭에 머무르던 사람들은 인도국적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 많은 비용과 까다로운 절차적 문제가 있지만 인도와 파키스탄 간에 사람들의 방문이 가능하다. 다만 이런 벽촌의 사람들이 파키스탄을 가거나, 파키스탄에서 이곳까지 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항상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넘쳐나는 이 마을에 숨은 슬픈 현실이다.        
  



사실 나는 지프에서 내리자마자 선택의 여지도 없이 윗동네로 끌려갔다. 며칠간 날씨가 좋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내가 사람을 밀어내는 힘이 있어서 인지 투르툭으로 가는 지프에 관광객은 나뿐이었다. 당시 투르툭 마을이 2개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던 지라, 지프에서 내리자마자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이며 눈만 껌벅껌벅 거리고 있었다. 그때 나타난 한 7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나는 그 아이의 손에 이끌려 무작정 절벽으로 가는 오르막길을 오르게 되었다. 5분정도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니 다리가 후들거려 ‘아.. 그냥 굴러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 앞 저만치 뛰어 올라간 아이를 불러서 가방을 들게 하고 싶었지만, 아직 이 세상 휴머니티는 살아있고 나의 양심도 죽지 않았다. 설마 내가 저 어린아이에게 자기 몸만한 가방을 들게 할까...혹시라도 내가 딴 길로 샐까 걱정이 되는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아이에게 힘없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15분쯤 올라갔을까? 이제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쯤에 눈앞에 황금빛 물결이 일렁였다. 다행히 힘들어서 헛것을 본 것은 아니고, 아직 추수를 하기 전인 7월의 메밀 밭 이었다. 노랗게 물든 작물들이 협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출렁 이고 라다크에서는 보기 힘든 맑고 넉넉한 물이 마을을 가로질러 졸졸졸 흐르고 있었다. 마을을 감싸는 푸른 살구나무와 황금색의 들판, 그리고 아기자기한 집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역시 투르툭에 오길 잘했어’

감상에 젖어 있는데, 아이는 ‘헬로우, 헬로우’를 연발하며 나를 자꾸만 재촉했다.


          


투르툭에는 의외로 많은 숙박 옵션이 있다. 홈스테이, 호텔, 게스트하우스등 다양한 숙박방법이 다양한 가격대로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의 선택지는 넓지 않았다.

아이의 손에 이끌려 간곳은 아이의 집이었다. 간판은 없었지만 나를 이곳에 데려온걸 보니 홈스테이를 하는 집 이고, 아이는 이집의 아들인 것 같다. 아까 그냥 가방을 들라고 시킬걸 그랬나 후회가 된다. 아이는 나를 식탁 앞에 세워두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아이가 사라진지 5분도 지나지 않아 아저씨가 등장했다. 아이의 아빠이자, 이 집의 주인인 후세인 이었다. 후세인은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어떻게 여기에 왔어요?” 후세인은 아들과 엇갈린 모양이다.

“어떤 남자아이가 절 이리로 데리고 오고서는 사라졌어요.”

“제 아들인가 보네요. 제 게스트 하우스로 가시죠. 여기서 멀지 않아요.”

후세인은 게스트 하우스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며 다짜고짜 자신의 게스트하우스로 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홈스테이가 하고 싶었다.

“저는 여기 머무르고 싶은데 홈스테이는 안 될 까요?”

“안될 것 없지요, 사실 저는 홈스테이도 운영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게스트 하우스를 지어서 손님들은 게스트 하우스에 머무르지만 원래는 홈스테이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이 많아서 시끄러울 지도 몰라요.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손님들이 있어서 저도 가급적이면 게스트 하우스로 손님들을 안내하고 있죠, 쉬러 이곳에 온 거지 소음에 시달리러 온 게 아니잖아요?”후세인은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노프러블럼’이다. 오히려 아이들이 있는 집에 머무르는 것이 좋다.

후세인은 내가 직접 찾아와 주었고,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지 않으니 조식과 석식을 포함해 300루피에 머물 수 있게 해주겠다고 덧붙였다.

투르툭에서의 시작이 순조롭다.


     

후세인의 집은 사각형이 두 개 겹쳐진 것 같은 구조였다. 6개의 방중 3개는 식구들이 살고 1개는 주방이었다. 남은 2개는 게스트 룸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곳 중앙 천장에 뚫린 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시멘트벽이 미묘하게 수용소 같은 느낌이 들게 했는데 그러면서도 공기를 뿌옇게 만들고 있는 먼지가 강렬한 빛에 산란되니 마치 디즈니만화에 나오는 장면 같았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을 바라보면 뭔가 자유를 갈망하고 싶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내가 머물렀던 홈스테이, 내가 ‘우리집’이라고 불렀던 곳에는 5명의 ‘우리애’들이 있었다. 첫 2일 동안은 불러도 도망만 가더니 어느새 내가 식탁에 앉아서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확인하고 있으면 옆에 붙어서 기름 낀 손으로 카메라를 꾹꾹 눌렀다. 그러다 급기야 내 dslr을 뺏으려 들었다. 내가 dslr을 머리 위로 높게 들어 버리니 다리를 붙잡고 카메라를 달라고 조른다.
'이 녀석들 귀여움을 앞세우다니.. 무서운 녀석들이다.' 

