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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소 Mar 25. 2018

[인도] 여행에서 산만함은 축복이다.

디스킷에서 축복을 받았다.

내가 가진 쓸모없는 재능 중 의외로 여행에서 쓸모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산만함이다.

산만함은 예측불가능한 즐거움과 만남을 가져온다.

디스킷 곰파에서 버스스탠드로 가던 중 만난 이 행렬이 그렇다.


'요괴 팔'로 속은 것에 낙담하고 기가 죽어 어깨가 땅에 끌릴 만큼 축쳐저서 걷고 있는데, 어디서 사람들이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소리가 들리는 것이 뭐가 이상한 일일까 싶지만, 이 지역에서 그것도 마을을 벗어나서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어 희미하게 음악소리도 들렸다. 언젠가 티베트 다큐에서 라마들이 곰파에서 의식을 행할 때 연주했던 음악과 비슷했다. 나는 주체 할 수 없는 산만함으로 주위를 미친듯이 두리번 거리렸고 결국 소리의 정체를 찾아 여기저기 방황하기 시작했다. 버스스탠드로 가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5분 넘게 제자리를 빙빙 맴돌다가 빨간 옷의 라마들의 행진을 만났다.




갑작스런 라마들의 등장에 긴장해 뒷걸음질 치며 길가로 물러나 쭈글쭈글 발을 땅에다가 비비고 있으니, 라마 한 분이 내 머리위로 손을 올렸다가 떼며,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아직 상황판단이 되지 않아 멍하니 있으니 이번에는 전통의상을 입고 뒤따르던 청년들이 그들이 들고 있던 천에 싸인 막대기를 내 머리위로 가져온다.

'어? 뭐하는거지?'

가까워지는 막대기에 반응할 사이도 없이 청년들은 웃으면서 천에 쌓인 막대를 내 머리 위로 가볍게 올렸다가 떼고 라마들의 뒤를 따라갔다.

그제서야 어느정도 정신이 들었다. 나는 다급하게 라마의 행렬을 쫒아 갔다.

 



내가 졸졸졸 따라가자 라마 한분이 궁금한거 있으면 물어봐!!! 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기.. 어디로 가시는거에요?"

"마을로 가고 있어요."

"왜요?" 가끔 생각하지만, 질문하는 연습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곰파에 있는 경전들을 마을로 옮기는 중 이거든요. 매년 이렇게 곰파에서 마을로, 다시 마을에서 곰파로 경전을 옮겨요."

천에 쌓여 있던 막대기 같은 것들이 경전인가보다. 그러고 보니 맥그로드간지 남걀사원의 서고에도 막대기 같이 긴 것들이 천에 쌓인채로 수납장에 잘 정리되어 있었는데, 그것들이 모두 경전이라고 했다.

"왜요?" 정말로 질문하는 연습을 해야한다.

이번에는 라마가 대답을 망설였다. 설명할 것이 많고 복잡해서 영어로 이번 물음에 답하기는 쉽지 않았나 보다. 살짝 난감해 보이는 라마의 표정이 미안해서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런데 왜 제 머리에 손을 올리고, 경전도 올렸다가 내린 거에요?"

"축복해주는거죠."

"아.. 그렇구나."


라다크에서 라마와, 경전으로 축복 받았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늘의 고생은 모두 이 것을 위한 것이 었나보다.

어께에 들어간 힘을 자랑하면서 십분쯤 이 행렬에 섞여 걷고 있으니, 투르툭에 간다는 원래 목적이 생각났다.


아... 나는 몇번이나 허리 숙여 고맙다는 인사를하고 원래 가려던 디스킷 버스스탠드로 돌아왔다.

여행에서 산만함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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