내가 사용하는 메인 카메라는 어린아이들이 들기에는 너무 무거운 카메라라, 나는 예비용으로 가지고 있는 작은 카메라를 꺼내서 한 아이의 목에 걸어주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헬게이트’가 열린 것 같다. 처음에는 서로서로 돌아가면서, 집안에서만 얌전히 사진을 찍고 놀았다. 한 아이만 너무 오랫동안 사진을 찍으면, 다른 아이에게 양보하라고 했고, 아이들은 욕심 부리지 않았다.


우리애1
우리애2
우리애3
우리애4
우리애5
우리집 할머니



사실 우리집은 엄밀히 말하면 후세인의 집이 아닌, 후세인의 엄마의 집 이었다.(후세인은 이 집에 살지 않았다.) 내가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양보한 것이 미안했는지, 할머니는 나를 이방저방 데리고 다니면서, 머리에 머릿기름을 발라 빗어주시고 자꾸 나에게 말린 살구와 차를 주셨다. 내가 할머니 손에 이끌려 다니니 아이들은 더욱 신나서 카메라를 들고 집안을 뛰어다니고, 구르고, 재주까지 넘고 갈수록 격해지는 행동범위에 걱정이 되면서도 나도 같이 흥이 올라버렸다.          



광란의 현장


그리고 아이들이 내 카메라를 손에 넣은지 2일째 되던 날, 갑자기 후세인의 아들 후세인이 카메라를 목에 건채로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는 놀라서 아들 후세인을 따라 나갔다. 아들 후세인은 마을 중앙에 있는 작은 저수지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자랑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아이, 사진에 찍히고 싶어 하는 아이. 그곳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순식간에 십 수 명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이니 아들 후세인이 들고 있는 내 카메라의 안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 배터리를 몰래 빼버렸다. 더 이상 켜지지 않는 카메라에 시무룩해진 것도 잠시, 아들 후세인과 아이들은 곧 카메라에 흥미를 잃고 대신 나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면서 놀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깨달은 사실 하나 나는 만져지기 쉬운 사람이다. 인도인들은 시도때도 없이 내 팔과 볼을 만져댄다.) 때마침 저수지를 지나가던 아빠 후세인은 내가 아이들에게 붙잡혀 있는 것을 보고, 아이들을 혼내려고 했다. 내가 괜찮다고 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자 허허 웃으면서, 힘들면 그냥 내버려 두고 집으로 들어가라고 말하고 가던 길을 가버렸다.  음... 한국인에게는 세 번은 제안 해야 한다는걸 모르나 보다...



투르툭의 인구는 약4000명으로 누브라밸리에서 가장 인구가 많다. 그 중 6세 이하 아동는 400여명으로 마을 어디를 가나 어린아이들을 볼 수 있다. 후세인이 말하길 가구당 평균 5명의 아이가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어느 집을 방문하던지 항상 집안이 떠들썩한 느낌이었다. 마을을 돌아다닐 때 어디서나 나타나 손을 잡아끌며 여기저기 마을을 구경시켜주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으면 엄마가 나타나 차를 같이 마시자며 집으로 이끈다. 투르툭에 아이들이 없다면 투르툭은 지금 만큼 매력적인 마을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투르툭은 2009년까지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안되던 곳이었다. 이곳이 외부에 개방된지 채 10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투르툭의 아이들은 (외국인, 인도인 가릴 것 없이)관광객만 보면 서슴없이 손을 내밀며 10루피를 외친다. 이것이 정말로 생활이 궁핍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들만의 놀이 인 것 같지만, 10루피를 외치는 아이들을 보면 씁슬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10루피를 외치는 아이들에게, 안준다고 코를 툭 건드려 주면 꺄르륵~하면서 어디론가 달려 도망간다. 이렇게 순수하고 순진한 아이들인데, 이 아이들이 10루피를 외치는 것에는 외부인이자 관광객인 나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어느 집에나 적어도 5명 이상의 아이들이 있는데, 엄마가 주는 차를 마시며 앉아 있으면 하나, 둘, 셋 밖에 나갔던 아이들이 끊임 없이 집으로 들어온다.  


투르툭에 다시 때마다 그전 방문에 찍었던 사진들을 한 아름씩 가져갔다.(투르툭 뿐만이 아니라, 나는 내가 찍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사진은 직접, 혹은 우편을 통해서 전해준다.) 그리고 우리애 중 한 아이에게 사진을 안겨주면 온 동네를 뛰어다니면서 사진을 전달했다. 그 당시에는 사진을 주는 것이 당연한 행동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과연 내가 옳은 일을 한 것인지...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투르툭의 아이들
나의 행동이 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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